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네온사인 뒤의 기도
도쿄에 오래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의외로 ‘미신’을 꽤나 진지하게 신봉한다는 사실이다.
회사에서는 첨단 AI와 블록체인을 이야기하다가도,
퇴근길에는 신사 앞에서 오마모리(お守り, 부적)를 하나 챙긴다.
회의실에서는 숫자 데이터를 중시하다가도,
시험이나 승진 앞에서는 꼭 신사에 들러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절을 한다.
쿨하고 현대적인 도시 한복판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조금 놀라게 한다.
일본에는 테마별 파워스팟이 있다.
연애 성취에 효험이 있다는 신사, 결혼 성사로 유명한 신사,
그리고 취업과 시험 합격으로 이름난 절까지.
도쿄에 사는 친구 A는 소개팅 전에 꼭 **도쿄다이진궁(東京大神宮)**에 간다.
“여긴 진짜 효과 있어!”라며 매번 새로운 오마모리를 사는 모습은
귀엽다 못해 간절해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또 다른 동료는 취업 시즌마다 **가메이도 텐진구(亀戸天神宮)**에 들러
학문의 신에게 합격을 기원한다.
그리고 실제로 내정을 받았을 때,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오, 그 오마모리 효과 꽤 쎘네.”
그 순간, 그의 신앙심은 주가처럼 치솟았다.
신사에 가면 꼭 있는 게 오마모리 가게다.
연애운, 금전운, 건강운, 합격운, 교통안전까지 없는 게 없다.
특히 자동차용 오마모리는 마치 차량 옵션 같다.
안전벨트 옆에 ‘신의 가호’까지 달린 셈이니까.
일본의 여름휴가, 오봉이 끝나면 꼭 하나씩 선물이 들어온다.
친구 A는 연애운, 친구 B는 합격운, 친구 C는 금전운.
덕분에 내 책상은 작은 신사 분점처럼 변해버렸다.
펜꽂이 옆에는 합격 기원, 모니터 옆에는 금전운,
책 더미 위에는 연애운.
어느 날은 부적이 나 대신 회의에 들어가
“이번 프로젝트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절이라도 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다들 휴가 코스로 신사와 절을 필수 방문하는 모양이다.
스키야키 먹고, 불꽃놀이 보고, 마지막엔 “결혼운 상승” 오마모리까지 챙겨오는…
이건 거의 일본식 풀 패키지 관광인듯
사실 아무도 내가 크리스천인 건 모른다.
그래서 부적을 받을 때마다 이상한 내적 갈등이 생긴다.
“이거… 버리면 벌 받을까? 그런데 갖고 있자니 좀 애매한데…”
솔직히 말해, 나에겐 그게 세상에서 제일 난감한 선물이다.
꽃다발은 말리면 되고, 케이크는 먹으면 되는데,
부적은…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설명서가 없다.
마치 “신의 의지”라는 첨부 파일이 달린 스팸 메일을 받은 기분이다.
재밌는 건, 파워스팟이 꼭 거대한 신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요요기공원을 파워스팟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메이지진구 깊은 숲속 작은 우물을
‘인생 리셋 버튼’처럼 여긴다.
도쿄에서 파워스팟은 멀리 있지 않다.
누군가에겐 단골 카페의 창가 자리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오다이바에서 바라보는 야경일 수도 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그 순간 그 자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고 다시 살아가게 하는 은밀한 충전소가 된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문득 생각한다.
도쿄라는 도시는 반짝이는 네온사인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 뒤에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기대고 싶은,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이 숨어 있다.
어쩌면 그 믿음이야말로 이 도시의 진짜 배터리일지 모른다.
화려한 전광판 불빛 뒤에서,
조용히 사람을 앞으로 밀어주는 보이지 않는 힘.
도쿄는 결국, 미신과 허세가 공존하는 도시다.
그리고 그 묘한 균형이야말로,
도쿄를 끝내 매혹적이고, 또 조금은 미스터리하게 만드는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