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부터 마음 한구석이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무겁고 힘든 하루였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무너져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벗어나고 싶다.”
죽음을 떠올리던 순간보다 더 두려운 건 변화 없이 그냥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내 모습이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아이 앞에서는 웃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 방법을 찾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이 가장 빠르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충분히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용기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재우고 밤마다 휴대폰을 붙잡고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우울증 극복', '육아 스트레스', '우울증 운동'... 등등. 간단히 검색만 했는데 정보의 바다에는 역시 수많은 글과 경험담들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라고 했고, 일기를 권하기도 했으며, 취미를 가지라고 하는 누군가도 있었다.
이미 방법을 찾은 건 아니지만 그 글들을 읽는 것만으로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위안과 함께 잠시 위로가 되었다.
작은 것부터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일단 첫 번째로 택한 건 운동.
자력으로 하기에는 금방 실패할 게 뻔해서 필라테스 센터를 등록했다.
처음 해보는 필라테스는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재밌었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그 순간만 잠시 모든 걸 잊을 뿐 집에 돌아오면 무기력함은 지속됐다. 오히려 운동으로 에너지를 써버려서 더욱더 악화된 느낌마저 들었다.
그다음의 시도는 일기 쓰기. 이 또한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시도해 버리면 금방 포기해 버릴 거 같아서 질문 형식의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오늘의 기분이라던지 요즘 듣고 있는 노래라던지...
간단하게 나의 생활반경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부담 없을 줄 알았지만 이미 마음속 깊이 우울감이 자리 잡은 나에게 그런 질문 또한 사치였다. 기분은 회색빛이고 노래를 들을 힘도 없다고 쓰고 있는 나에게 일기 쓰기 또한 딱히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홧김에 다이어리를 찢어버린 채 자기혐오만 더욱 심해졌다.
책을 읽어보려던 날도 있었다. 관심 있는 심리학 책을 잔뜩 샀지만 한 권은 고사하고 반절도 읽지 못하고 내려놓는 날이 더 많았다. 눈은 활자를 향하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 생각이 지배했고 글자가 흐릿하게 겹쳐 보이며 결국 책을 덮었다.
이렇듯 작은 몸부림들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내 딴에는 어떻게든 이 우울을 벗어나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완벽하지도 않고, 끝까지 해내지도 못하는 나 자신에게 점점 실망만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벗어나고 싶은 작은 희망은 꺼지지 않았던 걸까.
이상하게도 완전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끝까지 해내지 못해도 이 지하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다.
여전히 무기력했고, 매일 우울에 휩싸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던 어느 날.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울하지만 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못 벗어나는 것이 모두 내 탓인 거 같다.' 친구와 노닥거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하소연을 하듯 늘어놨지만 그 친구에게는 내 하소연이 무겁게 들렸었나 보다.
"혹시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 절대 네 탓이 아니야." 그 친구의 한 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네 탓이 아니라는 그 말 때문이었을까? 무너져가는 마음을 붙잡고 있었지만 결국은 내 탓을 하며 버텨왔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이 길고 긴 내면의 싸움을 끝까지 버틸 수 없다는 걸 인정한 날이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두려웠지만 두려움보다 무서운 건 지금처럼 달라지지 않는 나의 미래였다.
나는 끝내 혼자만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두려움보다 더 무서운 건 변화 없는 내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