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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새벽을 좋아하는 취준생

by 메모리
나의 안식처 새벽


하루 24시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새벽이 시작되는 오전 12시~새벽 3~4시 사이다. 집 안과 밖에서 들리지 않는 조용한 순간은 나에게 최고의 편안함과 안정을 가져다준다.


아침에 부모님이 일어나 정수기에서 물을 떠마시는 소리가 방에서 들리는 순간 내 눈은 떠지고 몸은 긴장하게 된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느낌이 싫기 때문이다. 내가 취준생이 아니라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월~일 내내 집에 있는 나는 새벽이 될 때까지 보이지 않는 소음과 함께 압박, 불안, 초조, 긴장, 부담을 느끼며 하루를 보낸다. 그렇기에 더욱이 새벽을 좋아하는 편이다. 불편한 감정을 느낄 필요도 없고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으니까.


사라진 신분, 취준생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학생'이라는 신분이 존재했기에 크게 불안감을 느끼진 못했었다. "난 아직 대학생이니까 괜찮아~"라는 느낌이었다. 명확한 신분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느낌은 4학년이 되고나서부터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내가 굳건히 믿었던 신분은 사라지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니까. 고급지게 말하면 취준생, 현실적으로 보면 그냥 백수가 되는 것이다.


"요즘 뭐 해?"라는 질문을 받을 때, "나 학교 다녀"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답변이다.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을 받고,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성실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한 순간부터 "나 취업 준비 중이야"라는 답변은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어디서 일을 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은 나 자신이기에, 졸업하고 나서 취준생이 된 순간부터는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기 가장 쉽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기이다.


취업을 했는데 그만뒀다고? 미친 거 아냐?

나는 작년에 행정직에 계약직으로 취업을 했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취업한 게 어디야. 안 그래도 요즘 취업난에 어디라도 들어가서 월급이라도 잘 받으면 잘하는 거지.


회사도 나쁘지 않았다. 계약직임에도 새로 입사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회사 내 분위기도 부드러웠을뿐더러, 명절 상여금이나 선물 또한 받을 수 있었다. 월급도 첫 직장인 거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난 월급에 큰 욕심은 없었지만.


하지만 첫 직장에서 처음 수행하는 업무였기에, 내가 맡은 업무에 곧장 적응을 하지 못해 실수를 남발하였고, 선임에게 혼도 자주 났었다. 행정직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절차가 필요했고,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었다. 더군다나 슬슬 바빠질 시기에 입사를 한 탓에, 1달도 안돼서 내 책상에는 처리해야 될 서류가 수북하게 쌓여갔다.


덕분에 맡은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선임과 나는 불편한 관계로 시작을 하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특정 사업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는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여기서 끝났었다면 다행이겠지만, 문제는 집안에서도 일어났다. 평일 새벽에 일어났던지라 나에게는 굉장히 힘들었고 지쳤던 일이었기에, 회사 일과 집안일이 덮쳐진 나는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정신과에 가기에는 무섭기도 하고 혹여나 기록에 남아 나중에 내 구직활동에 마이너스가 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 게 가지는 못했고, 그렇다고 그냥 견디기에는 너무 힘들었던 나는 회사 근처 내과에 방문해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복용을 했지만, 크게 효과를 얻지는 못했고, 나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점점 쌓이고만 있었다.


결국 나는 항우울제를 과다 복용하다가 정신을 못 차리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 후에 나는 부모님과 한바탕 얘기를 나눈 끝에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다시 시작된 취업 준비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나는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구직 사이트를 통해 여러 곳에 지원도 해보고, 토익 시험도 보고, 일본어 JLPT 시험도 봤지만 토익은 높은 점수를 받질 못했고, JLPT도 불합격하고 말았다. 지원한 곳에서 연락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연락 온 곳에 찾아가 면접을 봐도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확실한 건 내가 열심히 하지 못한 탓이 분명하다. 구차하게 변명을 해보자면 졸업 후에 의지가 전처럼 생기지 않았고,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은 탓에 게을러지고 나태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


시간이 지날수록 취업의 문이 좁아져 취업난이 심각해지고, 그에 따라 쉬는 청년도 40만 명 이상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힘들고 고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냥 일을 구하는 거라면 어렵진 않겠지만, 모두가 그렇듯이 조금이라도 복지가 좋고 규모가 큰 회사에 입사하여 편하고 안정적이게 회사를 다니고 싶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힘든 삶을 지내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마음 아픈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도 종종 늘어나고 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나는 다른 취준생들과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다들 취준생들에 비해 한참 모자라고 부족하고,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 맴도는 수많은 생각들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을 글을 적어내면서 풀어내며 정리를 하고 싶었기에 글을 써보았다. 그리고 이 글을 보게 되는 모든 사람들, 특히 취준생들에게 작게나마 공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세울 것 없고 부족하고 모자란 나라도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분명 더 크게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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