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식 에르메스 사용법.
에르메스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보통 가방을 떠올린다.
버킨, 켈리, 콘스탄스, 이름만 들어도 셀럽 냄새가 나는
그 가방들.
하지만 일본에서는 좀 다르다.
조용하고 단단한 취향의 사람들은, 말없이 손목 위에
에르메스 은팔찌를 올리거나 은반지를 낀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 반짝임엔 어떤 '경험의 두께' 같은것이 있다.
도쿄 패션계의 몸담은 사람들끼리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걸까.
우정팔찌라도 되는듯, 모두가 하나쯤 갖고 있는 은팔찌.
특히 자주 보이는 건 에르메스의 샹달(Chaine d’Ancre) 시리즈다.
코끼리 고리처럼 생기도하고, 캔뚜껑 처럼도 생긴 묘한 모양.
그걸 슬쩍슬쩍 손목위에 얹는다.
그리고 옷은 의외로 아주 미니멀하다.
살짝 여유 있는 반팔 티, 세탁을 여러 번 거쳐 부드러워진 청바지.
그 위에 은은한 광택의 손목.
에르메스다. 가까이에서 보면 바로 안다.
한국에서 에르메스는 가방으로, 도쿄의 그녀들은 팔찌로 말한다.
어느날,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 유니클로의 어느 부서와 미팅이 있었다.
명함을 주고받고 테이블에 앉았을 때, 상대팀은 정말
' 유니클로 답게 ' 나왔다.
깔끔하고 간결한 차림. 과장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손목엔, 빈티지 에르메스 샹달 팔찌가 있었다.
흔히 보던 모델이 아니라 빈티지임을 확신했다.
나는 대화를 하면서도 자꾸만 팔찌를 힐끔거리게 됐다.
은은하게 빛나던 샹달 장식.
그건 브랜드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그녀만의 취향이자 결심 같기도 했다.
손목위에 에르메스 팔찌하나
그외에는 아무장식 없이, 은은한 향수 냄새만 남겼던 그녀.
자주보던 그 샹달팔찌를 평범한 그녀가 차고있으니 달라보였다.
일상과 공존할수 있는 사치를 고르는 도쿄 여성의 태도가 느껴졌달까.
참으로 그것은 도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였다.
나의 구매 결정은 생각보다 담백했다.
예뻐서도, 단순한 욕망 때문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태도’의 선택이었다.
무언가를 가질 자격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
“나, 이 정도는 써도 되는 사람 아닌가?”
팔찌가 조용히 물었고,
나는 더 조용히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지갑은 잠깐 찡그렸지만)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 있었을 수도 있지만 없었다'
소문대로 절대로 ' 쉽게 ' 주지 않는다.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가 샹달 팔찌 있어요? 라고 물으면
정중한미소를 짓으며 꼭 한템포 늦게 대답한다.
지금은 없고요.. 다시 들어올 예정이긴 한데..
그 말엔 사실 이런 뜻이 담겨있다.
' 당신의 원하는 마음은 알지만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
마치 어떤 자격시험 처럼 느껴진다.
나는 손님이 아니라 ' 후보자' 가 된기분이다.
그 깐깐함은 사람을 지치게한다.
나는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평사원이다.
그렇게 자주 에르메스에 들러 팔찌의 안부를 물어볼 여유가 없다.
그래서 기다림은 자연스레 자기 점검이 되었다.
“그냥 웃돈 주고 구매대행할까?”
“너, 정말 이게 갖고 싶은 거 맞아?”
나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다.
갖은 질문을 내게 하고있을때
마지막으로, 퇴근길에 들렸다.
" 혹시 오늘은 ..없을까요?"
" 다른 점포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어렵네요.."
'없으면 없다'고 하지 왜, 어렵다고 하는건지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직원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 오늘 들어온 다른 제품이 있는데... 보실래요?"
안 살 거지만 보겠다고 했다.
그가 꺼낸 작은 상자 안에는 반지 하나.
오스모스(Osmose)였다.
그런데 진짜 어찌하면 좋을까
사이즈가 딱 맞았다.
아무 힘을 들이지 않고 손가락에 툭- 들어갔다.
오스모스는 라틴어로 ' 침투 '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그반지는 아주 조용하게 나에게 들어왔다.
깊게
그리고 계획에 없는 일을 저질렀다.
" 주세요 "
그날 , 나는 팔찌 대신 반지를 샀다.
하지만 그건 팔찌의 대체품 도, 타협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건 생각보다 더 나를 오래 데려다줄 선택이라는 확신이들었다.
지금도 내 손가락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오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