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97
<단편소설>
제8화
1950년 4월, 경교장.
김구는 책상 위에 놓인 두 통의 전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나는 평양에서 온 것이었다.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회담 제안을 재검토하겠다"는 내용.
다른 하나는 워싱턴에서 온 것이었다. "남한의 독자적 방위력 강화를 위해 군사 원조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제안.
창밖으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 길이 눈앞에 있구나."
김구는 중얼거렸다.
"하나는 쉬운 길, 하나는 험난한 길. 하지만 쉬운 길은 민족을 영원히 갈라놓는 길이고, 험난한 길은... 혹시 모를 희망의 길이다."
그때 비서가 급히 들어왔다.
"각하, 긴급 보고입니다. 국회에서 강경파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
야당 의원 하나가 단상에 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김구 대통령은 현실을 모릅니다! 북한은 이미 소련의 괴뢰가 되었습니다! 그들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환상입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또 다른 의원이 일어섰다.
"친일파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경제계를 혼란에 빠뜨렸고, 미국과의 관계마저 소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우리는 고립될 것입니다!"
여당 의원들도 술렁였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기획처 장관이 변론에 나섰다.
"의원님들, 토지개혁으로 농업 생산량이 증가했고, 실업률이 감소했습니다. 이것이 혼란입니까? 이것이 발전 아닙니까?"
"숫자 놀음입니다!"
강경파 의원이 반박했다.
"국제 정세를 보십시오! 중국은 공산화되었고, 동유럽은 철의 장막에 갇혔습니다! 지금은 생존의 시기입니다!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봐야 합니다!"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같은 날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두 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한쪽에서는 대학생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통일 없는 평화는 거짓이다!"
"민족의 염원, 평화통일!"
스물두 살 대학생 진수가 확성기를 들었다.
"여러분!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가진 한 민족입니다! 이념이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는 하나입니다!"
환호성이 터졌다.
하지만 광장 건너편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산당과 손잡자는 것은 배신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
월남민들이 주축이 된 집회였다. 함경도에서 내려온 한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공산당 치하에서 살았소!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아시오? 토지개혁이란 명목으로 지주들을 총살했소! 종교인들을 탄압했소! 그들을 믿을 수 없소!"
두 집회 사이에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쳤다. 긴장감이 흘렀다.
그날 밤, 김구는 측근들을 불러 모았다.
내무부 장관이 우려를 표했다.
"각하, 국민 여론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통일을 원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반공을 외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합니다."
김구가 조용히 말했다.
"월남민들은 공산당의 폭압을 몸소 겪었습니다. 그들에게 북한은 악몽입니다.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렇다면..."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민족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김구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이 공산화가 아니라 진정한 자주독립임을, 남과 북 모두의 이념을 초월한 민족 국가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외무부 장관이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일 라디오 연설을 하겠습니다. 국민들에게 직접 말하겠습니다."
다음 날 저녁 8시.
전국의 라디오에서 김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거실에 모인 가족들이 라디오 앞에 둘러앉았다. 시장의 노점상도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공장의 노동자들도 작업을 중단하고 들었다.
"나는 여러분께 솔직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김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절박했다.
"하나는 이대로 분단을 받아들이고, 남한만의 국가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더 쉬운 길일지 모릅니다. 미국의 원조를 받고, 안정을 찾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의 평화입니다. 38선 너머에는 우리의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함경도에, 평안도에, 황해도에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을 포기하고 우리만 잘 살겠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함경도에서 월남한 그 노인이 라디오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나는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김구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 민족입니다. 이념이 다르다고, 체제가 다르다고 그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대학생 진수는 눈을 감고 주먹을 쥐었다.
"여러분, 저는 험난한 길을 가려 합니다. 남과 북이 대화하고,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길을 가려 합니다. 이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압니다."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 후손들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왜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김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나는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민족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자유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자주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통일을 이루는 길을 찾겠습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라디오 앞의 사람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여러분, 나를 믿어주십시오. 조금만 더 힘을 주십시오. 우리 함께, 이 험난한 길을 가십시다."
연설이 끝났다.
다음 날 아침, 남대문 시장.
채소 장사 김 씨가 옆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어제 연설 들었소?"
"들었지. 눈물이 나더군."
"나도 그랬소. 우리 고향이 북쪽인데... 언젠가 돌아갈 수 있을까?"
"각하를 믿어보자고. 해방 후 이렇게까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 분 아니오."
서울대학교 캠퍼스.
진수는 동기들과 얘기하고 있었다.
"어제 연설 듣고 확신했어. 우리가 가는 길이 맞다는 거."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쉬운 일이었으면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었겠지."
함경도에서 월남한 그 노인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주여, 저 사람에게 지혜를 주소서. 그가 가는 길이 험하오니, 힘을 주소서. 그리고... 언젠가 제가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해주소서."
같은 시각, 미국 대사관.
대사는 워싱턴에 긴급 전문을 보내고 있었다.
"김구 대통령이 독자 노선을 강화하고 있음. 통일 정책을 포기할 기미 없음. 미국의 영향력 약화 우려. 대응책 필요."
워싱턴의 답신은 차가웠다.
"남한 내 친미 세력 지원 강화. 김구 정부에 대한 압박 지속. 필요시 군사 원조 재검토 카드 사용."
대사는 한숨을 쉬었다.
"고집 센 늙은이야..."
5월 어느 날 밤, 경교장.
김구는 서재에서 편지를 쓰고 있었다. 북한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공식 제안서였다.
"남과 북의 정치 지도자들이 판문점에서 만나 통일 정부 수립을 논의하자"는 내용이었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각하, 북한이 응할까요?"
"모릅니다."
김구가 솔직하게 답했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아닙니까."
"미국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미국의 눈치를 보며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독립국가입니다."
그는 편지에 서명을 했다.
창밖으로 천둥소리가 들렸다.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
"폭풍이 오는군."
김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폭풍이 지나면 맑은 날이 옵니다. 우리는 그날을 위해 견뎌야 합니다."
그날 밤, 서울 하늘에는 번개가 쳤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하지만 경교장 서재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김구는 밤새 문서를 검토하고, 계획을 세우고, 편지를 썼다.
"등불은 바람이 불수록 더 밝게 빛난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이 민족의 등불이 되겠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겠다."
다음 날 새벽 5시. 비는 그쳤고, 동이 트기 시작했다.
김구는 창문을 열었다. 빗물에 씻긴 서울 거리가 깨끗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날이 왔구나."
그는 미소 지었다.
거리에서는 벌써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유 배달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시장 상인들이 가게 문을 열었다. 공장 노동자들이 출근길에 올랐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아침.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이 땅을,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여러분."
김구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조금만 더 믿어주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해냅니다. 통일된 조국, 자주적인 나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해가 떠올랐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격랑의 파고는 여전히 거셌지만, 경교장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빛을 바라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8화에서는 백범이 직면한 내외부의 압박과 갈등을 그렸습니다. 국회의 반발, 분열된 여론, 강대국의 압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동시에 평범한 국민들이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지하는지도 담았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백범의 의지는 계속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드디어 남북 회담의 막이 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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