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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 Jul 04. 2023

지루한 하루 혹은 가장 큰 유산의 선택

어떤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가요.

  당분간 주말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의 부재를 내가 감당해야 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삼십일도로 올라간 여름 무더위는 종일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딸아이와 하루 세끼를 챙겨 먹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장난감 놀이를 하고, 저녁 목욕을 하고도 좀처럼 시간은 가지 않았다. 하루가 어떻게 갔을까. 오늘 우리는 참 지루한 하루였나 보다. 느리기만 했던 시간이 지나가고 밤 열 한시가 되어서야 딸아이는 겨우 잠이 들었다.


  온종일 집에 머무느라 특별히 몸을 쓰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몸이 고되다. 오늘 혼자 보냈다면 무엇을 했을지 생각해 본다. 읽고 싶은 책도 있었고, 글을 쓰거나 약국에서 근무하기 위한 복약 지도 공부도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쩐지 뒤처지는 것 같은 이 마음. 이대로 잠이 들면 고된 마음이 내일 아침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 같았다.


  이 마음을 일으켜 세워 줄 무엇이 필요했다. 한 없이 가라앉은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는 표현은 정확하다. 어두운 방 안에 작은 무드 등 하나만 키고, 세상에 잠시 접속해본다. 어떤 기업의 HR 임원이자 논어를 사랑하는 그녀의 라이브 방송 기록을 보기로 선택한다. 가벼운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시작한 라이브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그리고 갑자기 보게 된 건, 언제나 밝은 에너지로 사람들을 격려하던 그녀의 어머니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고 말하는 그녀의 붉은 눈시울.


  "사람 쉽게 안 죽는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아요. 사람의 목숨은 파리 목숨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최대한 행복하고,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의도적으로 건강하게 써야 합니다. 뒷담화 덜 하고, 미운 마음도 덜 하고, 진짜 열심히 살아야 하고, 진짜 행복해야 하고, 오늘 열심히 산 것이 근간이 되어 내일 더 멋진 하루가 되게 만드세요. 말로만 노력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실행. 내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



  그녀는 팀 미팅에서도 "내가 이 자리에 없다면 어떻게 하겠어?"라고 팀원들에게 질문한다고 했다. 그녀의 노트북 비밀번호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 놓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팀원이 그녀의 파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그녀였다.


  나는 오늘 어땠나. 극단적인 가정을 좋아하진 않지만, 나와의 마지막 하루일지도 모를 오늘을 딸아이에게 행복한 하루로 안겨줬던가.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모든 것은 선택이었다. 후회 없을 선택을 하기도 했고,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생에서 제일 후회하는 선택은 선택해야 할 것을 지나쳐 버린 선택이었다. 오늘,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딸아이에게 줄 어떤 사랑을 선택했는지. 깊은 잠에 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한다.


  삶은 살만했다가, 행복에 가슴이 벅차다가 때때로 침울해지도 한다. 침울해지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 깊은 늪에서 오래 머물거나, 밖으로 나오지 않는 선택은 하지 말아야겠다. 매일이 생동감으로 넘칠 순 없다고 해도 하루를 꽉 차게 살 수 있도록 선택할 것을 기억하고 싶다. 죽음과 가장 반대되는 삶을 살기로 하자. 언젠가 내가 없을 세상에 남아있는 아이에게 가장 큰 유산을 물려주는 것 외에 다른 구원을 나는 알지 못한다.


7월의 여름이 덥다고 집안에서만 머무는 선택은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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