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 월 1회 예약제입니다.

엄마의 하루 탈주, 성공적

by Asparagus


처음엔 그냥,

사람처럼 먹고, 자고, 싸기만 해도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몇달전의 난 씹다 만 밥을 입에 문 채,

기저귀를 갈다 말고 울고 있는 애를 안고,

겨우겨우 하루를 넘기던 시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따뜻한 밥도 먹을수있고

육퇴후엔 남편이랑 도란도란 맥주도 마신다.

야호!

이런 날이 오다니,

진짜 감격이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해지자

다른 욕구 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친구 만나 수다도 떨고 싶고,

필라테스도 해보고 싶고,

카페에 멍하니 앉아 커피 한 잔 하는 시간도 갖고 싶다.

안 될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아마, 살만해져서 그런가 보다.


우린 외국에 산다.

아기를 맡길 데가 없다.

남편은 육아휴직이 끝나자마자

업무에 휘말려 정신 없이 바빴고,

나는 1시간의 자유도 사치였다.

아기와 나는 늘 한 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든 아기를 안고 조용히 토닥이며

무심코 말했다.


“나, 한 번도 한국 가고 싶단 생각 안 했는데...

출산하고 나니까, 엄마가 좀 그립더라.”


“ 가끔씩 엄마가 아기 봐주러 와줘 라던가,

반찬 보내줬다더라—

그런말 들으니까 너무 부럽더라고”


남편은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줬다.

그리고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맥주!!”


남편은 피식 웃더니

대충 옷을 걸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집에돌아온 남편이

식탁 위에 봉투를 놓으며 말했다.


“내일 하루, 친구 만나 놀다 와.

늦게 와도 되니까 실컷 놀다 와.”


“진짜...? 근데 애는?”


“내가 볼게.

어떻게든 되겠지. 아 그런건 걱정하지말고!”


남편은 아직 육아엔 서툴다.
기저귀 갈고, 분유 타는 건 하는데
애가 울기만 하면
손발부터 허둥댄다.

게다가 이상하게
아기는 아빠 품에 안기면
더 세게 운다.

하지만,
이런 기회 또 올까?

못 이기는 척, 나가보기로 했다.



다음 날.
긴 원피스를 꺼내 입고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웨트 헤어도 세팅 완료.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친구를 만나

핫한 베트남 레스토랑가서 이것저것 주문해 먹고,

여러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옷 구경도 하고

마음에 쏙 드는 슈즈도 한켤레 샀다.


야외 카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요즘 유행하는 얘기,
친구의 연애 얘기,
그냥 별것도 아닌 이야기로 깔깔 웃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기분 좋게 불었다.



기분은 최고였지만,

어느 순간, 마음 한켠이 살짝 저려왔다.

남편은 괜찮을까.

아기는 너무 울진 않았을까.

불쑥 죄책감이 올라왔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그래서 예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남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 쫌 더놀지~ ”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말 한마디가 괜히 고맙고 미안했다.



몇 달 만의 외출.

잠깐 맛본 ‘자유’라는 공기 덕분에

속에 쌓여 있던 불만과 욕구들이

조금 가라앉았다.


콧바람만 쐬어도

사람이 이렇게 여유로워진다니.

그래서 결심했다.


한 달에 딱 하루.

그 하루만큼은

‘엄마’가 아니라 ‘나’로 외출할 거다.


그건 절대 이기적인 게 아니다.

그건 숨구멍이다.

살기 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왜냐면 이건

아기도, 나도, 남편도

서로 윈윈하는 일이니까.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3화“남편이 죽었다고 상상해보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