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허세도쿄 01화

파우치 속에서 발견한 도쿄의 드레스코드

핸드타월은 명함, 네일오일은 암호

by Asparagus


What's in my bag?


일본 어패럴 업계의 여성들의 가방은 단순한 가방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하나의 잡지처럼, 일정한 룰과 흐름이 있었다.

그녀들의 가방 속에는 작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고, 조용한 자기소개서이다.



남의 가방은 늘, 흥미롭다.

그 안에는 화장품도 있고 지갑도 있고, 보통은 쓰다만 립스틱과

주름진 영수증도 들어있다.

하지만 세련된 여자들의 가방에서는 늘 '조금 더'가 나온다.


나는 그들의 가방 속, 또는 파우치 속을 은근슬쩍 또는 아주 진지하게

관찰하는 도둑 같은 취미가 생겼다.

첫 탐색은 화장실에서 시작됐다.

세면대 앞에서 그들이 조심스럽게 꺼내드는 핸드타월, 파우치.

그리고 책상 위에 무심한 듯 올려놓은 올려둔 립밤과 핸드크림 등을

그리고 그들만의 가방 속 드레스코드를 발견하고

혼자 재밌어했다.




남의 가방 속 이야기, 지금부터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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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ge YouTube Channel 영상캡처



1. TEKLA 핸드타월 - 손에 들린 명함 같은 것.


이쯤에서 잠깐 묻고 싶다.

여러분은 손을 씻고 나서 어떻게 말리시나요?

나는 평소에 티슈 한 장으로 물기를 타닥타닥 닦고

없으면 손을 털고, 더 없으면 윗옷에 슬쩍 닦았다.

이건 내게 꽤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하지만 일본 회사의 화장실에선 이 행동이 묘한 주목을 받았다.



" 어라 핸드타월 안 들고 다녀요? "


" 귀찮아서요 ~ " 하고 웃었지만 사실은 속으로 반성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문명에 뒤쳐진 유인원 같았다.



그녀들의 손에는 늘 TEKLA 타월이 들려 있었다.

' 그냥 핸드타월이 아니라. 테 크려야 만 하는 ' 미묘한 룰이 있는 듯했다.

야후재팬에 < TEKLA ハンドタオル > 테클라핸드타월이라고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테클라 핸드타월이 왜 이렇게 인기인 거예요?라는 질문이

자동완성으로 뜬다.

그만큼 집단적이고 신비로운 존재.



그러다 한국에 다녀온 기념으로 올리브영에서 산 선크림을 팀원들에게

나눠줬는데, 며칠 후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답례로 테클라 핸드타월을 건넸다.

그 순간 나는 뭔가에 입단한 기분이었다.

나도 이제 'TEKLA걸 ' 이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손을 씻고 나선 그 테클라 타월을 꺼내

조심스럽게 펼쳐 손을 닦는다.

거울 속 나는 좀 더 도쿄온나 (여자) 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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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ge YouTube Channel 영상캡처





2. 우카(uka) nail oil - 여성스러움도 브랜드가 있다.


그녀들의 파우치 속에서 두 번째로 자주 보이는 건 바로 이거다.

우카(uka) nail oil

심지어 아무 우카도 안된다. ' 시간 시리즈 ' 우카여야 한다.

7:15 , 13:00 , 18:30 , 24:15...

왜 시간 단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의 파우치에는 정해진 듯 이 숫자가 들어 있는 작은 오일병이 있다.


이쯤 되면 종교에 가깝다.

" 일본 여성분들은 되게 손이 예쁘세요. 네일오일을 항상 들고 다니시네요? "

일본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손톱 주변이 너무 건조해져서

하나쯤 있으면 좋아요 호호 "



호호까지 포함해서 말투마저 제품 설명처럼 느껴졌다.

참 정제된 감각이다.

우카 오일은 단순히 손톱을 보호하는 용도가 아니라

나는 신경 쓰는 여자예요 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일본 여성들의 생일 선물을 고를 일이 생기면

나는 망설이지 않는다.

예산이 3000엔? 그럼 우카 네일오일!


백발백중이다.

특히 13:00 점심시간처럼 편안하고 무난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녀들의 파우치 속에 들어있는 작은 병.

일본의 올리브영 Cosme Kitchen에서 조심스럽게 골라 들었죠.

나도 손톱관리 하는 여자가 돼 볼까? 하며요


하지만 문제는요..

도통 쓰질 않습니다.

처음엔 그녀들처럼 점심시간에 노트북을 덮고 작은 병을 살짝 꺼내 손끝에 톡, 톡, 바르며

저는 " 13:00 향이 제일 잘 맞더라고요~ " 같은 말을 누군가에게 툭 던지고 싶었으나

현실은,

오일이 미끄러워 키보드에 자국도 남고..

결국 몇 번 쓰다가 책상 서랍 어딘가에 푹 박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용량은 아직도 90%


아. 우카 네일오일만큼은 ' 그녀들의 클럽 ' 입성실패.

괜찮습니다. 핸드타월로 이미 입장 티켓을 끊었으니까요

화장실에서 테클라로 손을 닦는 나 -

이 정도면 충분히 도쿄의 한켠에 어깨를 걸치고 있는 셈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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