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믿음 – 일본의 오마모리 사용설명서
도쿄의 번화가, 후쿠오카의 조용한 골목, 삿포로의 지하철.
일본 어디를 가도 가방 끝에는 꼭 ‘무언가’가 매달려 있다.
인형, 키링… 그리고 그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건
**오마모리(お守り)**다.
오마모리는 일본 신사나 절에서 파는 일종의 부적이다.
건강, 연애, 학업, 안전 같은 소원을 담아 지니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주머니다.
하지만 요즘 일본에선 그게 꼭 종교적인 이유일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아이돌 포토카드, 행운의 원석,
심지어 미우미우 백참까지도 “나만의 오마모리”라 부른다.
한국이라면 “귀여워서 샀어”로 끝날 일이,
일본에서는 “이건 나를 지켜주는 거야”로 변한다.
처음 오마모리를 받았을 때, 조금 당황했다.
친구가 “시험 합격으로 유명한 절에서 사왔어” 하며 내밀었다.
“고마워… 근데… 이거, 부적이지?”
나는 한참 동안 그 작은 주머니를 손에 들고 있었다.
크리스천인 나에게 그건 약간의 딜레마였다.
믿음과 미신 사이에서,
나는 그냥 디자인만 감상하기로 했다.
결국 몇 달 동안 서랍에서 눈치만 보다가, 대청소 날
조용히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말았다.
미안하다, 오마모리.
그런데 자꾸 들렸다.
폰 케이스 속 사진, 가방에 매달린 키링,
지갑에 꽁꽁 넣어둔 아이돌 포카까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이건 내 오마모리야.”
나는 잠깐 혼란스러웠다.
아니, 세상에… 다 오마모리라고?
‘오마모리’는 ‘나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대체 얼마나 지킴을 받고 싶은 걸까.”
이쯤 되면 ‘집단적 보호본능 국가’ 아닌가 싶다.
귀엽고, 조금 짠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이 나라에서 오마모리는 이미 ‘부적’의 영역을 벗어나
‘마음의 오브제’로 진화해 있었다.
큰맘 먹고지른 까르띠에 반지도,
로에베의 작은 백참도
하라주쿠에서 충동구매한 키티 인형도,
누군가에게는 모두 ‘오마모리’였다.
하나같이 작고, 의미는 불분명하지만,
그 안에는 ‘나를 위한 위안’이 들어 있다.
보이지 않는 안심의 장치 같은 것.
가끔 나는 상상한다.
귀여운 마스코트를 만들어서
“여러분을 지켜줄 수호신이에요~”
라고 마케팅하면 어떨까.
솔직히 말해, 꽤 잘 팔릴 것 같다.
그건 반쯤 농담이었지만, 반쯤은 진심이었다.
왜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오마모리를 챙길까.
내 결론은 이거다.
이 나라는 잦은 지진과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작은 물건 하나로라도 마음을 붙잡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거다.
지키고 싶은 게 많을수록,
그걸 지켜주는 무언가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오마모리는 종교보다,
생활에 가까운 ‘감정의 장치’다.
일종의 emotional hardware.
한국에서도 요즘 가방에 뭐 하나쯤은 달고 다닌다.
인형, 키링, 백참, 찰옥수수 키링까지.
‘백꾸’라는 단어도 생겼다.
하지만 일본은 조금 다르다.
그 장식들이 전부 ‘나를 지켜주는 무언가’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그건 유행 + 신념이다.
감성 무장. 무해한 마법. 개인적인 주술.
그래서 나도 하나 들였다.
어느 날, 초록빛이 도는 말라카이트 원석을 샀다.
회사 책상 한쪽에 조용히 놓아두었다.
지나가던 동료가 묻는다.
“이 초록색 돌은 뭐야?”
나는 대답한다.
“나의 오마모리야.”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아무 말 없이 지나간다.
일본에서는 그게 가장 예의 바른 반응이다.
손바닥만 한 믿음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뭐가 나쁘겠는가.
때로는 그 작은 믿음이,
내 하루를 지켜주는 가장 패셔너블한 아이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