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뜨면 부엉이가 울었다. 칼끝처럼 날카로운 바람도 달빛에 상처를 내지는 못했다. 목책을 지키는 병사들 중에 간혹 달을 보며 흐느끼는 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추위를 막기 위해 두른 볏짚을 여밀 뿐이었다. 동료의 시체를 묻은 밤은 달빛이 더욱 시었다. 화톳불에서 튕기는 불똥보다 불침번이 든 창날에 반사된 달빛에 소스라쳤다. 창을 강물에 씻고 돼지기름을 발라 윤을 내도 피비린내는 가시지 않았다. 전투에 이겼으나 누구를 위한 승리인지 알 수 없었고 살아남았으나 무엇을 위한 삶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창이 있으므로 찔렀고 칼이 있으므로 베었다. 승자는 오로지 칼 뿐인 듯했다.
잠시 멈춰 서서 진영을 둘러보던 소두락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두락은 백제어로 남쪽 돌멩이라는 뜻이었다. 돌멩이처럼 강하고 단단하라는 바람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남쪽을 기억하지 못하며 돌멩이만큼 야무지지도 못했다. 그의 이름은 가문의 출신과 그에게 거는 부모의 기대를 말해줄 뿐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 기둥이 높은 천막 앞에 이르렀다. 정벌군 구드래인 목협도진의 막사였다. 방문을 알리자 안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두락은 입구의 천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 사내가 그를 반겼다. 귀족다운 기품이 서린 자태였다. 팔과 다리에 천을 감아 상처를 감싸고 있었으나 위중해 보이지는 않았다.
“경황이 없어 여쭤보지 못한 게 있기에 야심한 중에도 이리 찾아뵈었습니다.”
“나에 관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구드래 도진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알고 있는 대로다. 그대로 적어 올리게.”
“이미 그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내일 전투가 끝나면 장계와 함께 올려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젠가?”
“진실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소두락이 도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구마국 포로 몇을 취조했습니다. 구마국에 그런 주술은 없다고 합니다. 더구나 신지 솔이 주술을 쓴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어라하께 장계를 올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도대체 장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알아야지 않겠습니까?”
소두락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신분에 약간의 차등이 있다고는 해도 수많은 전투를 함께 치러온 전우이자 형제보다 깊은 정을 나눈 사이가 아니던가.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도진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면 또 한 폭의 그림이 이전의 그림을 덮고 다시 수많은 그림들이 앞선 그림을 덮었다. 지난 수개월이 겹쳐진 그림들처럼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머릿속이 혼란했다. 마침내 도진이 마음을 정한 듯 눈을 떴다.
“굽다리 접시를 기억하느냐?”
*
강물이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흘렀다. 강 양편에서 각기 나룻배 한 척씩이 강심을 향해 출발했다. 배 한 척에는 구드래 도진이, 다른 한 척에는 여인과 사내, 둘이 타고 있었다. 강심에 이르러 두 배가 마주했다. 도진이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알리자 여인과 사내 역시 신분과 이름을 알렸다. 여인은 구마국의 통치자 신지 솔이고 남자는 니리므 구마부리였다. 도진은 니리므가 어떤 종류의 직책인지 알 수 없었다. 도진이 항복을 권하자 구마부리가 마한연맹을 탈퇴하고 침략전쟁을 벌이는 십제의 어라하 온조를 비난했다. 도진이 다시 항복을 권했다.
이번에는 신지 솔이 온조의 탐욕과 옹졸함을 조롱하며 굽다리접시를 도진의 나룻배 안으로 던졌다. 굽다리접시는 주로 고기를 담는 접시였다. 굽다리접시에 올라간 고기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저주였다. 접시는 깨지지 않고 나룻배 안에서 뒹굴었다.
“후회하지 마시오.”
도진의 경고에 구마부리가 코웃음을 쳤다.
“그대의 오합지졸이 강이나 건널 수 있을지 모르겠소. 재주껏 건너와 보시오. 굽다리접시를 준비해놓겠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강폭이 넓어 군사들의 도강을 위해서는 뗏목을 이용해야 했다. 구마국의 목궁이 백제의 각궁에 비해 사거리나 위력 면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도강하는 동안 십제 병사들의 무력함에 비하면 어느 각궁보다도 위력적이었다. 구마부리의 말마따나 맞은편 모래톱에 닿기도 전에 굽다리접시에 오른 고기 꼴이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도진이 천천히 배를 뒤로 물렸다. 은빛으로 찰랑이는 수면에 눈이 부셨다. 살짝 현기증이 이는 것 같기도 하고 속이 울렁이는 것 같기도 했다.
비류가 미추홀에, 온조가 위례홀에 도읍을 정하고 각기 나라를 창업한 이래 온조의 위례홀 십제는 낙랑과 말갈의 견제로 운영이 어려웠다. 백제의 남서쪽에는 마한이, 그 밑에는 변한이, 동남쪽에는 진한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소국들의 연맹체였다. 말갈과 낙랑의 공격을 막기에도 벅찬 온조 십제는 남쪽 경계를 마주한 마한과 싸울 여력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물자의 조달과 해안 교통로의 확보에 있어서도 마한의 도움이 절박했다. 때문에 마한연맹의 일원이 되어 간신히 안정을 유지하며 말갈과 낙랑을 방어하는데 힘썼다.
