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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모아 Oct 09. 2022

07. 극적으로 받은 오퍼 레터

근데 왜 유니폼이 짝짝이예요?

이번 주는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던 한 주였다.


오리엔테이션


첫 번째로는 드디어 '비공식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오퍼 레터는 없었지만, 소피와 나는 이미 A타운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난 상태여서 ANUM 결정하에 신입사원 필수 트레이닝들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병원가는 길

월요일 아침 9시부터 병동에 들려서 사람들하고 인사를 나누고 ID카드 발급을 위한 사진을 찍었다. 피크닉 때 만났던 의사, 약사, 간호사 팀원들도 다시 마주쳤는데, 다들 유니폼을 입고 ID카드를 목에 걸고 있으니 포스가 완전히 달랐다.


ANUM 오피스에는 소피와 나 외에도 이번에 조인하는 두 명의 신입 간호사들을 더 있었다. ANUM의 말에 의하면 이번에 우리 병동이 엄청난 증축을 하고 A타운 주변 마을에 3-4개의 간이 병원시설이 생길 예정이라 우리를 포함해 총 9명의 직원을 채용했다고 했다. 그 많은 인원을 모두 A타운에서 교육시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음 주부터 소피와 나는 8주간 타운즈빌(Tonwsville)에서, 그리고 다른 4명은 락햄튼(Rockhampton)에서, 나머지 3명은 A타운에서 교육을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 세 옵션 중에서는 타운즈빌이 여러면에서 조건이 가장 좋았기 때문에(가장 큰 병원이 크고, 해안가라 볼 것이 많음) 타운즈빌에 배정된 것에 꽤 만족했다.




새로운 동료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 9명들이 차례대로 A타운에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소피와 나만 뉴그랫(간호대 졸업 후 신입 간호사)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짧게는 4년부터 길게는 16년의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각자 다른 경력(응급실, 요양병원, 외과병동, 정신병동 등)을 갖고 있어서 이번에 우리가 배정된 병동에서는 모두가 처음인 상태였다. 소피와 나는 상대적으로 적은 경력 때문에 겁이 나긴 했지만, 8주간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다면 이 병동에서만큼은 모두들 비슷한 상태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대면 오리엔테이션은 7년 차 시니어 널스인 Jono가 진행했는데, 흥미진진한 내용이긴 했지만 8시간을 하루 종일 앉아서 PPT만 보니 엉덩이에 쥐가 날 것 같았다.

대면 오리엔테이션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첫 3일 동안의 대면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나머지 이틀은 Jono의 감독 없이 이러닝으로 진행되어서 우리들은 우리가 출근하고 싶은 시각에 노트북을 들고 출근해서 각자 진행상태에 따라 휴식하고 싶을 때 휴식하고, 퇴근하고 싶을 때 퇴근했다.


오퍼 레터만 생각하면 오지에선 모든 게 느려 터져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를 것 같은데, 이럴 땐 또 팍팍하지 않은 오지만의 너그러운 미학을 찬양하게 된다. 인간의 간사함이란.

풀장에서 느긋하게 먹는 점심




유니폼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8월에 주문해뒀던 스크럽 유니폼도 도착했다. 학생 때부터 스크럽을 입은 헬스케어 종사자들을 너무도 선망해왔기 때문에 유니폼에 대한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포장을 뜯자마자 본 내 유니폼은 상의와 하의 색깔이 달랐다.

상의는 파란색, 하의는 남색인 짝짝이 스크럽

혹시나 주문이 잘못 들어갔나 싶어 ANUM에게도 말하고, 유니폼 회사에 따로 문의를 했더니 지금 모든 스크럽들이 파란색에서 남색으로 바뀌는 과정이라 지금 유니폼을 주문한 경우 재고상태에 따라 짝짝이 스크럽을 받을 수도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런. 그렇게 꿈꿔온 스크럽인데, 내 첫 스크럽이 짝짝이라니!


잔뜩 실망한 얼굴로 ANUM에게 사정을 말하자 다음날 ANUM은 "이거 내가 예전에 입던 건데, 지금은 살이 쪄서 안 맞아. 너한테 맞으면 이거 너네 입을래?" 하며 소피와 내게 스크럽을 주시는 거다!!!!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ANUM에게 물려받은 스크럽 입고 인증샷

학생 때는 NUM/ANUM이 정말 다가가기 힘든 존재로만 여겨졌는데, 지금 ANUM은 몇 주 안 봤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진짜 사려 깊고, 자신감 넘치고, 인자하고 멋지다. 진짜 닮고 싶은 리더상이다.




오퍼 레터


예정대로라면 소피와 나는 10월 4일부터 타운즈빌에서 8주간의 트레이닝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전 주 ‘비공식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오퍼 레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ANUM도 덩달아 '왜 이렇게 오퍼 레터가 안 나오지'라며 원래 박사 공부 때문에 연차를 쓴 날에도 우리 때문에 병동에 나와서 오퍼 레터나 타운즈빌 여행 관련 일정을 팔로업해줬다.


그리고 수요일 오후.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소피와 난 집에서 각자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소피가 갑자기 고함을 꽥- 질렀다. 얘나 나나 정말 조용한 스타일이라 고함을 지르는 경우가 드물어서 깜짝 놀라 소피를 바라봤더니 "우리 오퍼 레터 나왔어!!!!" 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도 이메일을 확인하니 오퍼 레터가 도착해있었다!!!!!


정말 이때 기분은 몇 년 동안 막혔던 체증이 뻥 뚫리는 느낌 + 구름 위를 나는 느낌 + 모든 인생만사가 다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저스틴 비버의 <Beautiful Love>라는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지금도 이 노래의 "beautiful beautiful love"라는 부분을 들으면 그날의 설렘이 그대로 느껴진다.

2개월을 기다려 극적으로 받은 오퍼레터(좌)와 텍시 바우처(우)

오퍼 레터를 받고 나니 모든 일들이 속전속결로 해결되었다. 다음 날 바로 타운즈빌 왕복 비행기표와 현지 숙소, 그리고 타운즈빌에서 사용할 택시 바우처들을 받았고, 공식 ID카드가 나왔다. 비로소 진짜 병원 소속 간호사가 된 것이다.




타운즈빌로 날아가기 바로 직전인 일요일. 또 한 번의 피크닉이 있었다 (바로 지난 주말에 웰컴 피크닉이 있었는데, 그 다음주가 바로 페어웰 피크닉이라니). 이번엔 우리 병동 팀원 뿐만 아니라 다른 병동에서 온 사람도 있고, 팀원의 파트너들도 와서 30-40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였다.


그만큼 음식도 진짜 많았고, 지난 번 인사를 못 나눴던 팀원들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에도 진짜 컬쳐쇼크였던 건 팀원들 모두가 너무 너무 잘 챙겨준다는 것!


예를 들면 한 명은 자기가 10월 중순에 타운즈빌 올 일이 있다며 ”혹시 여기서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줘~“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질 않나, 이미 내가 충성하게 되어버린 ANUM 또한 군말 없이 소피와 내게 딱 한마디를 했는데 그게 진짜 인상깊었다.


"Be safe and enjoy."


소피와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여기 사람들 다 왜 이렇게 다들 나이스하고 잘 챙겨주는 거야? 진짜 눈물날뻔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제일 타락하고 못된 사람 같아” 라는 말을 주고 받으며 막바지 짐을 쌌다.

호숫가에 있던 공작새

'내일부터 진짜 오지 트래블 널스로서의 여정이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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