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사고와 억울한 나-
복도는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4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현관 앞에 도달할 때까지만 해도 놀라울 정도의 깨끗함이 있었기에, 조금 기대를 품었다. 그렇게 큰 일은 아니고, 이전에 경험했듯 화재발생지점이 꺼멓게 그을리고 끝났을 것이라고. 사실 확신에 차서 불쾌함까지 품었다.
아니 대체 어디서 불이 나서 우리 집까지 옮겨붙은 거지?
방에 그을음이나 불에 탄 부분을 정리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당장 시험도 끝났고, 내일 금요일 수업 한 개만 끝마치면 쉴 수 있었는데. 당연하다시피 한숨이 나왔다. 제발.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방대원이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는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현관 안쪽부터 새까맣게 래커칠이 된 듯 검은색으로 온통 칠이 되어 있었다. 매캐한 냄새는 덤인 수준이었다. 이제껏 겪어본 적 없었던 심한 탄내가 방 안에서 났지만, 빛 하나 반사되지 않는 완전한 암흑 속의 집은 그 시각적 충격이 엄청났다. 래커의 광택감 있는 검정과는 완전히 달랐다. 빛이 반사가 되지 않는 검정색. 현관 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빈틈없이. 그렇게 집을 색칠해놓은 모양새였고, 너무나 멀쩡한 집앞의 상태와 대비되는 현관문 안의 상황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집 안쪽 너머로 보이는 창문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이 더 밝았고, 천장, 바닥, 벽, 모든 물건이 검정색이었다. 현관부터 방 끝까지 아무것도 식별해낼 수 없었다. 검정색이 빛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처음 배운 어린아이처럼, 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안쪽에서, 라이트를 든 소방관 한 명이 걸어나왔다.
“드디어 왔네, 아이‥ 학생,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꽤나 짜증난 듯한 목소리였고, 그가 불 켜진 라이트를 들고 나오자 그제야 동그랗게 밝아지는 방의 벽면이 보였다. 나는 홀린 듯 방 안에 들어갔다. 어째서인지 항상 현관에서 벗던 신발에 대한 생각은 나지 않았다. 침대, 테이블, 창문, 옷장, 컴퓨터 책상. 작은 8평형 원룸에 가재기구들이 좁게 들어찬 방이었지만, 무언가를 찾아내기엔 모든 것이 검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것조차 없어 아무것도 식별해낼 수 없었다. 자그맣게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장과, 전역기념으로 맞추었던 컴퓨터와 같은 고가의 물품에 대한 걱정이 올라왔다.
안쪽에 있던 다른 소방관이 말했다. 젊어 보이는 소방관이었다.
“여기 이 부근에서 불이 나서 타다가, 산소가 부족해져서 자연 소화된 것 같습니다만….”
그의 말을 따라 그의 라이트가 비춰주는 것들을 보았다. 침대 발판 쪽 옆에 있던 콘센트부터, 침대 머리맡을 제외한 절반이 완전히 녹아서 매트릭스와 이불이 협착되어 있었다. 침대 발판 옆에 콘센트는 정확히 반쯤 타서 그을려 있었고, 특히 콘센트의 왼쪽 부근이 더욱 검게 타 있었다. 볼멘소리의 소방관이 옆에서 덧붙였다.
“여기 바닥에 이 검은 찌그러기 같은 거 보이죠? 내가 보기엔, 여기 불이 붙어서 주변에 옮겨붙은 것 같은데, 혹시 생각나는 거 있없어요?”
방석이 있던 자리였다. 딱 한 귀트머리를 제외하곤 모두 불에 타버려서 원형을 알 순 없었지만, 그 위치에 방석이 있었음은 기억했다.
“방석⋯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럼 여기 위에 뭐 올려놓은 거 있었어요? 가전제품이나 뭐 그런 거."
아뇨, 방석만 있었고, 딱히 불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요. 그렇게 말하자 한동안 침묵만이 감돌았다. 도저히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이 그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했을 상황임을 짐작했다.
“그럼 여기 콘센트에 연결된 멀티탭 있잖아요. 여기 연결되어있던 것들 기억 나요?” 젊은 소방관이 묻고, 리더격으로 보이는 소방관이 말이 되냐는 식으로 툭 하고 맞받아쳤다.
“여기 콘센트에서 불이 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여기 봐봐, 콘센트에서 불이 났으면 이렇게 반만 그을렸겠어?” 난 당황해 어느 순간 반말을 쓰고 있는 그를 눈치챌 틈도 없었다.
“이 옆에 이거, 이건 뭐에요?”
그때 옆에 선 젊은 소방관이 궁금하다는 듯 콘센트 왼쪽에 있던 뚫린 공간을 지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각형으로 벽이 뚫려 있었고, 끊어진 듯 검게 탄 전선 몇 가닥만 튀어나와 있었다.
“어⋯, 이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바로 왼쪽에 있던 테이블, 오른쪽에 있던 침대가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듯 제일 검게 그을려 있었고, 콘센트 주변에서 불이 났다는 것이 자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그 콘센트 옆에서 뭘 본 적이 없었고, 써본 적도 없었다. 저기 뭐가 있었지? 난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주변의 작은 부스러기 수준의 잔해들론 벽면의 빈 자리를 설명할 수 없었다.
대신 난 멀티탭에 연결된 것이 없었다는 설명부터, 주변 전자기기나 라이터 등 화재사고와 연결될 만한 것 또한 없었다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솔직히 횡설수설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했지만, 그게 그렇게 마음처럼 되는 일은 아니었다.
같은 질문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멀티탭, 전자기기, 의문의 빈 자리. 같은 질문에 3번씩 대답하는 것도 지쳤고, 무엇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티를 내려 하지 않았지만, 더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일단 나가 있죠. 가스 때문에 오래 있으면 호흡기에 안 좋아요.”
그때 젊은 소방관이 중재하며 말했다. 인상을 쓴 소방관이 한숨을 푹 쉬었고, 우리는 잠시 나가 현관 앞에서 자리를 잡았다. 젊은 소방관은 부모님께 연락은 드렸냐면서, 오늘 잘 곳은 있냐면서 주변에 연락할 곳 있으면 하라고 했고, 나는 부모님에게 전화부터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통화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아니 내 말은 탈 만한 것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해 달라는 거지.”
결국 소방관들이 물어보다 못해 집안에서 담배를 피냐, 캔들 쓰는 것 있냐 등의 어이없는 질문까지 나왔을 즈음에 그들의 의문을 풀어줄 집주인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