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얼굴을 숨기는 사람들

Book Cover의 도시, Tokyo

by Asparagus


도쿄의 아침 지하철.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와 제각각 자리를 잡는다.

도어투도어로 회사까지는 약 한시간 십분정도 걸린다.

이정도의 통근시간은 도쿄에선 애교다.


수년 동안, 수많은 노선을 타며 풍경을 관찰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사람, 휴대폰 화면을 무심히 스크롤하는 사람,

그리고… 조심스럽게 책을 꺼내는 사람이 있다.


참으로 흥미로운 건,

일본 사람들은 책에 굳이 커버를 씌운다는 사실이다.

서점에서 건네준 것일 수도, 집에서 직접 고른 천일 수도 있다.


처음 북커버를 씌운 채 책을 읽는 사람을 봤을 때,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너에겐 알려주지 않겠다’는

묵묵한 의사 표현처럼 보였다.


페이지를 넘길 때, 그들의 손끝은 유난히 조심스럽다.

손가락이 종이를 잡는 힘, 손목이 기울어지는 각도,

그 모든 디테일에서 ‘책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맞은편에서 그 장면을 훔쳐보는 나의 시선도

자연스레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사실 북커버라는 걸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북커버를 씌운 채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나는 안 보는 척하면서도

눈길이 자꾸만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남색 가죽 커버를 쓴 사람은

부드러운 위스키를 잔에 반만 따라놓고

천천히 돌려 마실것 같고

서점에서 받은 얇은 종이 커버를 그대로 쓰는 사람은

필요 이상의 설명을 싫어하는 성격일것만 같다.


나는 그렇게,

그 사람의 뒷모습 같은 이야기를 붙여보는 상상을 즐긴다.

아마도 커버 속에 어떤 책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상상력을 더 크게 흔들어놓기 때문일 거다.


사랑 소설일까?

야한 만화책일까?

경제 경영서일까?

아니면 표지가 닳아버린 오래된 시집일까.



지하철은 미끄러지듯 빠르게 달리지만,

그 북커버를 넘기는 손동작만큼은 유난히 느리다.

그 느림이,

이 도시의 풍경을 은근하게,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고급스럽게 만든다.


일본에 살며 십 년 넘게 느낀 건,

이곳이 진심으로 책을 사랑하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세계 평균 독서량 순위에서

1위가 미국이라면 2위는 일본이라니..

가방에 책 한 권쯤 넣고 다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고,

아직도 e-book보다 종이책을 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책보다 패션지만 뒤적일 것 같던 동료가

가방 속에서 작은 시집을 꺼내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는 이 시집을 읽을 때마다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가 조금 달라보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언제 책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더라..


어쩌면 책이라는 건, 장르나 두께보다

그 순간 내가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호흡’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호흡이,

이 도시의 일상 곳곳에서 은근히 살아 있다.


그래서 도쿄의 지하철에서 가끔 마주치는 풍경은,

북커버를 씌운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창밖으로 스치는 회색 터널과 전광판 불빛 속에서,

도시의 속도와 무관하게 고요하고 느린 손동작을 보고있노라면

그 한 장의 움직임마저,

마치 잘 연출된 화보 한 컷처럼 완벽히 정적이다


빠르게 질주하는 소음 속에서

단 하나의 선율만 정확히 찾는 사람처럼,

그 모습은 유난히 선명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도쿄라는 도시의 진짜 멋은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반짝거림에서만 비롯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책을 읽는 방식에서,

그리고 그 방식을 감싸는 한 장의 북커버에서,

이 도시만의 은밀한 동경이 피어오른다.

그 조용한 풍경이야말로

도쿄를 사랑하게 만드는, 가장 세련된 이유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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