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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사삭 Jun 28. 2021

일본애니 <시간을 달리는 소녀>리뷰

미래에서 기다릴게.. 곧 갈게, 달려서 갈게..

몇년전 TV채널에서 우연히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일본 애니를 인상 깊게 본 이후, 영화에서 나오는 OST가 좋아 한동안 일본어 가사도 찾아보고 출퇴근 길에 오며 가며 노래했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영화를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슴 설레는 애니를 보니 이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글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몇 자 적어봅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2007년 개봉, 2016년 재개봉된 영화로 늑대아이를 감독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만든 작품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하나만 보았기 때문에 감독의 성향이나, 분위기, 작품세계가 그동안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영화 하나만으로도 곳곳에 녹아든 감독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든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 진정한 행복, 우정, 사랑, 지구의 미래까지도 생각이 확장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곳곳에 이건 뭐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 많답니다. 이를테면, 과학준비실에 쓰여져 있는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_Time waits for no one_"과 같은 문구도 말이죠. 영화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나오는 데, 바로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관통하는 경구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타임리프만을 소재로 한 킬링타임용 영화가 아닌, 타임리프를 통해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돌이킬 수 없는 대로 우리는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엄중한 깨달음, 그리고, 우리의 삶을 진정성 있게(마코토의 이름처럼..마코토는 일본어로 진실, 진심, 진정성 이란 뜻입니다)살아나가야 한다는 의미가 한가득 채워져 있는 영화였습니다. 


주인공인 마코토의 이모는 박물관에서 소실된 그림을 복원하는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데 그 그림이 주는 메시지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져.그린 화가도 미술적 가치도 아직 밝혀진 게 없어 다만 복원 과정에서 한가지 안 사실이 있어. 이 그림이 그려진 건 수백 년 전 큰 전쟁과 기근이 이어지던 시대였어.세상이 망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중, 이모가 복원 중인 그림을 바라보며 조카 마코토에게 한 말-

이 복원 중인 그림이 바로 미래에서 온 치아키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인데, 이모의 말과 치아키가 한말이 맞닿아 있습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어떤 곳에 있어도, 아무리 위험해도 꼭 보고 싶었어. 
내 시대엔 이미 불타서 없어졌어. 이 시대 이전에 어디 있는지 몰라. 확실히 기록에 남아 있는 건 이 시대의 이 계절뿐이었어.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중, 치아키가 마코토에게 그림에 대해 하는 말-


(치아키) 평생 간직하려고 했어. 하지만 이제 아무 의미 없어. 
(마코토)왜 써버렸어? 필요할 때 써야지
(치아키)필요할때였어.누구는 책임감에 울부짖고 이 방법밖에 없었어. 돌아가야 했는데 어느새 여름이 돼버렸어. 너희랑 있는게 너무 즐거웠거든. 땅에서 강이 흐르는걸 처음 봤어. 처음으로 자전거를 탔고,  하늘이 이렇게 넓은줄 처음 알았어.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어.
(마코토)치아키 혹시 그 그림이랑 네가 살던 미래가 무슨 연관이 있어? 말해줘 (치아키)난 이시대가 좋아. 야구도 있고...
- 치아키와 마코토의 대화 중-


치아키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림을 보러 왔다는 걸 유추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치아키가 살고 있는 미래의 지구는 강도 없고, 하늘도 제대로 볼 수 없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 디스토피아의 지구인듯 합니다.

(아.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도 상황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이 지구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반성이 듭니다.)


아직도 생각을 하고 해답을 찾게 되는 부분은 치아키가 왜 그 그림을 그토록 보고 싶어했는지입니다.

과거의 사람들 또한 전쟁과 기아 속에서도 그러한 그림을 그리면서,어려움을 헤쳐나갔다는 희망을 보고 싶었던걸까요? 아니면, 단순히 마음의 평화만을 위해서 그 그림을 보러 위험을 무릅쓰고 왔을까요? 아니면, 사실 그 그림은 미래에서 온 그림이었던걸까요?


마코토는 자신이 우연히 하게 된 타임리프의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영화 뒷부분으로 갈수록 한쪽면만을 생각하고 마코토가 타임리프를 통해 행동한 것들이 나비효과처럼 다른 이들, 그리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깊은 통찰을 던져줍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말과 행동은 그냥 흘러가는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어딘가 땅에 뿌려져 그 결과는 다시 당신에게 돌아오는 부메랑 같은 것입니다 하는 메시지랄까요..)


그리고 친구로만 여겼던 치아키를 자신이 정말 좋아했다는것, 치아키가 마코토에게 사귀자고 고백했던 일을 타임리프를 통해 없었던 일로 해버린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지도 뼈아프게 깨닫게 됩니다. 


치기어리고, 장난끼 많고, 물색없는 어린애같던 마코토는 타임리프의 과정 속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고3 생활을 친구들과 즐겁게 보내면서도 자신의 진로에 대해, 앞날에 대해 진짜 고민을 하는 마코토로 말이지요. 그리고, 어른의 세계에 발 디디기 전, 애매한 경계에 서있던 고등학생 마코토는 순간의 상황만을 모면하려했던 마코토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성숙한 마코토가 된 것 같습니다.

(친구인 유리에게 치아키를 좋아한다고 솔직히 말하는 대목입니다. 이제 마코토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줄 알게 된것이죠)


영화의 결말은, 말그대로 열린 결말입니다.

치아키는 울먹거리는 마코토에게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게 되고, 마코토는 

"금방 갈게 (스구 이쿠), 달려서 갈게(하시테 이쿠)"하고 대답을 합니다.


아. 이 부분은 몇 번을 봐도 너무 좋습니다. 헤어져서 아리고 아프지만, 아마도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치아키와 그런 치아키를 그리워하며 현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마코토의 모습이 그려져서 인가 봅니다. 

(저에겐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다 해낸 기분이더군요.^^ )


짧지만 영화에 대한 소소한 리뷰였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그다음 이야기인 속편이 나온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코토 이모의 과거시절의 숨겨진 이야기(이모 역시 조카인 마코토의 나이 즈음에 타임리프를 통해 첫사랑을 만났었고 떠나간 사랑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기에..), 복원된 그림의 비밀, 치아키가 살고 있는 미래의 이야기, 치아키와 마코토의 재회 등 여러가지가 떠오릅니다.

오늘은 저에게 영화 한 편으로 풍성해진 하루였습니다. 아마도 종종  소중하게 꺼내어 보지 않을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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