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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Apr 29. 2022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쉽지 않아서

- 자격지심과 자괴감에 대하여 -

퇴직 후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내 심기쯤은 알 바 아니라는 듯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며 심사를 헤집어 놓기 일쑤인 불청객, 자격지심과 자괴감이다. 알은체 안 하고 문 꼭꼭 닫고 있으면 제풀에 돌아서더니 이제는 대놓고 불쑥불쑥 머리를 디미는 모양새가 영 거슬린다. 퇴직 한 달 만에 쉬 흔들리고 자주 멈칫거린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비교하고, 지레 위축이 된다. 비싼 차를 타고 온 사람을 만나면 내 오래된 차를 감추고 싶다. 사흘이 멀다 하고 골프를 치러 다닌다는 전직 선배를 만나고 나서 ‘나는 뭔가?’ 싶었다. 같은 퇴직자인데도 새로운 직책을 몇 개씩이나 맡은 친구를 만났을 때는 슬그머니 자라목이 되었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은 날들이다. 머리로는 뭘 그런 걸 가지고 신경을 쓰느냐고 생각을 하는데, 마음은 머리가 한 생각들을 쉬 덮어버린다. 자격지심과 자괴감은 영락없는 쌍둥이다. 불안이란 놈은 바람처럼 찾아와 부채질을 해 댄다.     

  

나흘 전 퇴직 한 선배 몇 분을 만났다. 밥을 먹는 내내 그네의 화려한 인생 2막에 대해 들어야 했다. 하루 걸러 치는 골프 얘기며 부업과 재취업 성공담을 들어줘야 했다. 그 얘기들이 뒷전으로 흘러가지 않고 마음에 고였다. 내내 씁쓸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종 땀까지 흘리면서 열창을 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나 혼자 외계인이 된 듯하였다. 겨우 분위기나 맞추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그동안 뭐를 했길래 제대로 놀 줄도 모르는 거지?’ 한심한 생각이 쐐기로 박였다.    

  

들꽃을 좋아한다. 눈 비비고 보아야 보이는 그놈들이 기특하고, 저마다의 생명력이 대견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좋다. 한없이 여린 듯하지만,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구부리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모습을 나투는 녀석들의 수줍은 오만에는 미소에 더해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장미를 닮으려 하지 않고 모란을 흉내 내려하지 않는, 애초에 그런 마음조차 없이 제 빛깔과 제 향기만으로 빛이 나는 들꽃들을 좋아한다.      


나도 내 빛깔과 향기로 살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인생의 좌우명 비슷하게 삼은 것 중 하나가 ‘구차하지 말자’(不苟)였다. 구차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고, 구차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게 살아왔다. ‘그게 나니까, 이게 나니까’ 토닥이며 내 빛깔과 내 향기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세상은 변한 것이 별로 없는데 나 스스로 들꽃에 내려앉은 누런 황사처럼 칙칙한 생각들로 나를 덮고는 한다. 입으로는 들꽃들을 예찬하면서 마음으로는 장미의 향기와 모란의 화려함을 부러워한다. ‘그게 나니까, 이게 나니까’ 대신 ‘저게 나라면, 이게 나라면’의 백일몽을 꾼다.     


그만 툭툭 털고서 꽃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그 작은 몸집으로 기어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봄맞이꽃을 만나봐야겠다. 환한 미소가 반가운 개별꽃을 만나야겠다. 둥굴레, 은방울꽃의 연둣빛 맑은 종소리를 봐야겠다. 애기똥풀, 살갈퀴, 붓꽃들에게 예쁘다 예쁘다 말을 걸어봐야겠다. 솜나물, 노루귀, 얼레지야 벌써 갔을 테니 새봄에 만나면 되고.......      


그만 툭툭 털고서 제 모양과 제 빛깔들로 저마다 고운 들꽃들을 만나봐야겠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이 힘겹지는 않은지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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