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03
<단편소설>
제9화
1950년 6월, 장마가 시작되기 전 무더운 어느 날.
경교장에 긴급 보고가 들어왔다.
“각하, 큰일입니다!”
내무부 장관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
“경상북도 포항에서 대규모 수해가 발생했습니다. 형산강이 범람해 마을 세 곳이 물에 잠겼고, 이재민이 천 명이 넘습니다!”
김구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해 상황을 더 자세히 보고하시오.”
“사망자 15명, 실종자 8명, 가옥 전파 200여 채… 그리고 농경지 대부분이 침수됐습니다.”
김구의 얼굴이 굳어졌다.
“즉시 구호물자를 보내시오. 그리고…”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직접 가겠소.”
“각하! 현장 상황이 위험합니다. 도로도 끊겼고…”
“그렇기 때문에 가야 합니다. 국민이 고통받는데 청와대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다음 날 새벽, 김구는 포항에 도착했다.
진흙탕이 된 마을. 무너진 집들. 허리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가재도구를 건지려 애쓰는 사람들.
한 할머니가 폐허가 된 집터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평생 모은 게 다 떠내려갔어… 이를 어쩐담…”
김구가 다가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일어나십시오.”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대, 대통령 각하…”
“정부가 책임지고 돕겠습니다. 집도 다시 지어드리고, 생활도 안정될 때까지 지원하겠습니다.”
할머니는 김구의 손을 꼭 쥐고 흐느꼈다.
김구는 임시 구호소로 향했다. 학교 강당을 개조한 곳이었다. 젖은 옷을 입은 이재민들이 담요에 몸을 감싼 채 앉아 있었다.
한 청년이 다가왔다.
“각하, 저희를 구하러 오셨습니까?”
“구하러 온 게 아닙니다. 함께하러 왔습니다.”
김구가 말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날 밤, 김구는 구호소 바닥에서 잤다. 이재민들과 똑같이.
포항 수재 소식이 전국에 알려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울 명동 거리.
대학생들이 모금함을 들고 서 있었다.
“포항 수재민을 도웁시다! 십 원, 백 원, 얼마든 좋습니다!”
지나가던 샐러리맨이 지갑을 열었다.
“이거 제 한 달 용돈입니다. 전부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옆에서 구두닦이 소년도 주머니를 뒤졌다.
“저도… 오늘 번 돈인데요. 이거라도 보태요.”
열 원짜리 동전 몇 개였지만, 학생은 정중히 받았다.
부산 자갈치 시장.
생선 장사 김 씨가 동료들을 모았다.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소? 같은 경상도 사람들 아니오.”
“그럼 말이오. 생선을 보냅시다. 신선한 걸로.”
“좋소! 내가 트럭을 구해오겠소!”
그날 저녁, 생선 가득 실은 트럭이 포항으로 출발했다.
대구의 한 방직공장.
여공들이 점심시간에 모여 있었다.
“우리 임금 중에서 십 퍼센트씩만 모읍시다.”
영희가 제안했다.
“그걸로 담요랑 옷을 사서 보냅시다.”
“좋아!”
일주일 후, 새 담요 백 장과 옷가지 수백 벌이 포항으로 향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여러분, 포항에 큰 홍수가 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집을 잃었어요.”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우리도 도울 수 있어요?”
“물론이지. 어떻게 돕고 싶니?”
“제 용돈을 보내고 싶어요.”
“나도요!”
“나도!”
아이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며칠 후, 그 학교 전체 학생들이 모은 돈은 오만 원이었다. 거기에 아이들이 쓴 편지 수백 통이 함께 포항으로 보내졌다.
“포항 아저씨, 아줌마, 힘내세요. 우리가 응원해요.”
“빨리 집을 다시 짓고 행복하게 사세요.”
“우리는 같은 나라 사람이니까 서로 도와야 해요.”
구호소에서 그 편지들을 읽은 어른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 작은 것들이… 우리를 생각해 주다니…”
7월 초, 포항 복구 작업이 본격화됐다.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왔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 백 명. 부산에서 온 노동자 오십 명. 대전에서 온 공무원들. 광주에서 온 농민들.
“우리가 왜 왔는지 아십니까?”
서울대생 진수가 삽을 들며 말했다.
“우리는 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입니다.”
