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검색결과 맘카페, 유튜브, 네이버 전부
“당신, 산후우울증입니다”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 혹시 산후우울증일까요?”
하고 당황한 채 질문을 남기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혹시 나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그 생각에 움찔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저귀, 트름, 수유, 울음,
그다음이 나였다.
병원은커녕, 거실도 제대로 못 벗어나는 처지였다.
“나중에 생각하자.”
그렇게 하루가 또 흘렀다.
며칠은 괜찮다가도,
느닷없이 울컥하는 날이 찾아온다.
어느날은 남편과 갈비를 먹고 있었는데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진짜 당황스러웠다.
나도, 남편도.
감정 제어장치가 망가진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리모컨이라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산후우울증 극복법을 검색하면
답은 거의 같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호르몬 때문이야. 호르몬 때문이야. 호르몬 때문이야...”
근데, 전혀 위로가 안 됐다.
그러다 맘카페에서 알게 된
명상센터 매니저와 상담을 하게 됐다.
첫 통화에서 그분이 말했다.
“아주아주 예민한 기질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허, 아주아주?
기분이 약간 나쁠 뻔했지만
그분은 웃으며 덧붙였다.
“예민한 거, 나쁜 거 아니에요. 감정이 섬세하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해봤다.
그분이 추천한 HSP 예민도 테스트.
결과는 확실했다.
나는 초예민 인간이었다.
내가? 예민하다고?
남편에게 물었다.
동생에게도 물었다.
둘 다 동시에 말했다.
“그걸 이제 알았어?”
뜨끔했다.
며칠간 조용히 생각했다.
유튜브에서 ‘예민한 사람 특징’ 영상도 찾아봤다.
나는 그냥 내향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예민도 탑재된 풀옵션 인간이었다.
나는 특히 소리에 예민하다.
오토바이, 구급차, 소방차만 울려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신경이 곤두선다.
누가 옆에서 잡담만 해도 집중력이 휙 날아간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걸 좋아했다.
그런 나에게
아기의 울음소리는 사이렌 소리였다.
귀에 꽂히는 순간,
몸이 자동으로 긴장상태로 돌입했다.
그리고, 나는 깔끔 떠는 성격이다.
남편이 아기를 봐주는 동안에도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바닥에 나뒹구는 젖병과 기저귀가 눈에 들어왔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기저귀를 버리고, 젖병을 씻고,
물티슈를 제자리에 놓았다.
‘으휴, 으휴...’
혼자 중얼거리며 치우는 날이 많았다.
근데 체력이 바닥나니까
그마저도 포기하게 됐다.
결국, “아씨 몰라...” 하고 손을 놨다.
다들 말한다.
육퇴 후 맥주 한 캔, 드라마 한 편이 힐링이라고.
나는 그게 안 됐다.
‘오징어게임’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보다가 깜짝 놀라 정지 버튼을 눌렀고,
‘폭싹 속았수다’는
보다가 눈물이 쏟아져 숨이 막혀
창문 열고 찬 바람 마시며 진정했다.
외국인도 보고, 초등학생도 본다던 그 드라마들.
나는 한 편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누군가의 슬픈 이야기만 들어도
온종일 그 감정에 휘말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우울한 이야기를 꺼내면
친구도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돼
입을 꾹 다물게 됐다.
생각해보니 맞다.
나는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다.
평소에도 머릿속이 정신적으로 과잉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 위에 육아까지 올라타니
버거운 게 당연했다.
아기 탓이 아니었다.
그냥, 내 기질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예민하다는 걸 인정하니까
그 예민함이 나를 덜 괴롭혔다.
그게 나니까.
그냥 그런 나로 살아보기로 했다.
아직도 감정 리모컨은
어디에 두었는지 가끔 모르겠다.
근데 이제
그렇게 다급하게 찾지는 않는다.
뭐, 없으면 없는 대로
가끔은 감정이 흘러가게 둔다.
울고 싶으면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예민한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