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내 삶이 무너진 건 아니었다. 단지 조금, 아니 많이 피곤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았고 좋아하는 일들이 점점 귀찮아졌다. 당연히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다들 웃고 떠드는 자리에 앉아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안 보이는 벽이 있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또래보다 일찍 결혼을 하고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육아라서 그랬을까
안 그래도 기질적으로 예민한 나의 성격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육아는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a부터 z까지 신경 써야 될 일이 수두룩했고 해내야 된다는 나의 강박적인 성격에 부딪혀 점점 멘탈이 흔들렸다.
그 와중에 잘 키워야겠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외부기관 도움 없이 가정보육을 했다.
어린아이와 함께 문화센터에 빠짐없이 출석했고, 유아체육 프로그램, 유아미술센터를 쫓아다니며 고집스럽게, 미련하게, 책임감 하나로 아이를 케어했다.
하지만 이 책임감은 어느새 중압감으로 변해 나는 서서히 마음이 메말라가는 기분이 들었고, 일상적인 대화가 안 되는 어린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생각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육아 외의 내 시간은 유일하게 꾸역꾸역 잠을 참으며 버티는 새벽이었다.
그렇게 쪽잠 아닌 쪽잠을 자고 아침에 겨우 눈을 떠선 무슨 정신인지 모르게 아이의 밥을 챙기고 케어를 하기도 했다. 점점 마음이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단순히 피곤해서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날부터였을까?
육아에 지쳐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아이는 미처 갈지 못해서 바지까지 다 새버린 기저귀를 차고 티비에 나오는 뽀로로에 빠져있었다. '내가 미쳤나. 게을러졌나?'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쯤부터였다. 피폐해졌던 마음의 결과물이 불쑥불쑥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곧장 소파나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냥 의미 없이 휴대폰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내 인생이 점점 망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젖은 빨래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면 남편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몸을 움직여 어질러져 있던 아이의 장난감을 정리하고 미뤘던 집안일을 했다. 또 그런 나약하고 형편없는 모습은 죽어도 보이기 싫었었던것이다.
아마도 그게 우울증인줄도 모르고 마치 게으른 아내의 모습처럼 보일까 봐 꾸역꾸역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무너져가는 내 마음은 결국 주변과의 관계에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늘 겉돌았다.
미혼 친구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나는 늘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꺼내도 그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곧 서운함과 분노로 바뀌었다. 친구의 별뜻 없는 한마디에 괜히 상처받고, 마음속에서 수십 번씩 되새기며 상대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욱하는 마음에 연락을 끊어버리기도 했다.
가까운 남편과의 관계도 버티지 못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내가 못난 아내라는 자책이 쏟아졌다. 평범한 대화조차 언쟁으로 변해버렸고, 그 끝에는 늘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남았다.
어느 날은 정말 사소한 일로 서운해져서 다투다가 뜬금없이 이 삶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그런 충동이 들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집 안 공구함에 있던 노끈을 챙겨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올랐다. 심장이 뛰고 손이 떨렸지만, 결국 시동을 걸지 못했다.
이상한 기운을 느낀 남편이 황급히 달려 나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여기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내 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정신이 아픈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두려웠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버티던 시간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이었다.
우울은 그렇게 서서히, 그러나 무섭게 내 삶을 잠식해 갔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나를 나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우울은 몰래 찾아왔지만, 결국 나를 마주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