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OOO씨 집에 불났어요.”

-화재사고와 억울한 나-

by 남루한

대학생 시절. XX년 9월 14일에 있었던 일이다. 시험이 끝날 날이었고, 난 피곤한 상태였다. 졸업반을 눈앞에 둔 나이임에도 벼락치기를 하던 버릇을 못 고친 내 잘못이겠지. 심지어 전날 PC방에서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대학교 후배가 나에게 부탁을 해 왔던 일이 있었기에 그날 난 PC방에 있었다.


“제가 그날 일이 있어서 그런데, 야간타임 혹시 대신 서주실 수 있나요? 네네, 열한 시에서 두 시.”

“죄송해요. 시험기간인데.”


“뭘, 서로 도우면서 사는 거지. 끊는다.”


꽤나 친한 관계기도 했고,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바로 승낙했다. 조금 피곤해봤자 시험기간의 마지막 날이었다. 시험도 오전 하나뿐이었고, 어차피 밤을 새워서 공부할 예정이었기에 오전에 시험이 끝난 후 실컷 자다가 출근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14일 오후 10시 50분. 나는 출근해 이전 근무자와 교대했다.


사고의 경위를 말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 있지만, 아르바이트는 사실 사건과 큰 관련이 없다. 그저 “저희 집에 불이 났대요.”라는 간단한 설명에도 서둘러 달려와줬던 사장님께 감사를 보내고 싶어 글의 첫머리에 아르바이트에 대한 것을 구구절절하게 적어 넣는 것일지 몰랐다.


다 먹은 라면그릇의 설거지를 하던 도중 전화가 왔다. 난 일하는 중에 핸드폰을 잘 보는 사람은 아니긴 했지만, 그런 사람이라도 같은 개인번호로 9번 정도 부재중 전화가 오다 보면 한 번쯤은 연락을 받기 마련이었다. 10번째의 전화, 무음모드로 주인을 애타게 찾던 내 휴대폰에선 다급한 반, 냉정함 반이 섞인 간결한 대사가 귀에 들어왔다.


“지금 OOO 씨 집에 불났어요.”


전화를 건 것은 소방대원이었고, 나는 즉시 상황을 인지했다. 당장 집에 가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일단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11시 50분 즈음이었고, 10분도 되지 않아 사장님이 뛰어왔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는 그런 겉치레 없이 빨리 가보라며 나를 배웅했다. 나는 별 일 아닐 것이라며 그를 안심시키려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당일 침착했던 나의 마지막 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하던 PC방은 원룸과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현장에 도착한 것이 거의 정확히 자정이었던 것 같은데, 큰 소방차가 와 있었고. 약간의 구경꾼과 함께 건물 앞을 지키던 소방대원 2명이 나를 질책하며 본인확인과 함께 말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전화 속 목소리의 소방관으로 보였고, 9번의 부재중 전화를 남긴 사람인 것 같았다.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확히 이때, 나는 4층 창문 쪽에 시선을 보냈다. 창틀 위쪽에 시선이 갔고, 이미 검게 그을린 창틀 위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창문에서 검은 연기가 미세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마지막 화재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냄비에 물을 끓이던 중 깜빡하고 잠들었던 적이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냄비와 매캐한 냄새. 집 전체에 뿌옇게 깔린 흰 연기가 기억난다. 부엌엔 검게 그을음이 세게 져서 크게 혼났던 기억. 그 이후부턴 한 번도 안전에 대한 긴장감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 있었다. 매번 외출할 때 콘센트를 다 뽑고, 닫힌 창문도, 잠긴 밸브도 확인하는 철저함. 적어도 나는 그랬고, 당장 1시간 전에도 콘센트를 다 뽑고 외출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화재사고가 내 방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창문이 내 방 창문임을 깨닫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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