진흙을 퍼내고, 무너진 집을 치우고, 새 집터를 다지는 일.
땀에 젖은 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쉬지 않고 일했다.
“물 좀 드세요!”
마을 아주머니들이 보리차를 날랐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 노인이 절을 했다.
“우리 마을이 이렇게 빨리 일어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어르신. 내일은 우리가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그때는 어르신들이 도와주시면 됩니다.”
복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밤, 경교장.
김구는 포항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째였다.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외무부 장관이 긴급 보고를 가져왔다.
“각하, 미국이 군사 원조를 삭감하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오?”
“표면적으로는 예산 문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통일 정책에 대한 압박입니다.”
김구는 한숨을 쉬었다.
“예상했던 일이오.”
재무부 장관이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포항 복구 비용입니다. 정부 예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미국 원조가 줄면…”
“국민들의 성금이 있지 않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합니다.”
김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한 달간 전국에서 모인 성금이 얼마요?”
“삼천만 환입니다.”
“그리고 물품은?”
“쌀 백 톤, 의류 수만 벌, 생필품 트럭 수십 대 분량…”
김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셨소? 이것이 민족의 힘입니다. 우리에게는 미국의 원조보다 더 강한 것이 있소. 서로를 돕는 국민들의 마음이오.”
8월 15일, 광복 5주년 기념일.
서울역 앞 광장에 수만 명의 군중이 모였다.
단상에 오른 김구는 깊은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국민 여러분.”
확성기를 통해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5년 전 오늘, 우리는 해방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독립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숨죽이며 들었다.
“지난 두 달, 포항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재난 앞에서도 서로를 돕는 민족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서울 사람이 포항을 돕고, 부산 사람이 달려오고, 어린아이들까지 용돈을 모았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힘입니다! 누가 뭐래도, 어떤 외세가 압박해도, 우리는 서로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대한민국 만세!”
누군가 외쳤다.
“만세! 만세! 만세!”
광장이 만세 소리로 울렸다.
김구는 계속 말했다.
“외국의 원조가 줄어든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우리 힘으로 통일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환호성이 터졌다.
“어려움이 올 것입니다. 시련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포항에서 본 것처럼, 우리는 함께 이겨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저력입니다!”
9월, 포항.
복구가 거의 완료됐다.
새로 지은 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논과 밭도 정비됐다. 마을 입구에는 큰 표지석이 세워졌다.
“1950년 대홍수 복구 기념전국 동포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선 마을”
그 아래에는 기부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서울 초등학교 6학년 전체부산 자갈치 어민협회대구 방직 노동조합…
할머니는 새 집 앞에 서서 눈물을 닦았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구나.”
손자가 할머니 손을 잡았다.
“할머니, 나중에 나도 어려운 사람 도울 거예요.”
“그래, 그래야지. 받은 만큼 돌려줘야지.”
마을 회관 앞에서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김구를 주민들이 에워쌌다.
“각하,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을 도운 건 제가 아니라 전국의 국민들입니다.”
한 청년이 물었다.
“각하, 우리가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합니까?”
김구는 미소 지었다.
“여러분이 다시 일어서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보답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이가 어려울 때, 그때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10월, 경교장 서재.
김구는 창밖의 단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서가 보고서를 가져왔다.
“각하, 포항 복구 최종 보고서입니다. 예산의 60%가 국민 성금으로 충당됐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이번 일로 정부 지지율이 15% 상승했습니다.”
김구는 고개를 저었다.
“지지율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
“국민들이 서로를 믿게 됐다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함께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김구는 책상 위의 편지 한 통을 들어 보였다. 포항의 그 할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각하, 우리 마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전국의 따뜻한 마음 덕분입니다. 이제 저도 압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감사합니다.”
김구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이것이 진짜 나라입니다. 서로를 돌보는 나라. 함께 일어서는 나라. 바로 이것이 내가 꿈꾸던 대한민국입니다.”
창밖에서는 가을바람이 불었다.
단풍잎이 떨어졌다가 다시 바람에 날아올랐다.
시련이 있었지만, 민족은 함께 이겨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9화에서는 포항 수재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외부의 압박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이 화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국민적 단결과 자신감은 다음 화에서 펼쳐질 통일을 향한 여정의 든든한 밑거름이 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드디어 역사적인 남북 회담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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