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었다고 상상해보세요? 네??”

상담사는 이상했지만, 말은 이상하게 맞았다

by Asparagus



밤마다 폰을 붙잡고 검색을 했다.

산후우울증 극복 후기를

서치 서치 서치.

스크롤은 내 손가락을 타고 줄줄이 이어졌고,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가는 글이 하나 있었다.

“명상센터 상담 후기”

명상이라고?

조금 뜬구름 같았지만,

그 와중에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두 달짜리 상담을 신청했다.



육아는 힘들다.

하지만...

진짜 나를 지치게 만든 건 남편이었다.


신혼 시절엔 칫솔컵에 물 고였다고

잠깐 티격태격한 정도였고,

유머코드도 잘 맞아서

친구보다 남편이랑 노는 게 더 재밌었다.


그런데, 출산 후엔…

남편이 너무 밉기 시작했다.

같이 육아휴직 중인데

왜 나만 애 보는 기분이지?


애 울면 나는 반사신경처럼 벌떡 일어나는데,

옆에선 남편이 코를 골며 꿀잠을 자고 있다.

아니,

진심으로 미웠다.

눈꼴이 시렸다.

숨소리마저 얄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나 친구랑 밥 좀 먹고 올게.”


속으로는

‘그래, 아주 잘~ 논다?’

그렇게 이를 꽉 깨물었지만


겉으론 쿨한 척.

“그래~ 바람 좀 쐬고 와~”


그런데 몇 시간 후.

전화해서 돌아오는길에 빵 좀 사오라 했더니,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아직 안 먹었어. 친구랑 사우나 다녀오고 마사지 받고 이제 나왔거든.”

……예?

“마사지??”


그 말을 듣자마자

어딘가가 ‘딱’ 끊어졌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내면의 지옥문이 열렸다.


전화를 끊고,

진짜로 카톡에서 남편을 차단했다.




남편은 당황해서

밥이고 뭐고 다 미뤄두고

급하게 집으로 왔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서로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화가 났는지,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친구 만나서 밥 먹은 게?

마사지 받은 게?

아니면 나만 육아 중인 것 같은 이 기분?


말하자면 별것도 아닌데,

말하려니 너무 벅찼다.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그냥 다 미웠다.




다음 날 상담 시간.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저도 모르겠어요… 왜 이러는지… 그냥 너무 힘들어요…”

그러자 상담사가 말했다.


“남편이 죽었다고 상상해보세요.”

???


“아뇨! 아니요! 그런 뜻은 아니고요! 죽으라는 게 아니고… 전혀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냥, 상상만 해봐요.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이랑 단둘이 남겨졌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

“그건… 진짜 무서울 것 같아요.”


“그쵸?

진짜 혼자 육아하고, 돈 벌고, 집안일 하고…

잠도 못 자고…

진짜 지옥일 거예요.”


그리고 이어진 결정타.

“그냥 남편을 옆집 남자라고 생각하세요.”


“예?”


“애 키우느라 정신 없는 나에게

옆집 남자가 와서 기저귀도 갈아주고

문단속도 해주고,

가끔 간식도 사오고,

심지어 월급도 준다?

이 정도면… 거의 천사 아니에요?”


웃겼다. 진심으로.

이게 무슨 상담인가 싶었다.




근데 그 말,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정말 효과가 있었다.


남편이 죽었다고 상상해봤다.

과부가 된 나.

너무 슬프고, 너무 고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원망의 안경’이 서서히 벗겨졌다.


남편은… 변한 게 없었다.

서툴지만, 나름 애쓰고 있었다.

다만 내가 너무 지쳐서

그 모습이 안 보였을 뿐이었다.


상담사는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근데,

그 말 한 마디로

내 마음속 분노가

툭, 내려앉았다.


때로는 가장 어이없는 말이

가장 필요한 말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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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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