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상담실에 발걸음을 옮길 때만 해도 그곳은 나를 위한 안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상담은 나를 살릴 거라 믿었지만, 어느 순간 그곳은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담은 20회기 가까이 진행이 되었고 나는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나에게 그곳은 마음 깊숙한 상처를 꺼내어도 괜찮은 곳, 무겁게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상담이 끝나고 나올 땐 언제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고,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치유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날도 마찬가지로 상담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여느 때처럼 속이 후련해야 했지만 이상하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약한 마음을 그동안 여러 번 끄집어냈음에도 그날따라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상담가는 날은 어쩐지 부담이 됐다.
'내가 조금 더 강인했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상담사 선생님이 내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려고 할수록 점점 움츠러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내내 나의 약점을 들키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편했던 그 상담실 공간이 낯설어졌다.
'오늘은 또 어떤 약점이 드러날까?' 상담실 문 앞에 서면 이런 생각이 먼저 들곤 했다.
선생님의 위로와 인정의 말도 들리지 않았고 자책으로 번져갔다.
회피적인 성향이 강했던 나에게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은 버거웠던 모양이다.
숨기고 싶던 민낯을 억지로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 불쾌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상담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 상쾌한 바람 대신 답답한 공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상담을 통해 괜찮아질 줄 알았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해버려서였을까?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늘 생각이 많이 지고 마음이 무거웠다.
용기 내서 상담이라는 출구를 선택했는데 치유가 아닌 자기혐오라는 막다른 길이 나타나버렸다.
상담을 그만해야겠다 생각한 건 상담이 있는 전 날이었다.
약속 시간이 코 앞인데 몸은 무거웠고 두렵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차라리 상담을 받지 않았더라면, 모르는 채로 조금 덜 아프지 않았을까? 그렇게 결론을 내 버린 나는 스스로 상담을 중단했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또한 짙게 내려앉았다.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더욱더 밀려나버렸다.
점점 뭔지 모를 무게감이 짓눌렀고 침대에서 도무지 일어나 지지 않았다.
잠은 계속 쏟아졌고 정신 차리면 깜깜한 밤이 되어있었다.
누가 나 좀 죽여주거나, 살려주거나, 제발 나를 어떻게 좀 해달라는 마음의 소리와 함께 엉엉 울며 하루하루를 또다시 버티고 버텼다.
모두가 자는 새벽, 조용한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베란다로 향했다. 방충망까지 열어젖히고 난간 앞에 서서 수많은 고민을 헸다. 그런 고통스러운 새벽을 수 없이 반복하고 나니 죽음 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난 적도 있었다.
또다시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던 어느 날. 훌쩍 커버린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옹알이만 아이가 내가 울면 휴지를 가져다주었고, 누워있는 날엔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나를 챙겨주는 아이를 보자 문득 무서웠다.
'나로 인해 우울한 감정들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면 어쩌지.' 아이도 나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살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잘 사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다행히 마음 한 구석에 아직 작은 용기의 불씨가 남아있었다.
상담은 나와 맞지 않았을 뿐,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완전히 포기하기에는 아직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너무도 컸다.
나는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다시 한번 나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분명했다.
“나는 또다시 길을 잃었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끝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