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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May 05. 2022

 빚

주초에 퇴직수당을 받았다. 정산을 하면서는 남아있던 아들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았다. 이로써 줄곧 내 인생과 함께했던 빚과 작별을 하였다. 빚과 완전히 헤어지는 데 30년이 걸렸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지 않은 존재였지만, 빚은 지난 30년간 나의 후견인이자 감독관이자 스승이었다. 식구끼리만 쓸 수 있는 화장실과 부엌이 있는 15평 전셋집으로 이사를 할 때도, 내 인생 첫 집인 낡고 좁은 빌라를 살 때도, 시골 부모님 집을 새로 지을 때도 빚은 나의 빛이었다. 인생의 중요 전기마다, 살림의 몸집을 불릴 때마다 빚은 언제나 내 뒤를 받쳐주는 후견인이었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또한, 내 삶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감시자이자 감독관이기도 하였다.     


신혼 초, 믿고 따르던 친지분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은행 대출을 받아서 빌려줬다가 끝내 못 받고 몇 년 동안 이자까지 갚아야 했던 빚은 세상과 사람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비싸고 속 쓰린 수업료였다.     


애들이 커갈수록, 욕심의 크기가 커질수록 빚은 조금씩 늘어갔고, 늘어나는 빚은 늘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는 짐이고 족쇄였다. 허덕이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빚과 함께 사는 것은 늘 양쪽 발목에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차고서 끝 모를 계단을 오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이제 드디어 그 모래주머니를 풀게 된 것이다.

     

퇴직을 한다니까 재테크에 밝은 한 친구가 ‘퇴직금을 받게 되면 절대 빚부터 갚을 생각하지 말고 투자할 것을 찾아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저리(低利)로 받아놓은 고정금리의 대출을 갚는 대신 투자를 하면 훨씬 이득이니 서둘러 갚지 말고 기회를 찾아보라고 한다. 솔깃한 욕심을 떨쳐 내는데 열흘이 넘게 걸렸다.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친구의 말이 백번 옳은 것 같았다. 요즘처럼 대출금리가 올라가는 시기에 저리로 받은 대출은 말 그대로 내 재산을 불려줄 ‘레버리지’가 될 법도  싶었다. 갭 투자든 뭐든 투자대상만 제대로 고르면 금방이라도 성공한 투자자가 될 것만 같고, 따박따박 월세를 받는 임대사업자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욕심을 떨쳐 내는데 열흘이 넘게 걸렸다. 명예퇴직 수당에 퇴직금까지, 평생 처음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통장 속 숫자들이 빚을 갚는 순간 봄날 눈송이 녹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선뜻 갚지 못하고 긴 시간을 주춤거렸는지도 모른다.     


짧지 않은 망설임 끝에 아파트 담보대출도, 마이너스 통장도, 아들 학자금 대출도 모두 갚아버렸다. 통장의 숫자가 줄어가는 것에 비례해 30년 동안 무게가 늘어 묵직해진 모래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졌고, 언제나 주인처럼 행세하던 익숙하지만 친하지는 않은 존재는 마침내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돈 빚’을 갚으면서 또 다른 빚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기설기 맺은 인연들에게 알게 모르게 진 빚, 때로는 별생각 없이 때로는 작심하고 누군가를 향해 화살보다 아프게 내뱉은 말 빚들을 떠올랐다. 어쩌면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고리 사채는 놔둔 채 저리의 돈 빚만 갚은 것 같다.

     

살면서 참 많은 이들에게 빚을 졌다. 부모 형제, 친구들, 동료들, 이웃들, 때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까지 허다한 빚을 지면서 살아왔다. 담보도, 상환 기한도 없이 아낌없이 내준 분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만큼 살아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꿨더라면 누군가에게 얼마쯤은 당당한 채권자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주로 채무자로 살아왔다. 분에 넘치게 받는 것, 내가 준 것보다 많이 되돌려 받는 것 또한 빚인 줄 알면서도 빚쟁이의 무거운 마음보다 고마운 마음을 앞세우고 살아왔으니, 염치가 없는 짓이었다.      


퇴직을 두어 달 앞두고 있을 무렵 친한 동기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퇴직을 하더라도 ‘자연인’처럼 숨어 살 생각하지 말고 회사에서 맺은 인연들과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내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친구의 말이니 별 뜻 없이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 선후배 동료들에게 진 ‘사람 빚’과 ‘말 빚’을 갚으며 살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돈 빚은 갚았지만, 사람 빛과 말 빚이 남아있다. 일시불 상환은 언감생심이니 조금씩 갚아나갈 생각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아직도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로, 화의 씨앗으로, 헛된 희망의 뿌리로 살아있을지 모를 말 빚들은 어찌 갚아야 할지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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