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지 않았다

by 엄면


그렇게 나는 외줄 타기를 하는 고슴도치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매일이 버티기 힘들고 늘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가장 예쁜 시절이었던 내 아이도 내 삶의 이유가 되진 못했다.




아침이 오면 하루가 시작되지만 나는 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눈을 뜨면 먼저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몸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아이가 깨어나 울음을 터뜨리면 겨우 정신을 차려 기저귀를 갈고 아침을 챙기지만 마음속 공허는 사라지지 않았다. 피곤함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기 어려운 마음 깊은 곳이 무너져 있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집 안은 잠시 정적에 잠기지만 그 정적 속에서 내 생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왜 나는 이렇게 게을러졌을까, 왜 조금도 여유가 없을까, 왜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타인의 별것 아닌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며 과거를 끝없이 곱씹으며 나는 혼자 상처받고 미워하고 화를 내었다. 눈을 감고 새벽까지 끝나지 않는 꼬리물기를 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당연히 남편과의 관계도 점점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말싸움 하나가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고 나는 끝없는 자책과 죄책감 속에 갇혔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위로를 해줘도 내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나를 실패한 사람, 부족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채찍질했다.

아주 작디작은 이유가 쌓이고 쌓여 내 안의 분노와 괴로움이 폭발했다.


혼자만의 시간에는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의미 없는 글과 사진을 스크롤하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흘러내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가슴 한켠이 무겁고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괜찮지 않다는 것을.

단순히 육아에 지쳐 피곤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이 이미 오래전에 한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혼자 울고 혼자 분노하며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동안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사라질까', '이대로 눈 감고 사라졌으면 좋겠다.'

마치 '내일 뭐 먹을까?' 하며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생각을 하듯 당연하게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뒤엉켰다.

아이와 남편을 봐서라도 하루를 어떻게든 겨우겨우 버텨냈지만 이미 과부하에 걸려버린 나의 생각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야 되지?’ 미래를 계획할 수도 희망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주변에서도 한두 명씩 병원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상태에 대해, 내 병에 대해 부정하고 싶었다. 병원 권유를 거부하며 마음속 화살을 남에게 돌리기 시작했고 그 화살은 결국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향했다.'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야 ‘ ,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

남편의 탓하고, 부모님 탓하고, 나에게 상처 줬던 사람들을 탓하고 심각한 날에는 아이를 쏘아 보여 탓하는 날도 있었다.


고슴도치보다 더 예민해지고 예민해진 나는 상대방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고 억울한 일이 생기면 단칼에 끊어버리고 증오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늘 피해자고 연민의 대상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았지만 나 혼자 그렇다고 단정 지어버렸다.

그렇게 점점 주변 사람들은 극소수만 남았고, 가장 가까운 남편도 지쳐갔다.


여느 날과 같았던 어느 날.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이제 진짜 혼자가 되는 건가?'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내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민폐 끼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니.

아무도 없는 나의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려웠다.


그때서야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서 고개를 든 진짜 감정을 외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내 마음이 얼마나 지쳤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스스로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하고 있었는지를 바라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조금만 솔직해지기 위해서였다.

우울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숨기지 않고, 인정하고, 조금씩 이해하고 싶었다.

그땐 알지 못했다.

이 인정이 내가 다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되어줄 것임을 .


“나는 괜찮지 않았다. 이제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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