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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 Jun 20. 2023

좋아하는 오전

여러분의 행복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아침 9시 30분.


  사랑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아침 공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딸이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에 놀이터 미끄럼틀을 태워주고 개미집을 구경하는 건 필수 코스이자 나의 미션이다. 사랑이는 용기 있는 결심을 하고 어린이집 문 앞에 다가서 보지만 엄마와 헤어지는 건 여전히 쉽지 않나 보다. 나와의 떨어짐을 힘들어하는 사랑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린다.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온전히 주어진 시간에 대한 설렘과 딸에게 더 다정하리라는 결심이 뒤섞이는 길이다.  


  오늘은 아무런 이벤트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차려입는다. 어깨를 웅크리지 않아도 되는 따뜻한 봄이니까. 좋아하는 책들과 노트북을 보부상 가방에 가득 담아 좋아하는 카페로 향한다. 파리 광장에 있는 카페는 아니더라도 부드러운 재즈가 나오는 한적한 카페에 들어오니 마음이 쿵쾅거리고 미소가 새어 나온다. 어느새 내 마음은 자발적으로 상냥해진다. 나는 최대한 친절한 미소로 시원한 바닐라 라떼를 주문하고 제일 좋아하는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따뜻한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도 사랑스러워 보인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든다.


  내 뒤의 테이블에 나처럼 홀로 앉아 책을 읽는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도 의식하지 않은 그대로의 얼굴, 몰입한 사람은 생김새와 상관없이 언제나 예쁘다. 그녀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내가 사랑하는 유지혜 작가의 책을 펼친다. 책을 읽기 전 잠시 나를 둘러싼 수만 가지 유혹이 떠오른다. 핸드폰의 잠금 화면을 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첫 몇 줄을 읽어 내려가면 비로소 작가의 글 속에 빠진다. 유지혜 작가의 문체는 감탄과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나도 좋아하고 싶게 만드는 놀라운 필력을 사랑한다.


  한참 동안 그녀의 책에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12시 30분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오늘의 할 일을 적어 보며 카페를 떠날 준비를 한다. 돌아올 밤 11시, 나의 작은 인간 러브가 단잠에 빠진 후 시작되는 고요한 밤을 기다리며 딸을 사랑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다정하리라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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