그러나 말갈과 낙랑의 공격이 무뎌지고 수비가 강화되자 온조의 십제는 급격하게 부강해져 위례홀 둘레의 협소한 영토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온조는 마한동맹을 탈퇴하고 정복전쟁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기상조라며 모두가 반대할 때 젊은 장수 도진이 자원했다. 아직 어리지만 말갈과 낙랑의 전투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 용장이었다. 어라하 온조가 그를 따로 불렀다.
“하루빨리 구드래가 되고 싶은 게냐?”
“남쪽에 가보고 싶습니다.”
“왜?”
“그곳에는 사시사철 꽃이 피고 밭에서 곡식을 기르듯이 바다에서 소금을 기른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
“저의 수하 소두락에게 들었습니다.”
“나도 안다. 목지국에서 온 소씨 집안의 장자 말이구나. 장수치곤 너무 예쁘게 생겼더구나. 그애의 부모 일은 안 됐다만.”
“견사익 장군이 과했습니다.”
“덮어두거라.”
도진의 말문이 막혔다.
“언제쯤 출발하는 것이 좋겠느냐?”
“목지국으로 가는 길목에 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폭이 넓어 공략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날이 추워지면 출발하겠습니다. 천관에게 물으니 올겨울은 춥다 합니다. 연맹의 소국들을 치고 강에 이르면 얼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관의 말은 틀렸다. 날은 푹하고 강물은 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진이 배를 대자 겸사익이 다가왔다. 굽다리접시를 집어 들고 낄낄거리며 장난을 쳤다. 구마국을 조롱하는 것인지 도진 자신을 조롱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성품이 포악하고 오만한 자였다. 목지국에 당도하기 전에 반드시 저놈을 죽이리라. 도진이 입술을 깨무는데 누군가 가만히 팔을 잡았다.
“녀석의 도발에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돌아보니 소두락이었다. 방금 전까지 도진이 보던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의 끝에 겸사익이 있었다. 공을 가지고 하듯 굽다리접시를 던지며 놀다가 이내 바위에 힘껏 내리쳤다. 구마국의 협박 따위는 무섭지 않다고 강변하는 듯했다. 그 꼴이 마치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병사들을 향해 감히 도강하지 못하는 구드래 도진과 굽다리접시를 깨는 자신을 비교해 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러나 지휘관이 되어 병사들을 소득 없는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도진은 구드래의 처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막사 밖으로 내놓은 무쇠 삼족기에서 김이 오르는 게 보였다. 고슬고슬한 밥 냄새가 났다.
강은 얼지 않았다. 위례홀에서는 동북방의 정세가 불안정하니 병사들을 함부로 소모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전갈이 왔다. 무리하게 병사들을 도강시키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십제군은 유격조를 편성해 기회가 보일 때마다 은밀히 강을 넘었다. 야습과 초병 암살, 군막 방화 등으로 적진을 교란하고 전의를 꺾었다. 선봉은 언제나 구드래 도진이 맡았다. 소두락은 그게 불만이었다. 평온하고 위험한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
구마국은 곰을 숭배하는 예맥족의 한 줄기로 구마, 고마, 검은 모두 본래 곰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신성한 존재나 왕을 뜻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십제군과 구마국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인 검가람은 곰의 강, 혹은 신성한 강이라는 뜻이었다. 인구는 마한 소국 중 큰 편으로 만여 명이 훨씬 넘었다. 혈통은 모계로 이어져 왕도 당연히 여인이었다. 백성 모두가 한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의미로 한 성씨를 사용했는데, 구마 씨였다. 딸들은 모두 아름답고 지혜로웠으며 아들들은 모두 용맹하고 호전적인 전사였다. 왕은 다른 마한 소국들과 마찬가지로 신지라 불렀으나 간혹 자신들만의 호칭인 어라구마라고도 불렀다.
신지 구마솔이 구드래 도진의 생포 소식을 들은 것은 아직 정월 무렵이었다.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채 낙오한 것을 유격병 중 하나가 생포했다. 일전에 도진과 마주한 적 있는 구마부리가 그를 알아보고 신지 솔에게 데려왔다. 도진은 깨어나지 못했다.
“죽여야 합니다.”
니리므 구마모랑은 강경했다. 당연한 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죽여도 좋았으나 적장의 생포는 그 자체로 활용가치가 있었다. 신지 솔은 도진을 바라봤다. 진한 눈썹과 선명한 입술, 날렵한 턱선이 인상적인 얼굴이었다. 그의 생사를 결정하기가 어려웠기에 다만 치료를 명했다. 살리든 죽이든 그 후에 할 일이었다.
“죽여야 합니다.”
구마모랑은 고집을 부렸다.
“살려서 십제와 협상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구마부리도 지지 않았다. 군사를 통솔하는 모랑과 행정을 담당하는 부리는 서로 소임이 달랐기에 계산도 달랐다. 그러나 나흘 후 도진이 깨어났을 때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주장을 수정해야 했다. 도진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말하고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으나 유독 자신이 누구인지만은 기억하지 못했다. 십제니 구마국이니 하는 것들도 몰랐다.
“저자를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랑과 부리의 생각이 일치했다. 오래간만에 그들이 신지 솔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의식을 회복한 도진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전사임을 알 수 있었다. 팔뚝의 근육과 칼을 잡았던 손의 굳은살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무엇을 위하여 누구와 싸웠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몸은 살아 있으나 정신은 비었으므로, 그는 단지 칼이었다. 칼자루를 잡는 이의 의지가 그의 의지가 될 것이었다. 휘두르는 대로 휘둘릴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