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10
<단편소설>
제10화
1950년 11월, 판문점.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었다.
김구는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회담장으로 걸어갔다. 11월의 찬바람이 옷깃을 스쳤지만, 그의 걸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각하, 준비되셨습니까?"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평생을 준비해왔소."
김구가 조용히 답했다.
회담장 입구.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대표단이 마주 섰다.
그 순간, 김구와 북한 대표의 눈이 마주쳤다.
오랜 침묵. 그리고 김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우리, 이제 시작합시다. 민족의 미래를."
첫째 날.
회담은 예상대로 험난했다.
"남한은 미국의 괴뢰 정부입니다!"
북측 대표가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이야말로 소련의 위성국 아닙니까!"
남측 각료가 맞받아쳤다.
김구는 두 손을 들어 모두를 제지했다.
"동지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우리는 여기서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 뭐고 소련이 뭡니까?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5천년을 함께 살아온 한민족입니다."
회담장이 조용해졌다.
"저는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적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들 아닙니까?"
북측 대표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젊은 시절 김구와 함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었다.
"백범 선생님..."
"김 동지, 기억하시오? 우리가 상해 골목에서 태극기를 만들던 그날을. 우리가 꿈꾸던 조국이 이념으로 갈라진 나라였소?"
노인의 눈가가 붉어졌다.
둘째 날.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통일 정부의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양측은 팽팽히 맞섰다.
"자유민주주의가 기본이어야 합니다."
"인민민주주의가 정의입니다."
김구는 지도 한 장을 펼쳤다. 한반도 전체가 그려진 지도였다.
"동지들, 이것을 보십시오. 이 땅에는 삼천만 동포가 살고 있습니다. 절반은 남쪽에, 절반은 북쪽에. 어느 한쪽의 체제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연방제를 제안합니다."
회담장이 술렁였다.
"남과 북이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되, 외교와 국방은 통합합니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하나의 체제로 나아갑니다. 10년, 2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완벽한 통일을 이루려다 전쟁이 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셋째 날 밤.
회담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김구는 혼자 회담장 밖으로 나왔다. 판문점의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선생님."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북측의 그 노인이었다.
"김 동지."
"선생님, 저는... 저는 믿고 싶습니다.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음만으로는 부족하오. 용기가 필요하오."
두 노인은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별들을 보시오. 남에서 보나 북에서 보나 똑같은 별 아니오?"
김구가 중얼거렸다.
"우리도 마찬가지요. 어디에 살든 우리는 같은 민족이오."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모여 있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회담이 성공하기를..."
한 어머니가 두 손을 모았다.
"우리 아들이 군대에 있어요. 전쟁만은... 전쟁만은 안 됩니다."
대학생 진수는 동기들과 함께 서 있었다.
"형, 될까? 정말 통일이 될까?"
"모르겠어. 하지만 백범 선생님을 믿어보자."
명동성당에서는 밤새 기도회가 열렸다.
"주님, 이 땅에 평화를 주소서. 분단의 아픔을 끝내주소서."
조계사에서도 스님들이 염불을 올렸다.
"나무아미타불... 중생의 고통이 끝나기를..."
전국이 하나의 마음으로 판문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넷째 날 새벽.
72시간의 마라톤 회담 끝에, 기적이 일어났다.
"판문점 선언"
남북은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 남북은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 3년 내 연방제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로드맵을 작성한다.
* 군사분계선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고, 점진적 군축을 추진한다.
* 이산가족 상봉을 즉시 시작한다.
* 남북 경제 협력을 통해 공동 번영을 추구한다.
회담장에서 역사적인 서명이 이뤄졌다.
김구의 손이 떨렸다. 그는 평생 이 순간을 꿈꿔왔다.
붓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쓰는 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안중근 의사님, 윤봉길 의사님, 이봉창 의사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우리가..."
정오, 서울.
라디오에서 특별 방송이 흘러나왔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타결되었습니다! 통일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거리가 폭발했다.
"만세! 만세! 만세!"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 껴안고 울었다.
"우리가 해냈어! 우리가!"
종로 거리에서 한 노인이 태극기를 흔들며 춤을 췄다.
"이제 함경도에 있는 내 형님을 만날 수 있겠구나!"
남대문 시장에서 상인들이 떡을 나눠줬다.
"오늘은 공짜요! 모두 드시오! 축하합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쳐나왔다.
