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12월은 늘 조금 이상한 계절이다.
바람은 칼처럼 차가워지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그와 반대로 묘하게 달아오른다.
이 도시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충동적이다.
일본에서 한 해의 ‘큰 쇼핑’은 대부분 이때 벌어진다.
한국에서는 생일에 마음먹고 하나를 지르거나,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휩쓸려 귀여운 선물을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의 크리스마스는 그만큼 들떠 있지 않다.
공휴일도 아니라 모두가 평소처럼 출근하고,
도쿄의 크리스마스는 오히려 담담하다.
거리에 캐럴이 흘러도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무실로 돌아간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조용한 얼굴들 대부분이
12월의 끝자락을 향해
어렴풋한 기대 하나쯤은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열기다.
축제의 열기와는 다르고,
이 도시 특유의 내면에서 서서히 올라오는
미지근한 체온 같은 것.
사람들은 그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부른다.
「ご褒美(고호비)」.
직역하면 ‘보상’.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깊고 진한 의미를 품고 있다.
일 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적당히 포기하면서도 끝까지 버텨낸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아주 조용한 경의.
말하자면,
아무도 주지 않으니
내가 나에게 직접 주는 ‘큰 상’이다.
도쿄에서는 연말 시상식을
연예인들만 하는 게 아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기 위해
12월을 통과한다.
그건 도시가 잠깐 따뜻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까르티에 반지를 사고,
누군가는 커피 머신을 들이고,
누군가는 두 달째 ‘상을’ 고르지 못한 채
매대 앞을 서성인다.
무엇을 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일 년의 끝자락에서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조용한 박수라는 점만 같을 뿐이다.
도쿄의 12월을 걷다 보면
그 박수 소리가 들린다.
백화점 매대 앞에서,
더로우 가방을 들었다 놨다 하며
결국 스스로에게 지고 마는
여자의 눈빛에서도.
“올해는 정말… 나, 잘 버텼잖아?”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결제 버튼은 거의 자동처럼 눌러진다.
특히 한 해가 유난히 거칠었던 사람일수록
보상의 스케일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작은 위로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해도 있으니까.
친구 A는 올해의 상으로
미우미우 스니커즈를 골랐다고 했다.
“가격 때문에 진짜 고민하긴 했는데…
올해 그, 긴 장거리 연애도 끝났고
이제 좀 새 출발하는 느낌이라
고호비로 예쁜 신발 하나 신고 싶더라고.”
동료 B는 조금 더 진지했다.
“내년에 나이가 3으로 시작하잖아.
그래서 올해는…
까르티에 반지 정도는 사도 되지 않을까 해서.”
처음엔 핑계를 찾는 것처럼 들렸지만
듣고 있으면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호비에는 죄책감이 없다.
“이건 그냥… 나한테 주는 상이야.”
이 문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도쿄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필요 이상으로 잘 챙겨주는지
조금 놀랐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러웠다.
누가 예쁜 걸 하고 오면
“아, 이거 올해 고호비로 구입했어”
이 말을 다섯 번도 아니고,
열 번도 아니고,
아마 오백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작년에 내가 나에게 준 고호비는
솔직히 말해 당장 쓸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이 갔던
더로우의 로고 없는 에스프레소색 클러치였다.
우유 한 방울이 실수로 떨어진 듯한
묘하게 진한 브라운.
너무이뻤다.
문제는—
들고 나갈 데가 없다는 거였다.
아이 둘 데리고 나가는데
기저귀 가방도 벅찬 마당에
클러치는 거의 관상용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좋았다.
안 들어도 되는 가방,
당장 쓸모없는 물건.
그건 가방이라기보다
“그래도 나, 여기까지 잘왔어”라는 증명서에 가까웠다.
육아도 진짜 힘들었고,
솔직히 말하면
그 클러치를 들고 외출한 날보다
서랍에서 꺼내 한 번 쳐다본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건 실용품이 아니라
한 해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상패였으니까.
그래서 도쿄의 12월은
유난히 반짝인다.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그럴듯하고,
꽤 합당한 쇼핑의 이유.
고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