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시즌이 다가온다.

by Asparagus



사쿠라 시즌이 다가온다.


일본에서 이 말은
단순한 계절 알림이 아니다.


거의
국가적 준비 태세에 가깝다.


뉴스에서는 벚꽃 개화 예상일을
주식 시세처럼 업데이트한다.


“도쿄 3월 24일 개화 예상.”
“이번 주말 만개 가능성.”


사람들은 이 정보를
생각보다 굉장히 진지하게 본다.


벚꽃이 피는 건 자연인데
이 나라는

벚꽃이 피는 걸

거의 국가 프로젝트처럼 관리한다.


한국에서 벚꽃놀이는
대체로 이런 느낌이다.


주말에 친구들이나 연인과
벚꽃길을 걷고
사진 몇 장 찍고
길거리 음식 먹고
“와 예쁘다” 하고 돌아오는 날.


아름답지만
어딘가 가볍게 다녀오는 봄 나들이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이 나라는
벚꽃에 대해
조금 과하다.


아니,

꽤 과하다.


사쿠라 시즌이 시작되면
도시는 갑자기 분홍색으로 변한다.


스타벅스는 사쿠라 컵을 내놓는다.


사실 매년 내놓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열광한다.


분홍색 컵이 나오면
사람들은 또 그걸 사기 위해 줄을 선다.


컵 하나가
거의 봄의 기념품처럼 취급된다.


음료도 예외는 아니다.


라떼 위에
핑크색 거품을 살짝 얹으면
그 순간
사쿠라 라떼가 된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올린다.


도쿄의 봄은
아마 인스타그램에서도
같은 속도로 피어나는 것 같다.


편의점은 사쿠라 디저트를 쌓아 올리고
맥주 회사는 사쿠라 한정 캔을 만든다.


과자도 사쿠라
모찌도 사쿠라
맥주도 사쿠라


심지어
그다지 벚꽃과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도
갑자기 벚꽃 맛이 된다.


이쯤 되면
벚꽃을 보는 건지
벚꽃을 먹는 건지
잠깐 헷갈린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걸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그냥
분홍색을 전부 즐긴다.


먹고

마시고

찍고

올린다.


생각해보면
이 나라가 벚꽃에 진심인 건
꽤 오래된 일이다.


천 년 전
헤이안 시대의 귀족들도
봄이 되면
벚꽃 아래에 모였다.


술을 마시고
시를 짓고
꽃이 떨어지는 걸 바라봤다.


그걸
하나미라고 불렀다.


꽃을 본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꽃 아래에서
마시고 노는 날에 가까웠다.


생각해보면

지금 일본 사람들이 하는 것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천 년 전 귀족들이 하던 일을
지금은 회사원들이 하고 있을 뿐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술의 종류와
돗자리의 크기 정도다.


다만
요즘 하나미에는
새로운 역할이 하나 있다.


회사 막내다.


벚꽃놀이 날짜가 정해지면
이 사람들은 아침 일찍 공원에 간다.


그리고 돗자리를 깐다.


아주 큰 돗자리다.


그 다음은
기다림이다.


회사 사람들은
퇴근 후에 온다.


막내들은
하루 종일
그 자리를 지킨다.


교대로 화장실도 가고,
벤토도 먹으며
팀원들을 기다린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회사 막내들일지도 모른다.


그날만큼은

모두가 조금 일찍 일을 끝내고

꽃놀이를 하러 간다.


낮의 벚꽃이
밝고 떠들썩한 축제라면
밤 벚꽃은
조금 더 느긋한 시간이다.


가로등 아래에서
벚꽃은
마치 팝콘처럼 터져 있다.

밤 공기가

조금 달콤해진다.


어딘가
무드가 깊어진다.

그 풍경은
마치
고흐의 Almond Blossoms 같기도 하다.
같기도 하다.


조금 몽환적이고
조금 비현실적인 봄.

팝콘처럼 터진 벚꽃 아래서 먹고 마시며

모두가 사쿠라에 취한다.


나는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나카메구로에 있는
Starbucks Reserve Roastery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팝콘처럼 흩어진 벚꽃을 보며
와인을 마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의 허세다.


그리고 곧
사쿠라 시즌이 온다.


그 며칠 동안
도쿄는
조금 들뜬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고
맥주를 열고
벚꽃 아래 앉는다.


웃고
마시고
사진을 찍는다.


잠깐 동안
모두가
사쿠라에 취한다.


분홍색 꽃이
천천히 흔들린다.



잠깐 동안

도쿄는

분홍색에 점령된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도쿄의 봄이
조용히 시작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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