"선생님! 이제 전쟁 안 나는 거죠?"
"그래, 안 난단다. 이제 평화가 온단다."
1951년 1월, 판문점.
첫 이산가족 상봉이 열렸다.
남쪽에서 버스 열 대가 도착했다. 북쪽에서도 같은 수의 버스가 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60대 노인이 인파 속을 헤집고 나아갔다.
"형님! 형님!"
맞은편에서 한 노인이 달려왔다.
"동생아!"
두 형제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형님... 살아계셨구나... 살아계셨구나..."
"이놈아... 네가 살아있을 줄이야..."
70대 할머니는 딸을 찾고 있었다.
"순이야! 순이야!"
"엄마!"
50대의 딸이 달려왔다.
"엄마... 엄마..."
"내 딸... 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주름진 손이 주름진 얼굴을 쓰다듬었다.
김구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것이... 내가 평생 꿈꾸던 장면이오."
그의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1955년 봄.
80세가 된 김구는 경교장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벚꽃이 만발했다.
5년 전 판문점 선언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남북 철도가 연결됐고, 개성에 남북 공동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서울과 평양 간 전화선이 개통됐다.
이산가족 수만 명이 재회했다.
완전한 통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방향은 정해졌다.
정원 벤치에 앉은 김구 옆으로 젊은 보좌관이 다가왔다.
"각하, 서울대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왔습니다."
"주제가 뭔가?"
"'미래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김구는 미소 지었다.
"좋네. 가보세."
며칠 후.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
단상에 오른 김구는 젊은이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러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내가 여러분 나이 때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였지요. 독립을 꿈꾸며 반평생을 싸웠습니다."
학생들이 숨죽이며 들었다.
"해방이 됐을 때, 나는 기뻤습니다. 하지만 곧 좌절했습니다. 나라는 둘로 쪼개졌고, 친일파들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었고,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각하께서 싸우신 거 아닙니까?"
한 학생이 외쳤다.
"그렇소. 싸웠소. 하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소."
김구가 고개를 저었다.
"친일파 청산도, 토지개혁도, 교육 개혁도, 통일을 향한 첫걸음도... 모두 국민들과 함께 이뤄낸 것이오. 나는 그저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이 나라를 지켜주시오. 우리가 피와 땀으로 일궈낸 이 나라를. 그리고 더 나은 나라로 만들어주시오."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각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구는 미소 지었다.
"첫째, 정의를 잊지 마시오.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 되시오."
"둘째, 서로를 돌보시오. 개인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함께 잘사는 사회가 더 중요하오."
"셋째, 평화를 지키시오. 전쟁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소. 대화하고 타협하고 이해하시오."
"넷째, 배우기를 멈추지 마시오. 세상은 변하오. 변화에 적응하되, 원칙은 지키시오."
"마지막으로..."
김구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사랑하시오. 이 땅을, 이 민족을, 서로를.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소."
강당이 숙연해졌다.
"나는 곧 이 세상을 떠날 것이오. 하지만 여러분이 있기에 두렵지 않소. 여러분이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이오."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1960년 여름.
85세의 김구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창밖으로 매미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과 측근들이 병상을 둘러쌌다.
"각하..."
비서가 흐느꼈다.
"울지 마시오."
김구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행복했소. 내가 꿈꾸던 나라를 보았소."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하늘을 보시오. 남과 북, 같은 하늘 아니오? 우리는... 하나요..."
그날 밤, 김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일주일 후, 국장.
서울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상여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백범 선생님... 감사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영결식장.
추도사를 읽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목소리가 떨렸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평생을 민족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독립투사로, 대통령으로, 그리고 통일의 길잡이로..."
북한에서도 조화가 왔다.
"민족의 큰 별이 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지로 향하는 길.
한 노인이 상여 뒤를 따르며 중얼거렸다.
"선생님, 제가 해주에 있는 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젊은 여성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저는 토지개혁으로 땅을 받은 농민의 딸입니다. 그 덕분에 대학을 나왔습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대학생 진수는 이제 서른 살이 됐다.
"선생님, 우리가 잘 지키겠습니다. 선생님이 물려주신 이 나라를."
10화로 <새로운 대한민국 - 백범의 꿈> 연재의 스토리는 마무리합니다.
이제 마지막 <에필로그: 그날 이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다음 연재일에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신 독자들과 브런치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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