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워홀 가면 농장을 가야 할까?
내가 호주 워홀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의 대부분이 "농장 가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리고 워홀을 준비하며 이 나이에 20대 친구들처럼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대답하고 싶었다. "아니요, 농장 안 가도 돼요"
호주를 간다고 하면 농장에서나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알아보기 전까지는 그런 이미지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호주가 1차 산업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고 값싼 호주산 먹거리들이 이미 우리 시장에 들어와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1차 산업에 집중되다 보니 호주는 자국 특허보다 타국에서 유입되는 특허가 많은 나라이기도하다.)
물론 20대 때 가는 거라면 농장이나 공장을 가는 것이 필수일 수는 있다.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비자 연장을 위해서이다. 호주정부는 정부가 지정한 산업에서 일정 일수를 채워야지만 세컨드비자라는 것을 발급해 주는데 그 지정산업 중 하나가 농장이다.
농장에서 일정기간 일해야지만 세컨드비자 발급을 통해 호주에 1년 더 머물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써드비자(3차)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호주는 워홀로 총 3년을 머물 수 있다. 이미 사라진(작년 9월에 사라졌다) 코로나 비자라는 게 있었는데 그 비자까지 하면 최장 5년까지 호주에 머물던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30대인 우리라면 생각할 게 있다.
세컨드비자의 발급해 주는 조건은 만 30세까지이다. 물론 한국나이를 기준으로 딱 30살에 호주를 오게 된다면 기회는 있다. 31살까지도 도착하자마자 농장에 가서 일수를 맞추고 미리 신청한다면 간당간당 맞춰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한국나이로 32살에 호주에 오게 된다면 이미 늦었다. 우리는 세컨드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다.
그렇다 보니 30대에 워홀을 오게 된다면 굳이 농장을 갈 필요가 없다. 호주정부가 오래전부터 만 35세까지 워홀을 확대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해당 사항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농장에 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농장에서 일하는 것에 나름의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농장에서 일하면 시티에서보다 비교적 돈을 모으기가 쉽다. 농장 주변에 놀거리가 별로 없기 때문에 반 강제적 칩거생활이 가능해진다. 집도 농장주가 구해준 집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쉐어생활이 가능하다고 하니 시티에서 생활할 때보다 생활비도 확실히 저렴할 수 있다. (물론 숙소컨디션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에서 생활하든 한국에서 생활하든 우리는 각자 판단 기준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농장에서 일할 수도 있고 시티에서 일할 수도 있다.
다만 워홀을 가게 되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30대 때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회사생활을 하다가 호주로 온 친구들 중 겪는 또 다른 현타는 바로 일하면서 오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주에서 일을 하게 되면 물론 다양한 일자리가 있겠지만 한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 서비스업이다. 바리스타, 홀서빙, 요리, 청소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학생 때 알바로 하던 일이 대부분이다. 물론 타일러나 포크리프트, 네일, 미용 같은 기술을 가진 친구들은 그쪽으로 가는 친구들도 있지만(호주는 기술직이 대우가 더 좋다.) 흔히 한국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우리에게 그런 기술은 없다.
우리가 힘겹게 쌓은 회사경력은 한국을 나오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 30대 때 워홀을 준비한다면 우리는 '내가 이러한 일들을 다시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인가?' 고민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