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 전공
코로나로 인해 강의는 전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안 가도 되니 몸은 편했다.
게다가 레슨이 많이 취소되어 널널해진대다가
첫 학기 신입생 의욕으로 뿜뿜 기운이 넘쳤다.
그런데 이때 의아했던 점이 있었다.
선배들은 의욕이나 열정보단 언제나 한 발자국 뒤에 있으면서 어딘가 심드렁해 보였다.
그 이유는 후반에 나온다.
수업이야기 먼저 하자면,
처음 들은 수업은 19세기 음악사였다.
그전에 그라우트 음악사니
들으면서 배우는 음악사(일명 들배)
두길 서양음악사 등
정명난 음악사를 이미 공부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 수업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일단 우리 과는 한국어 문헌을 읽지 않았다.
죄다 영어, 영어, 영어!
논문 뒤에 참고문헌에 한국어가 있으면 안 된단다.
(네?)
타루스킨과 달하우스라는 저명한 학자의 책을 공부했는데 이 책에는 앞서 말한 음악사 내용은 나오지도 않는다.
심층 of 심층서다.
내가 당시 블로그에 썼던 글을 가져와보면-
"저번 주에는 리트를 했는데 보통 예술가곡, 시에 음악 붙인 거 요정도만 배우고 작곡가랑 작품 예시 좀 보고 넘어가는데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조차 않고 바로 미학, 사회학, 철학, 문학, 역사학, 기호학, 언어학 등 별세계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책들을 매주 읽어가야 했고 그중 한 챕터를 발제해야 했다.
"위 같은 글 52쪽을 읽고 발제를 준비해 갔다.
내가 맡은 건 프랑스의 그랑 오페라.
딱 맘먹고 시작한 건 일요일부터.
일요일부터 오늘 수요일까지 최소 하루에 10시간씩 한 거 같다.
새벽 2시 반~3시쯤 자고 오늘 8시에 깨서 2시간 반정도 하고 레슨 후 밥 먹고 1시부터 좀 하다가 2시~5시 수업 듣고 5시부터 지금 새벽 3시까지..."
진짜 어려웠다.
살면서 딱히 의심 안 해봤는데
내 집중력에 뭐 문제가 있나...? 란 생각까지 들었다.
수업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보통 3~4과목씩 듣고 가끔 청강도 했다.
너무 피로해서 청강 시간에는 자주 잠들었다..(죄송)
또 다른 수업으로 캐플린/20세기 분석학, 공연음향학, 음악신경학, 19세기 오페라학, 음악사회학, 현악문헌, 바로크연주법, 20세기 음악미학 등 여러 과목을 들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건 20세기 분석학.
진짜 천재들만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닌가 하고
나에게 좌절을 안겨줬던 수업.
가장 쉬웠던 기초 부분을 잠시 가져와보면...
1.10 interval class
unodered pitch class intervals는 interval class(ic)라고도 불린다. 각각의 pitch class는 많은 개별적인 음고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interval class는 많은 개별적인 pitch interval을 포함한다. 옥타브 동등성 때문에, compound intervals-옥타브보다 큰 인터블은 옥타브 내에서 대응되는 동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더 나아가 6보다 큰 pitch class interval은 complements mod12에 동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0=12, 1=11, 2=10, 3=9, 4=8, 5=7, 6=6) 이것들은 전통적인 조성이론에서 인버젼(inversions)으로 불리는 인터벌이다. 단 3도와 장 6도 혹은 장 2도와 단 7도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인터벌 23,13,11,1 은 interval class 1의 구성음이다.
예시
interval class 0(pitch intervals 0, 12, 24)
interval class 1(pitch intervals 1, 11, 13)
interval class 2(pitch intervals 2, 10, 14)...
그러므로 우리는 인터벌을 네 가지나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다.
1) ordered pitch interval
2) unordered pitch interval
3) ordered pitch class interval
4) unordered pitch class interval(= interval class)
이상 별세계 이야기였다.
학기 중엔 과제하느라 새벽 3~4시 취침이 기본이었다.
