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도쿄여자의 손에는 늘 론허먼 쇼핑백이 걸려 있다

by Asparagus



누군가 예쁜 옷을 입고, 감각적인 가방을 걸쳤을 때

“어디서 샀어요?” 하고 물어보면

그럼 대답은 거의 확률 게임처럼 돌아온다.


“Ron Herman(론허먼) 에서요.”


친구가 목에 건 긴 진주 목걸이도,

동료가 아무렇지 않게 눌러쓴 매쉬 버킷햇도,

팀장님이 매일 입고 오는 바버 자켓도—

전부 론허먼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철수, 영희, 그리고 옷 잘 입는 옆집 아주머니까지

모두 론허먼 회원권이라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싶어진다.


그만큼 이곳은,

도쿄 어패럴계의 방앗간 같은 곳이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기묘하게도 손에 뭔가 들려 있다.

세상엔 참 이상한 방앗간도 많은 법이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옷.”


그런데 사랑이라는 건

대개 설명보다 훨씬 복잡하고,

종종 비합리적이다.

론허먼 역시 그렇다.


브랜드를 셀렉트하고,

자기네 오리지널 라인을 만들고

종이로 정리하면 그저 ‘편집숍’인데


왜인지 이곳은

사람의 마음을 슬쩍, 그리고 정교하게 흔든다.


처음 보는 브랜드의 니트,

역사와 곰팡이 냄새가 어딘가 섞여 있을 것 같은 빈티지 재킷,

서핑보드마저 근사해 보인다.

아니, 나는 서핑을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갖고 싶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뜬금없이 아기 낮잠이불까지 사고 싶었었다.

그땐 아기가 없었는데도.


아마 론허먼은 사람의 미래, 과거, 없던 인생까지

모두 한꺼번에 흔들어 깨우는 묘한 힘을 가진 곳이다.

“라이프스타일 환각 효과”라고 불러야할까


평소 눈길조차 주지 않던 VANS 스니커즈를

여기서는 두 켤레나 집어 들었다.


ABC마트에 있을 때는

그저 그런 운동화였다.


그런데 론허먼 매대 위에 올라오니

얘가 갑자기

“나 사실 이런 애야. 원래 캘리포니아 바람 맞으면서 태어난 스타일이거든?”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척도 안 하면서

속으로는 완벽히 믿어버렸다.

도쿄라는 도시는

사람을 이렇게 귀엽고 비싼 바보로 만들 때가 있다.


그렇게 두 켤레를 담고,

계획에 없던 파우치,

더더욱 계획에 없던 디퓨저까지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건 절대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다.

귀 안쪽에 숨어 있는 론허먼의 작은 악마,

아니 작은 요정의 속삭임 때문이다.


아마 론허먼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갖고 싶은 이유’를 파는 곳이다.


여기서는 물건보다

그 물건을 가진 나의 일상이 먼저 떠오른다.

그 상상이 지갑을 열게 한다.

어쩌면 이 도시에서 가장 뛰어난 마케터는

론허먼인지도 모른다.


올해 나는

바랜 듯한 탁한 핑크색의 스웻셔츠와

스웻팬츠를 세트로 샀다.


비슷한 디자인을 무인양품에서도 본 적이 있다.

가격은 더 착했다.


하지만 그건 MUJI였고,

이건 RHC (론허먼 로고) 였다.


택에 새겨진 작은 ‘RHC’ 로고는

이상하게 사람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힘이 있었다.

상냥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그걸 입는 순간 나는 ‘론허먼 걸’이 된다.

도쿄의 공기와 약간의 여유,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내 하루에 살짝 스며든다.


예, 완벽한 허세다.

병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그 병이 주는 기분은

꽤 괜찮다.

어쩌면 살짝 중독적이다.


론허먼 특유의 오샤레한 공기,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설렘,

그리고 그곳에서 고른 옷이 주는

이상하고 섬세한 자신감.


그 모든 게 합쳐져서

그 옷은 다른 옷보다

애정이 한 스푼 더 들어간다.


아마 그래서일 거다.

도쿄의 여자들이 주구장창 이곳에 가는 이유는

‘필요’가 아니라

그 허세와 설렘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도,

아마 곧 또 갈 것이다.

아무것도 안 살 거라고 생각하며 들어가서

또 무언가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게 론허먼이니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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