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허세도쿄 06화

족발이 아니다, 타비슈즈다.

그녀들의 발끝엔 늘 마르지엘라가 있다— Tabi Boots,

by Asparagus


갈라진 앞코.


처음 보면, 누구나 당황한다.
족발이다, 동물 발바닥이다,
말이 많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꾸만 멈춰 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빠져든다. 한없이 진지하게.


어패럴 업계에서 일하는 여자의 신발장엔

거의 100% 확률로 타비 슈즈가 한 켤레 있다.

명찰 대신, 그들은 갈라진 앞코를 신고 출근한다.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자주 놀랐다.
어느 날은 플랫, 어느 날은 부츠,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룩인데,
모두가 타비를 신고 있었다.
운동화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얼마 전, 우리 팀 신입이 수줍게 말했다.

“저… 첫 월급으로 타비 부츠 샀어요.”


과감하다.

스무 살짜리 첫 월급의 소비가 마르지엘라라니..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 나는 첫 월급으로 뭐 샀더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타비는 아니었다.

분명 그보다 훨씬 쓸모없고 저렴한 무언가였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생각했다.
근데 왜 우리 회사 여자들은 다 타비에 이렇게 진심이지?

설마, 이거 우리 회사만의 전염병인가?
아니면 도쿄 어패럴계의 일종의 입문 의식 같은 건가?


tabi-footwear-thumbnail.png image from sakura.co



일단 타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 원형은 일본 전통 양말 ‘たび(타비)’에서 왔다.
발가락이 갈라져 있는 그 양말 말이다.

익숙함 때문일까, 애국심 때문일까—아마 둘 다 조금?

그 기묘하게 갈라진 앞코에
도쿄 여자들은 거의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바친다.


신주쿠 이세탄, 시부야 파르코, 오모테산도의 편집숍.

어느 길을 가든, 타비는 늘 어딘가에 놓여 있다.
특별한 광고도 하지 않지만

어느 편집숍을 가던 타비가 놓여있다.


놀랍게도 일부 바이어들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우린 마르지엘라 라인은 수입하지 않지만, 타비만큼은 따로 들여와요.”


그게 무슨 뜻일까.

아마도 타비는 더 이상 단순한 ‘브랜드 제품’이 아니다.

그건 이미 패션 언어의 알파벳 하나쯤으로 자리 잡았다.


마르지엘라 전체를 데려오지 못해도,

타비만큼은 반드시 매장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마치 레스토랑에 와인이 빠지면 안 되듯,

편집숍 진열대에도 타비는 기본 세팅이라는 얘기다.


매장 직원들이 자사 브랜드 옷을 입고, 발끝에는 타비를 신는 풍경도 흔하다.

브랜드 룰을 어긴 듯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룩은 완성된다.

그녀들의 의도적인 선택이다.


타비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이 룩을 한 단계 더 기묘하게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비는 브랜드의 충성도를 가로지른다.

심지어는 ‘옷은 뭐든 괜찮아. 하지만 발끝은 타비여야 한다’라는

묘한 불문율까지 만들어낸다.



어패럴계는 기본적으로

‘유행에 살고 유행에 죽는’ 곳이다.
그 속에서 ‘조금 이상한 신발’을 택하는 일은
나만의 미감을 고수하겠다는, 조용하지만 완고한 선언이다.

갈라진 발끝에서 뻗어 나오는 고집.
그건 생각보다 단단하다.



… 고백하자면, 나도 샀다.

장바구니에서 현관까지 오는데 5년이 걸렸다.


처음 신으면, 누구나 살짝 웃는다.
본인도.주변 사람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갈라졌는데 안정감이 있다.
분리됐는데, 편안하다.

이건 신어 보지 않으면 끝내 모르는 종류의 이해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이거만 신게 되더라.”


디자인이 과감해서 놓치기 쉬운데, 타비는 정말 편하다.

하루 종일 서 있는 매장 스태프들이 그걸 증명한다.

발볼이 벌어지며 체중이 고르게 분산되고,

앞꿈치가 툭—하고 지면을 밀 때 그 미세한 추진감.

패셔너블한데, 아프지 않다.


한 켤레로 시작하면 끝이 없다.

타비 플랫, 타비 부츠, 타비 메리제인, 타비 힐…

언젠가부터 장바구니가 ‘타비 생태계’가 된다.


그냥… 그렇게 되는 거다.


왜냐면, 타비는 의외로 만능이니까.

페미닌에도, 미니멀에도, 시크에도, 루즈에도 다 맞는다.

롱스커트의 결을 가르고, 데님의 여유를 정리하고,

테일러드의 선을 한 칸 더 또렷하게 만든다.

어떤 룩도 타비 한 켤레로 정리된다.

마침표이자, 숨은 느낌표.


조용한데 강한.
소리 없는 감탄사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다.

볼수록, 더 예쁘다.


지금 내 장바구니엔

블랙 컬러의 8cm 타비 힐이 들어 있다.


한 달째, 넣었다 뺐다를 반복 중이다.
육아 중이라 신을 일이 많진 않지만…
타비는 ‘소장용’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일종의 안심이다.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물건.


마르지엘라는 그런 브랜드다.

사랑과 소비 사이에서 늘 망설이게 한다.
비싼 가격에 만지기도 무서울 때가 있지만
타비만큼은, 이상하게도 예외다.

자꾸만 — 다시, 사고 싶어진다.


언젠가 결제 버튼을 누르는 밤,

지갑은 한숨, 발끝은 신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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