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사고와 억울한 나-
집주인의 대한 기억은 첫 대면 정도만 기억한다. 원룸에 계약을 넣을 때부터 현재까지. 사실 그를 기억하긴 하지만, 만난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이곳이 대학가이며, 저렴한 월세를 위해 부동산 없이 집주인과 직접 계약을 선호하는 분위기 탓에, 건물 입구에 걸려있는 번호로 전화를 건 것부터 시작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전화를 받고 2시간 만에 계약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학생이야?”
원체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다. 시원시원하게 생긴 남자였고, 나이는 꽤나 있어 보였다. 워낙 시원한 태도 덕에 10년만 젊었으면 동네 형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낮 11시였는데도 1시간도 안 걸려 도착한 그는 집을 한번 보여준 뒤. 짧은 시간임에도 순간에 나와 친해진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놨었고, 기억하는 몇몇 이야기는 간단했다. 편하게 아저씨라고 불러라. 여기 학생들이 많이 산다. 이 주변 집주인들 다 아는데 나처럼 학생들한테 인기 많은 사람 몇 없다. 그는 유달리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 길로 짜장면 한 그릇까지 얻어먹고 가계약을 맺은 것은 물론이었고, 그는 친근하게 구는 와중에도 신뢰를 주는 법을 알았다.
“여기 계약서, 일단 오늘 가서 계약금 넣어주면 가계약은 되는 거고 혹시 마음 바뀌면 못해도 입주 일주일 전엔 꼭 말해줘야 해. 주변에 학생들이 많아서 내가 좀 봐준다~ 하더라도, 그 다음부턴 안된다. 진짜.”
“또, 입주하고 잊지 말고 그 동사무소 가서 등기 꼭 도장 받고, 주소지 등록해놓고 그런 거 중요하니까⋯.”
말 많고, 솔직하고 좋은 아저씨.
화재현장에 그런 집주인이 도착했고, 얼마 안 가 화재현장의 뚫린 벽면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풀린 의문은 명료했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납득될 만한 것이었다. 내가 여름에 입주했기에 사용할 일이 없었던 것. 뚫린 벽면에 위치했던 기계는 난방조절기였고, 그는 단번에 그 완전히 타서 없어진 기계를 난방조절기라고 딱 말해 주었으며, 우리가 보기에도 타서 남은 플라스틱의 네모난 파편이 난방조절기라 말하는 건 그럴싸해 보였다.
“그럼 거기서 불이 난 거네, 그러며는⋯.” 여태 답답하단 기색이 완연했던 소방관이 바로 말을 받았다. 겨우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반응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한 달 전에 안전점검을 했었어서, 그럴 리가 없어요.”
집주인이 말 그대로 펄쩍 뛰었다. 그럴 리 없다며 소방관과 말씨름을 했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 소방관에게 집주인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제가 화재위험 때문에 전기식 난방조절기로 바꾸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안전점검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집을 10년을 관리했는데,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어요.”
“말했다시피 한 달 전에 안전점검을 했다니까요? 저기서 불이 났을 리가 없어요.”
매년 가을 시즌이 오기 전에는 항상 모든 집에 기사와 함께 안전점검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 또한 기억에 있는 일이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지지난 주 안전점검을 하겠다고, 전체공지를 통해 전달받은 일이었다. 나 또한 일이 있어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 주 화요일날 오전에 안전점검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10년쯤 지났으면 이런 일이 한 번쯤 있을 법도 하지 않나…?’
오랜만에 본 집주인은 저번에 둘이 만났을 때와 딴판이었고, 나 또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서서히 되어가고 있었다. 본능적인 것이었다. 지금은 화재의 책임에 대해 묻는 자리였고, 이 자리에서의 판결문이 내려지기 직전이었다. 집주인은 화재 사고에 대해 억울해하고 있었고,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더 컸다.
소방관은 그의 이야기가 꽤 그럴싸해 보였는지 다시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똑같은 래퍼토리로 이미 4번이나 대답한 질문이 그대로 돌아왔다. 다른 점이라면 ‘아 그러면 불이 거기서 났겠네’, ‘이거 아냐 이거?’ 하며 집주인의 추임새가 붙기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집에서 담배 피냐는 집주인의 질문에 보다 못한 듯 리더격인 볼멘소리의 소방관이 말을 끊고 잔해 몇몇을 락앤락 지퍼백에 주워담더니 말했다.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해 두고, 저희도 퇴근해야 하니. 화재원인은 저희가 이제 감식을 맡겨 볼 테니까. 저희는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며 소방관이 주변 잔해를 헤집으며 플라스틱 조각을 각 위치마다 하나씩 집어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그제야 화재 책임에 대한 경각심에 털이 삐죽 솟는 느낌이 들었으며, 이제껏 없었던 의문이 하나 둘 떠올랐다.
소방관들은 이제껏 경찰이 그러다시피(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이지만) 현장보존에 대한 의식이 하나도 없는 듯싶었고, 아까부터 계속 헤집었던 서로 다를 것 하나 없는 쪼가리들로 무엇을 증명해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스프링클러가 터지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히 소방관도 자연소화라고 말했었고, 방안에 물기 또한 하나도 없었다. 안전점검을 했다는 집주인의 말 치고 집에 멀쩡한 것이 없었다. 내 책임보단 근본적인 안전관리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듯 나를 질책하는 태도였고, 이대로라면 이 현장감식을 토대로 자신이 범인으로 몰리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뭘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 앞에서 내가 한 말은 신빙성 없는 어린 학생의 발악일 뿐이었다. 나는 한없이 무력함을 느꼈다. 이미 말할 것은 말했고, 자신의 갖은 노력들은 증명할 길이 없었다. 이대로 취업도 전에 거액의 빚더미에 앉는 건가?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도저히 현장감식이란 것이 믿을 법한 것이 못 됐다. 사라지는 소방관들. 와중에 젊은 소방관이 힘내라며 등을 톡 치며 소방차를 타고 사라졌다. 위로는 하나도 되지 않았고, 오히려 야속했다. 저 사람은 이 다음 결과가 예상이 되고 있겠지⋯. 그가 가장 많이 출동해봤을 사건이 이런 일반 가정집의 화재였을 테니까. 나는 그 시선이 마치 놀림처럼 보였고. 동시에 그런 비뚤어진 생각을 한 스스로에게 자기혐오를 느꼈다.
사실 따질 것도 없었다. 정말로 화재가 내 책임일 수도 있으니까. 아까까지의 자기확신은 없었고,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거짓말이다. 사실 여전히 억울하다. 당연히 난방조절기에서 화재가 났을 것이다. 그 부분이 가장 새카맣게 탔으며 잔해가 남지 않았고, 터진 듯 저 멀리 플라스틱 쪼가리가 날아가 있었으니까. 거기서 화재가 시작되었겠지. 평소에 콘센트나 가스 등등, 나만큼 안전에 신경 쓰고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여전히 자부한다. 하지만 왜? 왜 하필 그런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그 어떤 콘센트도 연결되어 있지 않던 멀티탭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랐다. 같은 느낌이겠지. 허탈했다. 나는 소방관들이 사라진 1층 로비에서 잠시간 멍하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