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도쿄 사람들의 빈티지 예찬.
한때, 나는 빈티지를 경계했다.
“남이 입던 걸 왜 입어?”
묘하게 남의 체온이 남아 있을 것 같고,
보이지 않는 얼룩이나 실패한 연애의 잔향 같은 게 배어 있을까 봐.
그건 마치 낯선 사람의 이불을 덮고 자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도쿄 여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슬며시 마음이 흔들린다. 묘하게 빈티지가 입고 싶어진다.
그들은 하나같이 ‘단골 빈티지 숍’을 갖고 있다.
“난 다이칸야마 쪽에만 가.”
“코엔지 이 가게 사장님이랑 좀 친해서…”
빈티지에도 구역이 있고, 취향이 있다.
빈티지에 마음을 연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어느 날, 친구가 입고 있던 재킷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프랑스 브랜드인가?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이거? 빈티지야.”
그 순간, 나는 모든 의심을 벗고
호기심으로 갈아입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세련된 숍들이 즐비했다.
처음 빈티지숍을 구경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요요기우에하라 골목 안의 작은 가게.
정장 바지보다 ‘원단 설명’이 더 긴 곳.
마치 시간여행 에이전시 같았다.
“이건 1950년대 프랑스 남부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셔츠예요.”
점원이 말했다.
속으론 ‘그걸 꼭 알아야 하나요?’ 하고 웃었지만,
그 셔츠는 어딘가 오래된 재즈처럼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모테산도 ‘BerBerJin’에서 리바이스 501을 집었다.
그리고 가격표를 보고 멈칫.
25만 엔.
“… 중고 아니에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점원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빈티지에선 오래될수록 희귀하거든요.”
그리고 손가락으로 바지를 가리켰다.
“이 워싱은 시간이 만든 거예요.”
(이해는 하겠습니다만...)
옆에 있던 바지를 하나 더 들어봤다.
그 바지에는 더 큰 숫자가 붙어 있었다.
빈티지를 살짝 우습게 본 나,
매우 실례했습니다.
이 세계에선 나이 든 옷이 더 비싸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다이칸야마의 셀렉트숍에서
Apple 초기 로고가 프린트된 낡은 티셔츠를 봤다.
세탁기에서 백 번쯤 삶은 듯한 그것.
가격표엔 29,800엔.
8초간 가격표를 들여다보다,
조용히 제자리에 걸었다.
‘애플을 사랑하는 마음만 가져갈게요…’
이게 바로 도쿄식 불공평.
아주 패셔너블한 방식으로.
아직까지 “이 돈이면 새 거 사지”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는 빈티지 초급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빈티지는 조금 다르다.
‘빈티지스럽게 만든 새 옷’을 산다.
바랜 티셔츠, 워싱된 데님, 일부러 낡게 만든 로고.
그건 오래된 척하면서도 어딘가 안심이 된다.
하지만 일본은 진심이다.
진짜 1980년대 옷,
누군가 실제로 입고 걷고 넘어졌던 그 옷을
‘지금 이 순간’ 입는다.
도쿄에선 기성복과 빈티지,
명품과 생활복 사이 경계가 흐릿하다.
빈티지 리바이스에 샤넬 플랫을 매치하고,
헐렁한 티셔츠에 낡은 셀린느 백을 든다.
이건 어떤 ‘전략’이 아니라
그녀들이 살아온 시간을
스타일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빈티지를 입는다는 건,
시간과 시간을 섞는 일.
지금의 나와, 오래된 무언가가
서로를 알아보는 일이다.
어떤 날은,
그 과거가 오늘의 나보다 더 멋져 보인다.
새 옷보다 오래된 셔츠 하나가 더 설레는 날도 있다.
그게 도쿄의 빈티지다.
낡았다기보다 잘 늙었다고 부르는 게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