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2

소설이란 게 뭐시요이?

by 이대연

목포로 내려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꿈을 꿨다.


숲에 나루가 있었다. 녹음이 우거지고 산림이 울창한데 강이 없었다. 배도 없었다. 사공이 삿대를 들고 빈 나루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깨어보니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서둘러 담배를 피우고 다시 차에 올랐다.


목포 터미널에 도착해 약속장소까지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했다. 어쩌면 수정이 운전하는 버스를 탈지도 모른다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맹의 시력으로 낯선 동네에서 버스를 타기가 꺼려졌다. 쉽게 체념하고 택시를 탔다.


산정동이 산꼭대기에 있는 동네냐고 묻자 기사가 웃었다. 정수리 정頂이 아니라 정자 정亭이라고 했다. 산에 정자가 있다고 해서 산정이 됐다는 것이다.


잠시 후 그가 핸들을 잡은 채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예수상을 보라고 했다. 그곳이 산정이라고. 가톨릭 성지가 된 곳이라고.


흐린 내 눈에는 멀리 있는 예수의 상이 맺히지 않았다. 그보다는 건설 현장의 거대한 크레인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약속장소에 도착해 십 분쯤 기다리자 방사장이 도착했다. 단신에 다부진 체격이었는데, 교복 차림이라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한여름 더위에 재킷까지 걸쳤다. 재질이 얇은 게 동복이나 춘추복 같지는 않았다.


활짝 웃는 얼굴이 시원한 인상이었지만 교복을 입은 오십 대 남자가 미더워 보일 리 없었다. 목포까지 내려와 헛걸음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서로를 확인한 후에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생각보다 사투리가 심하지 않았다. 억양이 약간 살아 있을 뿐 거의 서울말을 썼다. 타지 생활을 오래 한 듯했다. 다만,


“서울에서 오기에 꽤 멀지요이?”


말끝에 간혹 ‘-이’가 붙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무사히 계약서에 도장 찍고 선금이 입금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방사장은 여유로웠다. 멀리서 손님이 왔으니 식사를 대접해야 한다며 나를 잡아끌었다. 일 얘기는 천천히 하자고.


수정이 소개를 어떻게 해놨는지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나 되는 듯 깍듯이 대해 불편했다.


“아시겠지만 제가 자서전을 맡게 되면 어차피 따로 인터뷰해야 합니다. 그걸 녹음하고 나중에 제가 녹취를 풀면서 글 작업을 진행할 거예요. 먼저 계약서를 마무리 짓고 식사하시면서 편하게 지난 얘기를 들려주시면 일이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적당한 시점에 말을 꺼냈다. 자서전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의 얘기만 주욱 늘어놓고 정작 계약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 고작 밥 한 끼에 꼬박 하루를 날리는 셈이었다. 그의 말대로 먼 길 와서 그런 헛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 그러면 그래야지요이.”


그러면서도 앞선 걸음으로 식당을 향했다. 무시당한 건지 생각이 있어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어 어색했다. 달랑거리듯 재촉할 수도 없어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교복은…”


그가 슬쩍 돌아보고는 겸연쩍게 답했다. 학생이라고.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완도에서도 배로 한참 더 들어가는 소완도에서 태어나 먹고 살기 어렵고 공부에 취미도 없어 열네 살에 목포로 건너와 기차 타고 열 시간 걸려 상경했다고 한다.


돈은 많이 벌었는데 공부 못한 게 한이 돼서 중학교는 검정고시로 마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게 요지였다.


자서전 대필을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자수성가형 인물들의 흔한 사연이었다. 그가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지금 삼 학년인데, 한 번도 안 빠졌어요. 개근상 받는 게 목표요이.”


그가 웃었다.


식당까지는 많이 걷지 않았다. 성지 입구 맞은편에 허름한 간판 두엇을 보았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문을 들어서자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다. 고깃집 특유의 기름내가 옅게 배어 있었다. 외관과는 달리 실내가 넓고 나름 깔끔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어 얘기를 나누기에 좋을 듯했다. 마른 수건으로 수저를 닦고 있던 여자가 일어나 맞았다.