비록 수업은 어려웠지만 재밌고 유익한 깨달음도 많이 얻었고 과제로 소논문을 쓰다 보면 희열이 느껴질 정도로 즐거운 순간이 많았다.
엄청나게 뿌듯하달까?
자기 효능감, 도파민이 뿜뿜 나오는 느낌!
그게 이 학문을 선택한 계기였고 이어가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진짜 힘든 점은 따로 있었다.
단체로,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거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모둠'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새 학기 공포증은 언제나 있었고
소풍, 수련회 등도 그리 재밌지 않았다.
항상 가기 전에 걱정이 컸달까.
어른 되어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런 성향은 남아있다.
수업을 들으면서(+일도 하면서)
대학생 교양 수업 조교를 해야 했으며
(105명 시험지 채점!! 리포트 첨삭 후 피드백+점수! 근데 이건 장학금을 주니 좋았다.)
서양음악학회를 비롯 여러 학회에 참여해야 했고
발표를 해야 했고
우리 학회에서는 모여서 토론하며
매 학기마다 책을 냈는데 그것도 참석해야 했고
(공동저자로 책 세 권 냈다.)
선생님들이 2년짜리 학술저술 사업을 하셔서 그 아래 조수로 들어가서 원고 정리하고 검수하고 참고문헌 쓰고 프린트해서 학교 가서 서식맞춰 제출 해야 했고
논문 콜로키움도 들어야 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도 해야 하고 논문발표도 참석해야 하고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글을 써서 책을 홍보하는 등
학회에 대한 잡다한 업무를 해야 했다.
참, 유튜브 영상도 찍고 편집했다.
제일 서두에 선배들은 의욕 뿜뿜보단 어딘가 한 발자국 떨어져 있으려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어떤 업무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거나
원고 마감 및 원고 수정을 해야 한다거나
학회, 콜로키움 등 일정을 알리는 메일이 뜨면
숨이 콱! 막혀왔다.
게다가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다.
병실에서 수업 듣고 누워서
100여 명의 학부생들 리포트를 첨삭하기도 했다.
허리 디스크도 생겼다.
갑자기 너무 버거웠다.
특히 책 프로젝트만 생각하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다.
(정말 어려웠던 책을 강제로 섹션 나누어 번역해야 했음. 박사선생님들이 하셔야 하는 수준이었는데!)
제주도 여행 가서까지 노트북을 들고 가서 번역을 하고 했는데(챗 gpt 없던 시절) 현타가 왔다.
내가 돈 벌려는 것도 아니고.. 순수히 배우려 온 건데... 왜 이리 스트레스받고 힘들지?
하고 싶지 않은 걸 해서 그런가?
내 돈 내고 왜 일하는 느낌이 들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동기들 죄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다들 수업이 어려워 스스로의 머리와 정신력을 의심하고 있었고, 수업 외 하는 프로젝트와 일이 너무 많은데
그 대부분은 내가 원하지 않은데 강제로 해야 하는 일이었어서
다들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그 길로 한 학기 휴학을 냈고
휴학한 시간 동안 미친 듯이 베이킹을 했다.
정말 치유되는 시간이었다.
휴학을 한 덕분인지
심리적으로 다소 안정이 되었고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복학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고
마지막 학기를 수업+조교+레슨+결혼준비로 불태웠다.
논문 계획 발표를 하고 논문을 쓰다가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파나마에 오게 되었다.
으음 그러니까
아직 졸업 못했다. 수료 상태다.
논문 생각만 하면 캄캄하다. 하하.
어쨌든, 주로 힘듬에 관해 썼지만
음악학을 하면서 배운 게 참 많았다.
피아노전공 시절에 알던 음악이론은 수면 위 빙산 조각일 뿐이었다.
부작용은 음악에 대한 글을 예전처럼 편하게 쓸 수 없게 되었다고나 할까? 뭔가 근거와 논리가 확실해야 할 거 같고 학자의 방법론 가져오고 주석 달아야 할 거 같고... 뭐 그렇다.
그리고 세상엔 수재들이 정말 많구나란 생각도.
이런 사람이 교수를 해야 하는구나란 생각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