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는 하루를 물에 담가야 끝난다

by Asparagus



일본에 와서 처음 놀랐던 건
사람들이 사과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도,
전철 노선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는 것도 아니었다.


욕조였다.


진짜로.


유학생 시절, 집을 보러 다니며
수많은 작은 원룸을 열어봤다.


현관은 두 걸음이면 끝,
부엌은 냉장고를 열면 통로가 사라질 정도로 작았다.


그런데도 욕조는 꼭 있었다.


아주 성실하게,
꿋꿋하게,
“나는 빠질 수 없다”는 얼굴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집에서 제일 부피 큰 건 나도 아니고 욕조네.’


그때는 그게 조금 이상했다.
한국에서 욕조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문제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이 욕조가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는 사실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알게 됐다.


“나 씻고 나왔어.”
가 아니라,


“목욕하고 나왔어.”


“샤워했어.”
가 아니라,


“목욕하고 과제할 거야.”


목욕?


내가 아는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대중목욕탕에 가서
수건 두 장 챙기고
때를 밀고
계란 하나 까먹고
우유 마시고 나오는
그 이벤트 같은 날이었는데.


여기서는
그게 매일 벌어지는 일처럼 들렸다.


마치
“밥 먹었어.”
같은 톤으로.


처음엔 언어 차이인 줄 알았다.
샤워를 그냥 목욕이라고 말하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로 들어가더라.
정말로, 매일.


이 나라는
샤워와 목욕을
전혀 다른 행위로 구분한다.


샤워는 정리.
목욕은 마무리.


몸을 씻는 게 아니라
하루를 담그는 일.


그리고 도쿄의 겨울을 보내며
나는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됐다.


일본 집에는 온돌이 없다.


바닥은 차갑고,
공기는 얇다.
난방은 공기에서 나오는데
그 공기는 금세 식는다.


집에 들어오면 서늘하다.
가끔은 밖이 더 따뜻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코트는 벗었는데
몸은 계속 코트를 입고 싶은 상태.


그때 깨닫는다.


아, 이건 정신력으로 버틸 일이 아니구나.


왜 만화 속 집마다
코타츠가 있는지
그제야 이해한다.
담요를 덮고
하체만이라도 인간답게 살겠다는 의지.


하지만 코타츠는
발만 살려준다.


몸을 덥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물이다.


뜨거운 물에 어깨까지 잠겨야
비로소 “아, 살겠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적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목욕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에서 나오면
단순히 따뜻해진 게 아니라
조금은 괜찮아진 기분이 든다.


어느 날 일본 친구가
아주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학생 때는
아빠가 먼저 목욕하고,
엄마가 하고,
언니가 하고,
마지막이 나였어.
내 차례가 되면
하던 일 멈추고 무조건 들어가야 돼.”


나는 젓가락을 들고 멈췄다.


“숙제 중이었어도?”
“응.”


“드라마 제일 재밌는 장면이어도?”
“응. 물 식잖아.”


아.

이 집의 권력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고
욕조의 온도였다.


이 나라는
진짜로
목욕에 진심이구나.


그러다 나도 배웠다.
목욕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왠지 하루가 꺼림칙했던 날,
괜히 일이 꼬이고 말이 어긋났던 날엔
소금 목욕.


소금을 한 움큼 넣고 들어가면
부정이 빠져나간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날
문 앞에 소금을 뿌렸던 것 같은데,

여기선 내가 직접 들어간다.


몸째로 정화.


아주 사치스러운 날에는
사케를 한 컵 풀어 넣는다.


이게 목욕인지
나를 데치는 건지
잠깐 헷갈리지만
기분은 확실히 고급스러워진다.


다만 비용상
이 의식은 가끔만 거행된다.


나를 조금 아껴주고 싶은 날이면
퇴근길 드럭스토어에 들러
허브 향이 은은한 입욕제 하나를 산다.


400엔의 행복.


봉지를 뜯는 순간
작은 욕조가 스파가 된다.


밖은 여전히 도쿄인데
물속만큼은
어딘가 휴양지다.


예전에는
금요일 밤이면
맥주에 야키토리였다.


지금은
목욕이 먼저다.


뜨거운 물에 어깨까지 푹 잠겼다가
천천히 빠져나와
수건으로 대충 말리고
선풍기 바람을 잠깐 맞는다.


그리고 냉장고를 연다.


비루 하나 꺼내
탁, 소리 나게 딴다.


첫 모금.


아.


뜨거웠던 피부 위로
차가운 맥주가 닿는 그 대비.


쌉쌀함은 더 또렷하고,
거품은 더 부드럽고,
목 넘김은 이상하게 더 길다.


낮에 삼킨 말들이
같이 내려가는 느낌.


야키토리와 마시던 맥주가
“수고했다”였다면,


목욕 후의 맥주는
“살아 있네”에 가깝다.


몸은 따뜻하고,
입은 시원하고,
마음은 조금 느슨해진 상태.


이 조합을 알고 나면
금요일 밤의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바뀐다.


도쿄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순간은
비싼 레스토랑이 아니라


목욕 후,
비루 한 캔이다.


“오늘은 피곤해서 샤워만 했어.”


일본 친구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이제 안다.


아, 오늘 정말 힘들었구나.


샤워는 급한 정리.
목욕은 제대로 된 마무리.


샤워만 했다는 건
오늘은 그 여유조차 없었다는 뜻.


가끔 욕조에 들어가
천장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나도 조금 이해가 된다.


왜 이렇게 작은 집에도
욕조는 빠지지 않는지.


왜 이 사람들은
하루를 물에 잠그지 않으면
끝난 것 같지 않은지.


씻는 게 아니라
괜찮아지는 시간.


어쩌면 그래서
도쿄 사람들은
말 대신
물에 잠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다시 출근한다.






목요일 연재
이전 23화빌딩 숲 사이로 피카츄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