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허세도쿄 08화

도쿄 직장인의 사치스러운 회복 루틴

패션으로 치유받고 , 곱창으로 마무리

by Asparagus




도쿄에 오래 살다 보면,
가끔 이 도시가 도쿄스럽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처음엔 모든 게 반짝였고,
작은 거리의 간판 하나에도 “예쁘다!”며 사진을 찍었지만,
어느새 익숙함은 감탄을 앗아가고,
풍경은 그저 배경이 되어버린다.


매일 지나치는 편의점,

늘 그 자리에 있는 야키토리집,
주말마다 북적이는 카페들.


모든 것이 너무 정확하게 예측 가능하고,
심지어 사계절조차 정시에 도착한다.




그래서 도쿄가 익숙해져서 심심해질 때,
나는 센다가야의 GIGINA YB 맨션으로 간다.

이름은 맨션이지만,
호텔도, 아파트도 아니다.
정체불명의 편집숍과 빈티지 셀렉숍이 뒤엉켜 있는 기묘한 장소.


이곳은 진짜 ‘아이쇼핑’이 가능한 곳이다.
입으면 도대체 어딜 가야 할지 모를 옷들을 보며 피식 웃고,
실용성 제로인 가방에 살짝 욕망을 품는다.


처음 보는 브랜드가 수두룩해서
“이런 브랜드도 있었나?” 하며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검색하게 되는 공간.


그 기묘한 옷들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런 걸 보려고 일본에 살고 있지.’




일본의 패션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결혼식, 입학식, 졸업식.
모든 공식 석상에는 복장 룰이 존재하는 정제된 사회.
하지만 하라주쿠에서는 그 정제됨에 반항이라도 하듯,
미친 컬러 배합과 의미불명의 타투,
체인처럼 얽힌 액세서리들이 거리를 누빈다.


GIGINA는 그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다.
파격적이지만 어딘가 조화롭고,
망가진 듯 입었지만, 모두 계산된 룩.

거기서 일하는 점원마저 ‘지지나답다’.



가끔은 생각한다.
“누가 이런 걸 사지?”
물론, 매출은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걸 ‘굳이’ 갖다 놓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보기만 해도 좋고,
그래서 나는 다시 도쿄가 도쿄처럼 느껴진다.




사진 인스타그램 gigina_official_japan







그리고 난 곱창을 먹으러 간다.
도쿄 학예대학 근처의 ‘야켄’이라는 곱창집.
스시도 아니고, 라멘도 아니고.


왜 하필 곱창이냐고 묻는다면,
곱창은 내게 가장 일본적인 방식으로
한국스러운 위로를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호르몬.
한때는 버려지던 장기.
“냄새난다”며 코를 찌푸리던 그것은
이제 야키니쿠 코스에서 가장 먼저 품절되는 인기 스타가 되었다.


‘호르몬’이라는 말이
‘버리는 것(放るもん)’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왠지 더 깊이 씹게 된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정육점 뒷마당에서
버려지던 부속 고기를 주워와
마늘을 듬뿍 넣고, 연탄불에 구웠다.


기름은 타닥타닥 불꽃 위로 튀었고,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가 골목을 돌았다.
사람들은 그 연기 속에서
삶을 버티고, 가족을 먹였다.


그렇게 태어난 음식이다. 곱창은.




이제 곱창은
‘기름지지만 묵직하진 않고, 고소한데도 깔끔한 마무리’
같은 그럴듯한 설명을 달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곱창을 씹을 때마다
마치 무명 생활 20년을 버틴 조연배우가
드디어 주연상을 들고 무대에 서는 장면을 떠올린다.


기립 박수를 받는,
늦었지만 가장 빛나는 순간.





그래서 곱창은,
이국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음식이다.

기묘한 옷들을 구경하고,
고소한 곱창을 씹고 나면,
도쿄의 권태로움은 조용히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일의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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