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사고와 억울한 나
1층 관리인실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나왔다. 집주인의 와이프라고 했다.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괜찮니? 하고 물어오자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입장에선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 마치 엄마같이 내 걱정을 구체적으로 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심지어 잘 곳 있냐며 관리인실에서 며칠간 머물고, 뒷정리 다 하고 집 구해지면 나가라는 마지막 대목엔 좋다고 고개를 마구 흔들었던 나 자신의 모습도 기억한다.
“그럼 여기서 잘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갑자기 집주인이 나타났다. “아니 잠깐만, 잠깐만. 여보. 거긴 내가 써야지.”
“아니 생각해봐, 당장 정리도 하고, 조사도 받고, 확인차 계속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안 되지.”
“OO이 아까 잘 곳 있다고 하지 않았나, 친구 집에서라도 자고 와.”
집주인의 와이프는 그런 집주인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고, 나 또한 눈앞의 대목에서 빈정이 조금 상했던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내가 “알겠습니다” 이외의 답을 어찌 하겠는가? 당당하게 잠자리를 요구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비슷하게 행동하고 싶지도 않았다. 집주인은 머쓱한 듯 대신 말했다.
“대신 식자재랑, 중요한 물건들 있으면 관리인실에 보관해도 돼. 그 정도는 허락해줄게. 지금 뭐 살릴 거 있는지 확인해보고 가지고 내려오자.”
그가 그렇게 말할 때. 수많은 고민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갖가지 생각들을 이긴 것은 당장의 잠자리에 대한 고민이었다. 새벽 2시였다. 심지어 시험기간 마지막 날. 재워줄 수 있는 친구가 근처에 있을까?
*
건물에서 나오고 30분을 연락을 돌렸다. 새벽녘 공기도 꽤나 쌀쌀해 정말 가을이 오고 있구나 체감되는 날씨였다. 생각보다 정리가 오래 걸렸다. 간단하게 큰 장바구니에 냉장고, 냉동실의 살아있는 물품만 챙기는 데에도 시간이 들었다. 집주인이 도와줬음에도 두 번은 왔다갔다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정처 없이 전화를 돌리며 걷다 알바처가 눈에 보였다. PC방 옆문을 이용해 들어갔다. 사장님은 이미 퇴근한 듯 카운터는 비어 있었고, 야간에는 무인으로 운영된다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진작에 3시는 지나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은 여전히 꽤나 많았다. 시험기간인 탓이라고 생각하며 은근히 기대하며 PC방을 돌아봤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PC방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매일같이 PC방에서 사는 친구이, 이상하게도 오늘만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PC방에서 밤새기, 과방에서 노숙. 그런 선택지들이 아른대고, 혹시 몰라 연락을 찾으려 핸드폰을 봤지만 돌아온 연락이나 답장은 아직 없었다. 이대로라면 무조건이다. 그리 생각하고 PC방 의자에 잠시 앉았다.
피곤함 절반과, 걱정 절반. 어지러운 속내가 얽히고 설키는, 흔히 말하는 멘탈이 터지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원룸이라 해도, 집은 비쌌다. 어디까지 돈이 들까. 부모님한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지? 아니, 아직 결론도 안 났는데. 하지만 달라질 게 있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수렁에 빠졌고 우울감에 빠졌다.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미간을 찌푸려도, 안와를 지그시 눌러봐도 환기가 되지 않았다. 몸이 찝찝했다. 탄내가 지금도 나는 것 같았다. 당장 씻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 시간에 연락을 받아 자신을 재워 줄 사람이 있을까? 절망적이었다.
*
결론부터 말하면, 있었다. 남자 혼자 자취하는 컴퓨터공학과 친구였는데, 늦은 새벽에도 흔쾌히 잠자리를 허락해주고, 심지어 직접 나와서 컴퓨터나 게임기와 같은 물건들을 같이 옮겨줬다. 각자 한 손에 이사할 때나 쓰는 초록색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짐을 옮기는 게 무척이나 어색했다. 어느새 관리인실로 돌아간 것인지 집주인은 없었다.
“넌 왜 이사용 박스가 집에 있냐”
“나도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게임하다 나왔어?”
“당연하지.”
“다행이네.”
“⋯.”
그 후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친구는 한동안 말을 고르는 듯 싶었고. 이내 우리는 평범하게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 친구가 화재에 대해 입에 담은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대형사건이네, 컴퓨터가 죽으면 안 되지. 업체 있는데 내일 연락해봐. 컴퓨터 세척 전문으로 하는 데 있어. 지금 키면 쇼트 날 것 같고, 일단 업체부터 연락해봐.”
새벽 4시가 넘는 시간에, 한가롭게 게임 얘기나 하고 있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막 씻어서 산뜻하기도 했고, 침대를 쟁취하려는 내기조차 재미있었다. 잠시 화재에 대한 것들을 잊을 수 있었다. 둘이 잠자리에 든 것이 몇 시인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일어난 것이 몇 시인지는 기억한다. 8시 30분. 일어나 친구의 모자를 텁 하고 뒤집어쓰고 집을 나왔다. 화재에도 불구하고, 수업은 들어야 했다. 침대 밑에서 토퍼를 깐 채 뒤척이고 있는 친구가 보였다. 내기는 내가 이긴 걸로 하기로 했다.
“너 내일 수업 없잖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