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밤은 숯 냄새를 입는다
도쿄에서 하루를 버틴다는 건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출근길 만원 전철을 두 번 갈아타는 동안
이미 한 번 지치고,
회사에서 두 번 더 지친다.
퇴근 버튼을 누를 즈음이면
영혼은 대략 30퍼센트쯤 남아 있다.
그 30%를 들고
사람들은 이상하게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편의점도 아니고,
라멘집도 아니고,
연기가 먼저 보이는 곳.
숯 냄새가 골목을 점령한 곳.
야키토리집이다.
가게 앞 풍경은 늘 비슷하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아저씨들,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회사원들,
“1차만 하고 들어가자” 해놓고
대체로 1차로 끝낸 적이 없는 사람들.
낮에는
직급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밤이 되면
이름으로 불린다.
회사에서는 직급이 말하고,
야키토리 집에서는 사람이 말한다.
꼬치는 이상하게 공평하다.
네기마 하나,
츠쿠네 하나,
껍질 하나.
부장 것도 180엔,
신입 것도 180엔.
적어도 이 테이블 위에서는
연봉보다 소금 간이 중요하다.
맥주 한 잔이 돌고
꼬치 두어 개가 사라지면
낮에 있었던 일들이 전부
“그럴 수도 있지”가 된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갈등은
소금이랑 맥주 앞에서
조금 작아진다.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건 야키토리집도 어쩔 수 없다.
다만
당장 내일 아침까지 들고 갈 만큼의 문제는
아니게 된다.
나는 그 연기가 좋다.
옷에 배고,
머리에 남고,
집에 가서도 한참 따라오는 숯 냄새.
샤워를 해도 잘 안 빠지는 그 향이
마치
“오늘 하루, 수고했다.”
몸에 직접 찍어주는
퇴근 도장 같다.
특히 좋은 순간이 있다.
꼬치가 다섯 개쯤 쌓이고
맥주 거품이 반쯤 줄었을 때.
회사 얘기는 사라지고
웃음이 조금 커진다.
“주말에 뭐 하지”
“요즘 애가 말을 안 들어”
“그 드라마 봤어?”
“부장님 영어 못하시면서 왜 자꾸 영어 쓰시지…
회의 때마다 갑자기 글로벌해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만 남는다.
근데 이상하게
그 시간이 제일 인간 같다.
생산성 0.
성과 0.
대신
기분은 조금 회복된다.
도쿄에서 제일 필요한 건
아마 이런 시간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한 번은
옆 테이블 회사원들이
처음에는 조용히 맥주를 마시다가,
세 번째 주문쯤부터
갑자기 서로의 별명을 부르기 시작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낮에는 분명
“부장님” “과장님” 하던 사람들이
밤이 되자
“스즈키, 너 진짜 최악이다” 하고 웃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스즈키상도
몹시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아, 이 도시 사람들은
하루 종일 사회인으로 살다가
저녁이 되면
닭꼬치 앞에서 잠깐 인간으로 돌아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이 풍경,
그렇게 낯설지도 않다.
한국에는 치맥이 있다.
야구장 앞이든,
한강이든,
퇴근길 골목이든.
“치맥 할까?”
그 한마디면
하루가 대충 정리된다.
도쿄도 비슷하다.
닭을 튀기지 않고
그냥 꼬치에 꽂아
숯 위에 올릴 뿐이다.
치맥 대신
야키토리와 맥주.
바삭함 대신
연기 냄새.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비슷하다.
오늘 하루
어른 노릇하느라 지친 사람을
잠깐
사람으로 돌려놓는 것.
한국에서는 닭이 튀겨지고,
도쿄에서는 닭이 구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앞에 앉아
말이 조금 많아진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도시에서
제일 많은 인간관계를 구워내는 건
닭인지도 모른다.
치익— 하고
소리를 내면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