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용기

by 엄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우울증이라 했던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했지만 정작 막다른 길에 출구를 다시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잠시 방황하고 있던 나에게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났다.

그건 바로 ‘공황’. 심지어 마음이 잠시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찾아온 공황 증상은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처음엔 당연히 공황증상인줄 몰랐고 이곳저곳 병원을 순회하다가 결국엔 정신과 진료를 권유받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사실 우울증이 지하 바닥을 쳤을 때 공황이 왔다면 나는 정말 이 글을 못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다행히 죽을 용기보다 살고 싶은 용기가 1%라도 더 많았었고 그 용기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비록 여러 번 곤두박질치고 있었지만 ‘이 길은 혼자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한 마음과는 달리 머릿속은 막막함이 가득 찼다.


우울증과 공황이 마음속에 퍼져버리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생각이 솟구쳤다.

내면의 나는 여전히 억울했고, 피해의식으로 단단하게 뭉쳐있었다. 짧은 외출에도 불특정 다수의 시선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아 심장이 떨렸고, 사람 많은 곳을 지나가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런 상태에서 병원 문을 두드리는 건 말처럼 쉽진 않았다.


‘불친절한 의사면 어쩌지’, ‘ 뭐 이런 걸로 병원에 왔냐며 비웃지는 않을까?’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1%의 살고 싶었던 마음을 생각하면 또다시 용기를 냈다.

상담센터를 알아볼 때보다 더욱더 치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옆동네, 옆옆 동네까지 정신건강의학과를 모조리 찾으며 리뷰를 뒤졌다.

방문했던 환자들의 후기, 대기시간, 의사의 태도와 병원 내부 사진까지 살피며 며칠 동안 밤을 새우고서야 병원을 결정할 수 있었다.

솔직히 중간에 그냥 포기하고 싶은 날도 있었다. ‘이렇게 까지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버티지 못하면 나의 인생은 물론 아이의 인생까지 망친다는 그 압박과 책임감이 나를 떠밀었다. 나의 통제적인 성향이 나를 자극했던 것이다.


신중하게 찾은 병원인만큼 당연히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 병원은 예약도 소위말하는 티켓팅 수준이었다. 아이 유치원 하원 하던 날, 나는 차를 멈춰 세우고 휴대폰으로 초진 예약을 빠르게 진행했다.

[예약완료] 메시지를 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간 듯한 어색한 안도감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용기를 냈다.


시간이 흘러 예약한 날짜가 되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병원 로비는 내가 상상하는 차갑고 위압적인 곳은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갈 법한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고 안내 데스크 직원은 친절하게 내 이름을 확인해 주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부드러운 목소리에 다행히 긴장이 풀렸고 미리 작성한 설문지를 토대로 언제부터 우울했는지,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 나를 괴롭히거나 스트레스받게 하는 요인이 있는지 등등 나의 상태를 묻기 시작했다.

나는 숨기고 싶었던 생각들과 죄책감, 그리고 그동안의 했던 노력과 실패의 두려움을 조심스레 꺼냈고 선생님은 성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 보며 무언가 타이핑을 했다.


그리고 나의 증상을 단번에 알릴 수 있었던 건 내가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서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공황증상이 올 때, 우울한 감정이 들었을 때, 힘들었던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휴대폰 메모장을 눌러 눈에 보이는 증상과 마음의 상태를 기록했다. 조심스레 그동안 적었던 메모를 선생님께 보여드렸고 이렇게 메모해 둔 건 좋은 방법이라며 작은 칭찬도 받았다. 그렇게 첫 초진 진료는 약 40분가량 진행됐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나의 병명은 우울증과 공황장애.

선생님은 약물치료를 권했고 약의 역할과 부작용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모든 것은 환자분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도 여러 번 해주었다.

내가 그동안 스스로를 얼마나 몰아세웠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게 긴 터널을 돌고 돌아서야 약처방을 받았고 두 번째 용기가 부디 효과가 있길 바라며 첫 진료를 마쳤다.



그날의 결심이 언젠가 나를 다시 빛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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