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지하철 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사람보다 가방이다.
토트백, 클러치, 미니백, 메신저—모양은 제각각이지만
그 옆에는 언제나 가볍고 헐거운 천 가방이
따라 들어온다. 일명 서브백.
이 도시에서는 그걸 에코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모두 ‘서브백’이라 부른다.
서브백 이라고 부르자고 어디쯤에서 조용히 합의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한국에서 짐을 많이 들면
어김없이 “보부상”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온다.
큰 가방 하나에 모든 걸 쑤셔 넣고,
마치 시장에 무언가 팔러 나가는 사람처럼—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여긴 짐의 무게보다 짐의 ‘영역 분배’ 가 있다.
메인백에는 꼭 필요한 것들,
값이 나가고, 예쁘고, ‘겉으로 보이는 나’를 구성하는 핵심 아이템들이 들어간다.
그리고 서브백에는
나머지것들이 밀려 들어간다.
회사 로비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열에 일곱은 가방을 두 개 들고 있다.
메인백은 지불 가능한 예산의 끝자락에서
가장 괜찮고, 가장 단단하고, 조금은 야심 있는 걸 고른다.
그리고 옆에 있는 서브백은 자유의 수납공간이다.
우산, 벤토, 운동복, 서류, 때로는
마트에서 산 귤 한 봉지까지.
대충 넣어도 괜찮고, 막 굴려도 마음이 편하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그 서브백을 고르는 태도다.
천 가방 아무거나 집어 들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메르시(merci) 에코백은
“나 파리 편집숍 좀 아는 여자”라는 사인이고,
빈티지숍에서 우연히 득템한 토트백은
‘믹스매치를 이해하고, 꾸안꾸의 쿨함을 아는 여자’
라는 그럴듯한 향기를 풍긴다.
그리고 에레원(Erewhon) 마트의 쇼퍼백은
“저도 헐리우드 셀럽 기운… 약 2% 정도 묻혀왔어요”
라는 농담 같은 선언이다.
(10%는 너무 부담스럽고, 1%는 또 기세가 안 선다.)
이건 과시라기보다, 취향과 동경이 뒤섞인
작은 메시지다.
‘나는 이런 세계를 알고, 좋아하고, 살짝 닮고 싶다’는 무언의 자기소개가 천 사이로 은근하게 스며 있다.
나의 선택은 한국식이다.
비아플레인이나 인도로간파리지앵 같은
브랜드의 에코백이 나의 당골조수다.
도쿄 어디를 가도 절대 겹칠 일 없고, 무엇보다 예쁘다.
아주 가끔 누군가 “그 가방 어디 거예요?” 하고
물어오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한국에서 샀어요”
나는 그렇게, 서브백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은근히 알린다.
사실 서브백 없어도 산다.
하지만 한 번 들기 시작하면
다시는 돌아가기 어렵다.
우산, 텀블러, 운동화
메인백에 넣기엔 괜히 불편하고,
서브백에는 묘하게 잘 어울리는 것들.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건 단순한 짐 가방이 아니다.
내 일상의 균형을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조력자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
서브백은 원래 그런 물건이다.
바쁜 도쿄의 아침,
서브백은 내 손목을 잡고
앞으로 끌고 가는 알바생 친구 같다.
커피를 들고 계단을 내려갈 때
옆에서 같이 헉헉대며 뛰어주는 그런 친구.
조금 헐렁해도 괜찮고,
조금 지저분해도 미워지지 않는다.
없으면 하루가 불안하고,
있으면 괜히 안정되는
서브백은 늘 그런 존재다.
우리는 메인백으로 자기를 증명하고,
서브백으로 삶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