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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Jan 12. 2024

30대 워홀을 준비하며 고려할 점

우리가 워홀을 중도 포기하는 이유

호주에 도착한 지 3주 정도가 지났을 때, 문득 30대 워홀을 준비하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슬슬 여유로운 호주생활에 익숙해지고 곤두섰던 날이 무뎌지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을 때였다. 

너무 아무것도 안 하다 보니 문득 내가 이렇게 여유롭게 있어도 되나? 싶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호주의 하루는 무척 짧다. 정확히는 늦게 일어난 자에게 매우 짫다.


호주의 카페는 대부분 새벽 5시부터 문을 연다. 그리고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물론 스타벅스나 대형 체인점은 늦게까지 문을 여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3시면 문을 닫는다. 


왜 새벽 5시부터 문을 여는 걸까? 생각해 보면 수요가 있으니 그때부터 문을 여는 것이리라.


호주에서 여유롭게 살았다고 하면 대부분 느지막이 일어나 가볍게 아침을 먹고 시작하는 하루를 떠올리기 쉬운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호주에서 여유롭게 산다는 것은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빠르게 마무리한다는 것을 뜻한다. 나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보통 5시 30분이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는 했다. (농장을 선택하면 어쩌면 조금 더 빨리 일어나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아침을 먹고 단골 카페에 들러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담고 출근했다. 물론 나는 3시에 퇴근하지 못했다.(웃음) 시급이 높다 보니 통장에 주마다 찍히는 돈의 재미를 알아버린 탓이다. 


그래서 초반의 나에게 호주에서의 하루는 매우 짧았다. 초반 2개월간은 어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평일에는 반 강제적으로 7시에 일어났지만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에는 9시쯤 일어나서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 홈스테이 맘이 차려준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면 10시 30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나에게도 무료함이 찾아왔다. 시티 쪽에 살았다면 이런 생각이 덜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인구밀도가 적은 시골이었다.(그렇다고 완벽한 시골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일을 시작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3주 만에 나는 여유로움에서 무료함을 찾아버린 것이다. 일을 하고자 마음먹으니 생각보다 시작은 쉬웠다. 평일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주말 5시간만 하는 일을 시작했고 평일은 학교(라고 해봤자 오후 1시 30분이면 수업이 끝났다.) 주말엔 일을 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모든 게 곡절 없이 평탄에게 흐름을 타고 갔다. 물론 크고 작은 굴곡이 없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나의 마음이 감내할 정도의 굴곡이 완막한 곡선을 이루며 일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나는 회사를 퇴사하고 일이란 게 너무 싫었다. 일을 그만두기 전 나는 파이어족에 매우 심취해 있었다. 그에 관한 서적을 읽고 그를 위해 준비했다. 너무 열심히 준비한 탓일까? 그 열정은 빠르게 식었다. 대신 남은 것은 있었다. 통장의 잔고였다. 한창 시드머니를 모으겠다고 모아둔 통장 속 그 아이,


그런 내가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고 일을 시작했다. 


워홀을 하면 만나게 되는 친구 대부분이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게 된다. 20대 초반에서 중반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간혹 내 또래도 있었다. 그렇게 만나게 되는 친구들 몇은 호주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한국을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분 돈이 주는 현타를 겪은 친구들이었다.


시급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할 정도로 시급이 높은 호주이지만 그만큼 물가도 상상이상으로 높다. 또한 코로나 이후로 집값이 급등해서 렌트비가 정말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주급이 기본이다 보니 돈의 흐름이 빠르고 다음 주의 나에게 맡기자라며 생활하다 보면 그다음 한주의 내가 또다시 빈곤해지는 생활이 찾아올 수 도 있다.


그래서 나는 초반에 한국에서 들고 오는 초반의 정착금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30대에 워홀을 준비하는 분들이 이 초반 정착금에 대해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고 마음먹을 때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다 보면 알겠지만 초반에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그 감정이 그곳에서 살아가고 느끼는 감정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을 멀리까지 돌아볼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새로운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 생활에 익숙해지면 내가 가는 익숙한 장소를 가고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 내 영향권을 만들어 가게 되는데 그게 대부분 초반에 형성이 된다. 


하지만 초반 정착금을 너무 최소한으로 해서 오게 된다면 내가 사는 곳을 적응할 새도 없이 일을 시작해야 하고 일을 시작하면 생각보다 놀 시간이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 초반에는 돈이 잘 모이질 않는다. 호주에 워홀로 오게 된 경우 보통 집을 렌트하기보다는 (빌려주지도 않는다.) 렌트하신 분들의 방을 빌려 함께 생활하는 쉐어를 하게 될 텐데 초반 그 쉐어비도 만만치 않다. 또한 그곳에 살면서 각종 생필품들도 사야 하는데 호주는 시급이 높은 만큼 한가해지면 캐주얼(알바)들의 시간을 자르는데 정말 짤이 없다. 일에 익숙해질 때까지 본인의 생각보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받지 못하다 보니 벌이가 적을 수도 있다.


그래서 초반에 정착금을 터무니없이 적게 들고 온 친구들은 매주 돈을 걱정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내가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현타를 겪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돼버리는 것이다.


물론 20대 때에는 악바리 정신으로 버틸지 모른다. 나의 20대 초반 일본 워홀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30대의 우리들을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의 어떤 점으로든 우리는 지쳐서 그곳을 떠나왔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새로운 곳으로 왔는데, 쫓기듯 다시 일을 시작해 버리면 우리는 우리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다시 없어지게 된다.


물론 초반에 정착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30년을 견뎌낸 생각보다 단단한 한국인이다. 


내 마음을 돌아보다 보면 길은 있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어 질 때까지 기다려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초반 정착금은 되도록 넉넉하게 준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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