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는 배송되지 않았다

사랑도, 모성도, 천천히 오더라 — 천천히 철드는 육아의 기록

by Asparagus


임신 막달.
배는 무겁고, 다리는 붓고, 밤에는 잠이 안 오고.

그럴 때 꼭 보게 되는 게 있다.
출산 브이로그, 조리원 후기, 산후 다이어트 영상.

그리고 아주 가끔, 알고리즘에 걸려드는 ‘산후우울증 경험담’.
몇 편쯤 봤다.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고 싶단 말까지 했을까.”
안쓰러운 마음 반.

“그래도 나는 안 그럴 거야.”

근거 없는 자신감 반.


남편이 말했다.
“내가 육아 6할은 맡을게. 진짜야. 걱정하지 마.”
나는 믿었다.

찐 살도 ‘뭐, 빼면 되지’ 싶었고.
그땐 세상이 좀 순해 보였달까.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첫날, 실전 육아가 시작됐다.


2시간마다 정확하게 울어대는 아기.
수유 → 트림 → 기저귀 → 토닥토닥 → 다시 울기.

끝없는 반복 재생 모드.


희한하게 노동 강도는 낮은데, 체력은 다 빨린다.

눈은 뜨고 있지만 감고 있고,
말은 하지만 의식은 바닥을 긁고 있다.

그리고 그날 밤, 드디어 만났다.
그 전설의 존재—


“아… 이게 그 유명한 등센서라는 거구나. OMG.”
웃기지만, 웃을 힘은 없었다.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대략 40분.

그 40분이 지금 내겐 발리 리조트급이다.
시계를 보면 헛웃음만 난다.

그리고 정확히 40분 후—
“에에엥!”

짜증 수치 급상승한다.
그런데 옆을 보니 남편은… 잘 잔다. 코까지 골면서.

분노가 발끝부터 차오른다.
나는 아직 회복도 안 됐는데,
넌 지금 자냐?


결국, 남편을 발로 쳤다. 정확하게.

“나 너무 피곤하니까 오빠가 해.
방금 먹였으니까 트림 시키고, 기저귀 갈고 재워.”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냉기 어린 바람이 돌았다.


그날부터 밤이 되면 눈물이 많아졌다.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닌데,

그냥 줄줄, 자꾸 흐른다.

남편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하는 거 아니거든!” 하고 욱, 그리고 바로 울음.


가장 괴로웠던 건—
아기를 봐도 모성애가 안 생긴다는 거였다.

너무 예쁜데,
마냥 사랑스럽진 않았다.

자꾸 미안했고,
그 미안함은 자책으로 바뀌었다.

‘나는 엄마가 되면 안 되는 사람이었구나.’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날은 유난히 아기가 많이 울었다.

그냥 우는 게 아니라 혼을 실어 울었다.
전 세대 아파트 주민을 호출하는 쩌렁쩌렁한 톤으로.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고,
노래도 불러봤다.

“아구아구~ 괜찮아~ 괜찮아~”
20분 넘게 안고 흔들며 땀을 뺐다.
그런데 울음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나도 울었다.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무릎 꿇고,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그대로 엉엉 울었다.


그러자 아기가 울음을 멈췄다.
이제는 내가 멈추지 않았다.

둘 중 하나는 울어야 하는 밤이었다면,

오늘은 나였나보다


세수라도 하자 싶어 화장실로 갔다.

물로 얼굴을 씻으며, 눈물도 같이 흘렀다.

물 한 바가지, 눈물 한 줄기.

소파에 웅크려 TV를 멍하니 보다가,

또 울었다.

“이상하다… 지금은 슬프지도 않은데.”

문득 핸드폰을 집어 들고 검색했다.


산후우울증 증상


화면에 적힌 말들이 내 상태와 정확히 겹쳤다.
그걸 읽는 순간, 가슴에 낀 돌 하나가 빠졌다.


‘아,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지금도 나는 완벽한 엄마는 아니다.

새벽이면 여전히 눈을 비비며 일어나고,
가끔 남편에게 또 발길이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씩, 아기의 얼굴이 달리 보인다.

아기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


사랑이라는 게,
어쩌면 ‘빠르게’ 오는 게 아니라
‘조금씩’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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