방사장과는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학생은 술 마시면 안 된다는 둥 농을 주고받는데 무람없어 보였다.


신발을 벗고 온돌바닥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어수선한 틈에 수정에게 문자메시지로 상황을 알렸다.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약간 넋 나간 표정으로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던 방사장이 술을 묻기에 무심히 맥주라고 답하며 가방에서 미리 출력해 온 계약서 두 부를 꺼냈다.


자서전 대필에 표준계약서가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서식을 적당히 편집해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안되요이.”


고기를 주문한 그가 계약서를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여분이 있느냐고 물어 내가 하나를 더 꺼내 내밀자 밑줄을 긋거나 체크 표시를 하며 꼼꼼히 메모했다.


이미 종이 활자를 읽기 어려운 나로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계약서 두 개에 서명하고는 다 함께 포개 내밀었다.


“고약한 사람 만나면 돈도 못 받고 되레 낭패 볼 수 있으니까 집에 가셔서 찬찬히 잘 봐요이.”


빠른 일 처리와 세심함에 놀랐다. 계약서를 어지간히 많이 봐온 모양이었다. 그가 서명한 계약서 중 하나에 나도 서명을 해 되건넸다. 하나씩 챙겨갖는 용도였다.


주인인 듯한 여자가 선풍기 하나를 들고 와 방향을 맞췄다.


일이 수월하게 풀려 다행이었지만 입금이 되기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방사장은 미리 건넨 통장번호를 보며 열심히 스마트폰 키패드를 눌렀다. 곧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내용으로 보아 누군가에게 입금을 지시하는 듯했다.


주문한 고기가 나올 때까지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가 고기를 집어 불판에 올려놓았다. 집게 다루는 솜씨가 능숙했다. 전에 고깃집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횟집이고 뭐고 안 한 게 없는데, 동시에 스물세 개 점포를 운영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장사로 돈을 번 사람인가 싶었지만 그건 종잣돈에 불과하고 IMF 때 부동산에 투자해 큰 이익을 봤다. 그런 경험 덕에 이후의 금융위기 때도 적잖이 수익을 올렸다.


다만 주식에 손을 대면서 만만한 줄 알고 작전세력과 어울리다가 막대한 손실을 보고 금융감독원에도 불려 다녔다.


느닷없이 나온 얘기라 방심하고 듣다가 아차 싶어 스마트폰에서 보이스 레코더 앱을 찾아 켰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하면 다시 나올 얘기들이었지만 간혹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속에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 쓰신다고 안 했어요? 마리아가 아주 훌륭한 작가시라 하던데요이.”


방사장이 고기를 자르며 물었다. 마리아는 수정의 세례명이었다. 머쓱한 기분에 잔을 들자 그가 재빨리 잔을 부딪쳐주고는 자신의 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차를 가지고 와 마실 수 없다고 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사실 준비해온 소설집을 진작 선물해야 했다. 일종의 영업 전략인 셈이었다. 그러나 매번 머뭇거렸다.


제대로 예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먹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 그저 등단하고 책 한 권 낸 경력을 명함 삼아 근근이 먹고 사는 처지라 항상 떳떳지 못했다.


가방을 뒤적거려 소설집을 꺼냈다. 방현복 사장님께. 표지 안쪽 간지에 날짜와 서명을 정성스럽게 적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가 다 익은 고기 몇 점을 앞접시에 올려주고는 공손히 책을 받았다.


“그런데 말이요이?”


책장을 넘기며 유심히 보던 그가 말했다.


“소설이란 게 뭐시요이?”


억양이 강했다.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우다가 고개를 들었다. 입안에 육즙이 맴돌았다.


수정도 같은 질문을 했었다. 소설이 뭐야? 확신에 찬 어조로 사람이라 답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수정이 좋아하는 대답이란 건 알았다.


결혼하고 얼마 안 지나 수정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주의한 승용차가 횡단보도를 넘었다.


위험한 사고는 아니었지만 임신 중이던 수정이 유산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설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휴대전화를 꺼놓았다.


뒤늦게 입원실로 찾아간 내게 수정이 말했다.


