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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Apr 14. 2022

다시 원점에 서다

-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

고향 집에 왔다. 내가 세상을 향해 첫 발짝을 내디뎠던 곳, 그곳에 돌아와 다시 세상을 향해 섰다. 오가는 것이 다반사처럼 빈번하기에 별반 새로울 것도 없지만 오늘은 감회가 색다르다. 무엇이 되겠다는 꿈조차 챙겨 넣을 수 없을 만큼 작은 가방 하나 들고 떠났던 이곳에 긴 여정을 마친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되돌아오듯 돌아온 것이다. 변변찮은 추억 하나 만드는 것조차 사치였던 대학 생활을 시작으로 37년 동안의 긴 여행을 끝내고 처음 출발하였던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에 이어 곧바로 입사한 직장에서 30년을 넘게 일했다. 그곳에서 내가 가야 할, 그리고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까지 걷고 또 걸었다. 달고, 시고, 쓰고, 짜고, 매운 순간들을 많이도 만났다. 감당 못 할 것 같은 무게도 견뎌냈다. 세상의 절반쯤은 다 내려다보일 것 같은 높은 곳에도 올라보았다. 그리고 이제 처음 출발하였던 곳으로 돌아와 강산애의 노래를 듣는다.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듣고 거듭 듣는다. 어제까지 듣던 노래가 아닌 것만 같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집으로 돌아온 지금, 이제는 연어들이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거슬러 올라야만 하는 길이다. 신비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거슬러 오르기 위해 견뎌야 했던 고통이 안쓰럽고, 묵묵히 되돌아온 그들의 노고가 존경스럽다.  


여러 갈래 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내 앞에 놓인 여러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하여 뒤돌아보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꼬부라진 길을 걸었고, 높은 언덕을 넘었고, 발바닥의 물집은 터져 굳은살이 되었다. 그런 것쯤은 대수로울 것 없는 일상이었다. 그렇게 걸어 나는 꽃밭을 만났던 걸까? 그 꽃밭 한가운데를 지났던 걸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앞만 보고, 위만 보고 걸을 때 그때 꽃들은 내 옆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연어들은 형형색색 빛나는 산호의 꽃밭을 만났던 걸까? 그 찬란한 산호초에 잠시 쉬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기는 했던 걸까?


여러 갈래 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막막한 어둠을 만나고, 별빛조차 없는 길을 밤새 걷기도 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할 수 없었지. 그렇게 걸어서 이곳에 도착하였다. 날 위해 뜨겁게 부서진 햇살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그것조차 애써 외면한 채 앞만 보고 걸어온 초조함. 이제는 그 초조함과 작별해도 되겠지. 아무 때고 멈춰 서서 부서져 쏟아지는 햇살을 느껴도 되겠지.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가야 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 보면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하겠지 


힘겨웠던 날들, 초조했던 모든 날들에 감사한다. 비록 날 위해 비추는 햇살마저 외면한 채 걸어야 했지만 그 모든 날들에 감사한다. 내 앞에 새롭게 가야 할 길들이 펼쳐져 있고, 아직 단단한 두 발이 있고, 걷다 보면 별빛도 달빛도 꽃밭도 만날 수 있음을 알기에 걸어온 길이 축복이었고,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이 그보다 더한 축복임을 새기며 지나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들, 만나고 헤어진 것들과 만나야 할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 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여행의 끝은 걸어가다 멈추는 곳, 그곳이 끝인 거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연어들은 그 강 가장 위쪽 어딘가에서 지친 여행을 멈추겠지. 그게 끝이란 것을 알겠지.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다시 바다로 나가고, 비밀스러운 여정을 거쳐 이 강물을 힘차게 거슬러 오를 것임을 또한 알겠지. 그래서 막막해도 포기하지 않고 거슬러 오르는 거겠지. 그렇게 걸어가다가 보면 지친 나의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겠지....... 


알에서 부화한 새끼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강에서 약 1년간 몸을 불린 후 바다로 나간다고 한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5년 동안 1만 km가 넘는 멀고 먼바다 여행 끝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회귀하는데 그때 연어들의 몸은 하나같이 군데군데 찢기거나 심한 상처가 나 있다고 한다. 그 힘든 여정을 끝으로 연어들은 그 어미와 아비 연어가 그랬듯 산란과 수정을 마치고 암컷은 암컷대로 수컷은 수컷대로 삶을 마무리한다고 한다.       


37년간의 여행. 이곳 고향 집을 떠난 이후의 하루하루는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최종 목적지를 향해 거슬러 오르는 여정이었다. 찢기고 긁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용케도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들처럼 힘들고 상처받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긴 여행의 종착지에 도달하였고, 연어가 그러하듯 37년간 내가 품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걸어갈 길을 그리고 있다.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있고, 힘이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아직 가 보지 않은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멈출 수도 속도를 줄일 수도 없는 고속도로를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크고 넓은 신작로도 사양이다. 걷는 것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는 길이면 좋다. 가끔은 자전거에 몸을 싣고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길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날 위해 쏟아지는 햇살은 온전히 즐길 것이다. 들꽃의 고운 빛과 수줍은 향기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37년 전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심지어 가야 할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막막하게 첫발을 내디뎠듯 다가올 여정의 목적지 또한 알지 못한다. 지도와 나침반 역시 굳이 챙기지 않을 것이다. 다만, 길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소박한 꿈 몇 개 정도는 담기에 부족함이 없는 배낭과 튼튼한 신발 한 켤레면 족하다. 험한 길, 어두운 길도 걸어봤기에 두려움은 없다.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는 강박과 초조와는 진작 작별을 하였다. 설렘 만이 나의 동반자다.      


연어들의 마지막 목적지, 그곳이 삶의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삶들이 태어나는 출발점이었듯 이곳 내 고향 집은 이어질 여행을 위한 출발점이자 마지막에 돌아올 목적지이다. 나는 오늘 바다로 나가는 연어다. 길 없는 길을 걷고 걷다가 온몸 가득 여행의 간난신고를 빼곡히 새긴 채 힘찬 몸짓으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커다란 한 마리 연어를 그리면서 내 앞에 보이는 미지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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