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09
매거진 <마음의 서재 글의 정원>
어떤 순간이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머리는 한참 계산을 돌리고 있는데, 몸의 어딘가가 먼저 알고 있는 것 같은 그 순간. 목이 살짝 조여드는 느낌.
가슴이 조용히 따뜻해지는 감각.
배꼽 아래 어딘가가 미세하게 당기는 신호.
우리는 그것을 '직감'이라 부르기도 하고, '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애써 무시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때 내 안에서 뭔가 알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목소리가 늘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직관의 목소리와 두려움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비슷하게 들린다.
둘 다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말을 건다.
둘 다 "하지 마"라고 속삭일 수 있다.
둘 다 "이게 맞아"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별할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살아왔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그 구별은 생각이 아니라 몸에서 먼저 일어난다는 사실이었다.
책상 위 흩어진 것들을 잠깐 치운다.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다.
창문을 열거나, 커튼을 치거나.
몸이 "여기는 잠시 멈춰도 되는 곳"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완벽한 고요를 만들 필요는 없다.
단지 지금 이 시간은 다르다는 신호를 환경에 심는 것이다.
눈을 감는다.
숨을 들이쉬며 속으로 셋을 센다. 내쉬며 다섯을 센다.
"지금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해"라는 생각이 올라오면, 싸우지 않는다.
그냥 바라본다. 구름처럼.
이 3분의 목적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머리의 속도를 늦춰서, 더 느리고 조용한 것이 올라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타이머를 10분으로 맞춘다.
그리고 지금 마음에 걸려 있는 것을 그냥 쓴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는다.
이건 말이 안 돼라는 판단도 잠시 옆에 둔다.
손이 멈추면, "나는 지금 멈추고 싶다"라고 그대로 쓴다.
자유 글쓰기의 비밀은 이것이다.
처음 3~4분은 머리가 쓴다.
그 이후부터는, 종종 머리가 모르는 것이 손을 통해 나온다.
10분이 지나면 읽는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신호다.
방금 쓴 글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단어, 반복된 단어, 예상 밖에 튀어나온 단어를 3개 골라낸다.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손이 먼저 가는 단어를 고른다.
예를 들어, "무섭다" "그래도" "결국" 이 세 단어가 골라졌다면 이미 그 안에 당신이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눈을 감고, 그 3개의 단어를 천천히 떠올린다.
그때 어떤 이미지가 먼저 올라오는가?
풍경인가, 사람인가, 색인가, 질감인가.
그리고 묻는다. 지금 몸의 어디가 반응하는가?
목이 조여든다면 — 두려움이 먼저 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슴이 조용히 열리는 느낌이라면 — 확신에 가까운 신호다.
배 아래가 묵직하게 당긴다면 — 아직 내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있다.
틀린 답은 없다. 몸은 거짓말을 잘 못한다.
이제 묻는다.
"지금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한 마디는 무엇인가?"
생각하지 말고, 바로 쓴다. 한 줄로.
"조금 더 기다려라."
"이건 네가 원하는 게 맞아."
"먼저 한 발 내디뎌도 된다."
"아직 아니야."
이 한 줄이 직관의 지시문이다.
이 작업은 강력하지만, 신비롭지는 않다.
자유 글쓰기와 이미지 연상은 무의식의 언어를 가시화하는 도구다.
그것이 언제나 옳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직관은 때로 확증편향을 입고 나온다.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신인 척 포장해서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한 가지 원칙을 지킨다.
중대한 결정은 반드시 숙면 후에 다시 확인한다.
한 줄 지시문을 받아 적어 두고, 자고 일어나서 다시 읽는다.
낮의 감각과 아침의 감각이 같다면, 그때 비로소 신뢰해도 좋다.
우리는 종종 내 안의 목소리를 너무 신비화하거나, 반대로 너무 무시한다.
신비화는 맹목이 되고, 무시는 자기 불신이 된다.
이 훈련은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되 검증하고, 두려움과 확신을 구별하되 단정하지 않으며,
결국 천천히, 자기 자신을 다시 신뢰해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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