“당신 소설에 나는 없는 거니?”


그해 나는 공모전에 당선됐고 수정은 배 속에 아이 대신 칼을 품었다. 항상 날이 서 있었다.


방사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뭐라도 대답해야 했다. 그러나 어쭙잖게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고객이 얕잡아 보게 두어서도 안 되었다.


“진심… 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진심이란 거는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는 걸 말하려면 있는 사실만 가지고는 어려우니까…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소설집 ‘작가의 말’에 그럴듯하게 써놓은 구절인데 막상 잘 기억나지 않아 멋쩍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방사장이 익은 고기를 불판 한쪽에 모았다.


“보이지 않는 거라… 멋지네요이. 나는 평생 보이는 것만 쫓아왔는데 말이요이.”


그가 집게를 내려놓고 교복 재킷을 벗었다.


“뭐 어차피 나올 얘기니까….”


양쪽 팔뚝에 알아보기 힘든 글자 모양으로 탈색되어 있었다. 인위적인 시술로 멜라닌 색소가 파괴된 듯했다. 어림짐작으로 문신을 지운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별명이 뭐였는 줄 아시요이? 돈벌레였어요. 요짝이 돈을, 요짝이 벌자.”


그가 팔을 하나씩 들어 보였다. 어린 나이에 상경해 몹시 맞았다. 부모 없다고 맞고 돈 없다고 맞고 전라도라고 맞고.


부모와 고향은 어쩔 수 없으니 돈이나 벌자 마음먹고 독기와 치기로 문신을 새겼다. 이 악물고 염료 묻힌 바늘을 찔러가며 직접 새겼다. 돈을, 벌자.


한 자씩 따 ‘돈벌’이라고들 부르다가 아예 돈벌레가 되었다. 그 덕인지 몰라도 돈은 많이 벌었다.


나이 먹고 남들 보기 뭣해 지웠는데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애써 내색하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만화적이어서 뜨악했다.


한편으로는 너무 유치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극단적이었다.


“기술이 좋아져서 감쪽같이 만들 수 있다고 하긴 하던데, 인제 와서 뭘 또 그렇게까지 하나 싶기도 하고 말요이.”


그가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쩌면 소설이 치기 어린 문신 같은 것이라고 답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후회가 들었다.


바늘로 살을 찌르는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가 언제인가부터 이유 모르게 아팠다. 지나고 보면 흉물스러웠다.


고기를 씹으며 주억거리는데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확인하니 모바일 뱅킹 앱의 입금 알림 메시지였다.


방사장에게 입금 사실을 알리고는 담배를 핑계로 밖으로 나왔다. 함께 태우겠냐고 물으니 끊었다며 손짓으로 다녀오라는 시늉을 했다.


서둘러 대출금 이자를 납부했다.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담배를 피우다 문득 생각나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곳 어디에 정자가 있었을까 가늠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목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봐서는 예수상이 서 있는 자리가 정자 있기에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지 입구 돌비석 너머로 흐리게 예수의 뒤통수가 보였다. 이 사이에 낀 고기 찌꺼기가 신경에 거슬렸다.



*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의 지나온 삶이라는 게 본인들에게만 대단하고 본인들에게만 의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아놓고 보면 별다를 게 없었다. 고생해서 돈 번 사람 아니면 고생해서 훌륭한 일을 했다는 사람들인데, 방사장의 삶은 매우 전형적이었다.


녹취를 풀어 양식화해놓은 틀에 엎어 씌우면 달포에도 작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내색하지 않았다. 문신이나 학교 이야기뿐만 아니라 갖가지 일화가 풍부해 쓰기가 수월할 듯했다.


“그런데 정치하려고 하세요? 용도를 알면 거기에 맞게 써드릴 수가 있는데.”


방사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암이라고 답했다. 건강검진을 하다 암 판정을 받았다고.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하나 남기고 싶다고.


여러모로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 입을 닫았다. 사과와 위로 모두 적절치 않아 보였다. 그가 되레 미안해하며 말했다.


“개근상은 받아야 할 것인디….”


하다가 말을 돌려 물었다.


“코르코바도라고 알아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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