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사고와 억울한 나-
수업엔 왔지만, 당연히 집중하진 못했다. 어젯밤 연락을 돌렸던 지인들에게 답장이 와 있었다. 걱정하는 말 반, 당연히 와서 자도 된다는 답장 반. 괜찮냐고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도 있었고, 걱정해주는 이들 덕에 기분이 꽤 괜찮아졌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 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는데, 연락을 준 이들 또한 특이했다.
“안녕하세요 대한적십자사에서 나왔는데요, OOO씨 맞으시죠? 구호물품이 좀 나왔는데 어디다 갖다드릴까요?”
나는 건물의 주소를 불러줬고, 수업이 끝나고 가득히 와 있는 참치캔, 스팸, 레토로트 등과 물⋯. 그런 것들을 보고 놀랐다. 적십자사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헌혈 이외의 업무에 대해선 영 모르고 있었기에 그들이 이런 구호사업도 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쌓인 식료품만큼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 적십자가 좋은 일 하네.’ 옆에서 집주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집주인과 함께 매트릭스, 커튼, 의자 등 큰 물품들을 우선 옮겨놓았다. 집주인은 시원시원한 인상 그대로 일하는 것도 시원시원했고, 덩치가 있는 만큼 힘이 꽤나 좋았다. 매트릭스와 침대 프레임이 완전히 녹아붙어 옮기는 게 무척 힘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짐을 옮기고 나서 후 하고 숨 한번 토해내고 손을 탁탁 털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제 생각해봤는데,” 집주인은 그렇게 운을 뗐다.
“난 감식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말이야. 너한테 책임을 묻진 않을 거야. 뭐, 학생이니까 어차피 돈도 없을 거고, 나는 그런 거, 당연히 보험금이 나오니까─ 이런 피해는 복구할 수 있거든.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니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딱히 니가 나한테 뭘 물어낼 필요는 없고.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인상 피고. 이번 달 월세는 여기 불난 날 기준으로 해서 일부만 받을게, 나머지하고 보증금 이렇게 합쳐서 내가 돌려줄 거야.”
혹시나 이 집을 청소해서 다시 살고 싶다면 가능이야 하겠다마는. 그런 말이 집주인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그 말을 기다렸단 듯이 감사하다며 칭찬과 아부를 선뜻 꺼낼 수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스멀스멀 불쾌한 기분이 머릿속에 기어들어 왔지만, 도의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해야 했다. 속내를 억누르고, 머릿속을 비웠다. 실제로 내 책임일 수 있으니까. 마음 속의 일부분에선 안도하고 있는 나도 분명 있을 것이었다. 가장 큰 고민 또한 그것이었을 테니까. 다만 아쉬운 점은 지금 건물 앞으로 들어서고 있는 흰색 SUV였다. 어머니의 차였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아 하늘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집어삼켰다. 나는 당당할 수 없었다.
*
“와 이게 구호 물품이야?”
“대박.”
그날 저녁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간 친구의 집에선 모니터의 복구작업이 한창이었다. 친구와 한 명, 같이 알바하는 후배가 와 있었다. 바닥엔 새카만 물티슈가 산을 이루었고, 신문지 몇 장과 함께 플라스틱 박스에서 꺼낸 물품이 한가득이었다.
“와 게임기 완전 대박. 멀쩡히 되는데요 선배?”
“모니터는 그냥 간 거 같은데? 그을음이 다 안 지워지네. 화면에 줄이 갔어.”
두 사람 모두 물품 복구에 한창이었고, 내가 돌아오자마자 짐을 더 가지러 갈 것인지 물어왔다. 집에 두고 온 옷가지들에 대한 걱정이 살짝 떠올랐지만, 두 사람을 말렸다. 고맙긴 한데 너무 수고를 끼치기엔 미안했다. 그리고 어차피 짐은 새 집으로 옮기는 것이 더 빨랐고, 그 일은 주말에 자신이 해도 될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열심히 그을음을 닦고 있는 것부터 너무 고마웠기에, 그런 것까지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물품에 그을음 제거는 금방 끝났다. 이미 두 사람이 하고 있던 것도 있고, 어차피 아무리 닦아봐야 안 지워지는 것도 컸다. 일단 그을음이 지워지는 것보단 내가 두 사람을 말리는 게 더 빨랐다. 그만두고 밥이나 먹자. 그날 저녁 나는 스팸참치 부대찌개라는 황당해 보일 수 있는 메뉴를 선보였다. 있는 재료를 대충 다 넣어 끓인 것이라 짠맛, 매운맛 보다는 기름진 맛이 강했지만, 결국 부대찌개였다. 참치가 들어간 부대찌개도 꽤나 먹을만했다.
남자 세 명에 부대찌개가 주어졌으니, 자연히 술이 함께했다. 갑자기 후배가 날 붙잡고 울기 시작하는데, 화재 당일날 야간을 대신 맡아준 건에 대해서 사과하는 말이었다. 난감했다. 당황스러움도 있었지만, 난 시커먼 남자 후배가 술이 조금 들어가니 한없이 찡찡대는 게 보기 싫기도 하였다.
“너무 죄송해요. 그날 내가 알바 떠넘기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가만히 두면 몇 시간이고 같은 말을 반복할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어나갔다. 녀석의 울음을 그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오히려 다행이라는 걸 생각해야지 야.”
“잘 생각해봐.”
“역으로 네가 그날 나한테 알바를 안 맡겼잖아?”
“그럼 난 죽었어.”
“자다가 불이 나서, 화악!”
난 그렇게 말하고, 후배한테 고맙다고 짧게만 인사했다. 어머니가 만나자마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행이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결국 흔한 감식결과가 뻔하듯 화재 원인 불명으로 찝찝하게 끝난 사건이지만. 내가 살아있기에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여전히 나는 어머니가 흘린 눈물을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