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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앨범을 발매하다.

by 삐아노


예전부터 이루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바로 내가 만든 곡으로 연주회를 여는 것!


Edvard Grieg, Composer (1892)


그래서 한국에서

개인레슨으로 작곡을 따로 배우며 한 곡을 완성했지만

더 이상 다른 곡은 써지지가 않았다.

쓰려고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데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의 주재 발령이 확정된 후

가서 할 것들을 생각해 놨다.



그중 음악에 관한 것으로는

1. 학위를 딸 수 있다면 따기

2. 논문마저 다 쓰기

3. 작곡으로 50곡 발매하기

4. 연주하기

5. 레퍼토리 준비하기


가 있었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인터넷 검색으로 우연히

피아노협회를 발견하여 가입을 했다.

곧 콩쿠르 시즌이었고 운이 좋게도

심사위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멋진 경험이었지만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편으로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열심히 아침마다 논문을 썼다.

교향곡 세 개를 분석해야 했는데

한 곡은 전 악장 분석, 한 곡은 한 악장까지 분석해서

한 100페이지 정도 썼다.

그런데 혼자 고군분투하려니 의욕도 사라지고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사실은... 너무 쓰기 싫었다!

논문은 강제로 써야 써지는 거라고!



원래 목표는 논문을 다 쓴 다음

작곡을 시작하는 거였는데

바로 중단하고 곡을 쓰기 시작했다.



2023년 11월에 열한 곡을 썼다.

굉장히 스스로도 놀라웠던

한국에선 써지지도 않던 곡이

여기서는 굉장히 즐겁고 빠르게 써졌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음악이라니!

그걸 내가 치고 있다니!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행복했던 순간.


특히 그날 만든 것을 녹음해서

요리하며 듣는 게 하나의 기쁜 낙이었다.



얼른 음원으로 발매해서

음원사이트에서 남편이랑 같이 들어보는 게 소원이 됐다.



12월부터 미디를 잠시 끄적이다가 여행을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1월부터 미디 작업에 들어갔다.



정말 맨 땅에 헤딩을 하는 기분이었다.

로직 강의를 들어도

쓰레스홀드가 뭔지 리미터 양이며 믹싱은 뭐고 마스터링은 또 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디는 음악 아니고 공학이다!!

정확히는 공학과 귀가 요구되는 작업이랄까.



너무나 막막했다.



그때 썼던 일기 몇 부분을 발췌해 보면

당시 나의 스트레스의 흔적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늘은 한번 미디 찍어볼까??
하고 마스터 키보드를 켜서 해봤으나
일단
장난감 소리 같은 피아노소리에 한번 화나고
엉망인 싱크에 한번 더 화나고ㅠㅠ
하 이거 언제 일일이 맞추지 스트렛스

그래서 녹음기 꺼내서
라이브를 녹음해보기도 했다.
와 라이브 소리가 천만 배 좋은데
문제는 잡음이다.
음원의 깔끔한 그 소리가 아니라 발로 페달 밟는 소리부터 숨소리까지 다 들림.
후 안될 듯...
다시 미디 해보다가 가상악기를 하나 사기로 함

2023.12.1




와 추출만 한 20번 넘게 한 거 같다.
헤드폰에서 좋게 들렸는데 핸드폰에서는 이상한 소리 나서
찾아보고 뒤져보고...
하. 곡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작곡보다 미디 만드는 게 훨씬 어렵다.

스트레스!!!

2023.12.9




일어나서 빨래 돌리고
10시에 미디 시쟉!!!
완전 노동 그 잡채
싱크 일일이 맞추고 벨로시티 하는 거 너무 힘들다
노잼ㅠㅠ

2024.2.21




점심 먹고
미디 하는데
전에 수정해 둔 게 반영이 안 되어있어서 다시 하고
눈감고 들으면서 다시 다 수정함.
진짜 기 빨림ㅠㅠ

한 곡당 음이 한수백 개 있는데 그걸 하나하나 조절하는 과정이 진짜로 연습하는 거랑 비슷하다.
지금까지 곡당 100번씩은 들은 거 같은데
200번 정도 들으면 나올런가.

여하튼
이제 피아노 프리셋도 조금 익숙해졌다.
내일은 한 곡이라도 마스터링까지 끝내보는 것이 목표!!!
​2024.3.27



운동을 너무 안 했다
목금토 모두 미디를 8시간 이상씩 한 거 같다
진짜 듣고 듣고 또 듣고 미칠 뻔ㅠㅠ
​2024.4.2



아 진짜
너무 힘든 한 주였다.

일기 쓴 다음날.
아침에 화장실을 가니
피가 나오고있었다.


???????
생각보다 많이.
나는 생리가 엄청난 칼주기인데
끝난 지 2주밖에 안 됐던 터라
몹시 당황했음.

인터넷 찾아보니 스트레스받으면 그럴 수 있단다.
나 그다지 정신적으론 안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쇼크였다.
산부인과 연락하니 진료가능일이 3주 뒤ㅋㅋㅋㅋ
장난? ㅎㅎㅎ



하 여하튼...
생리를 2주 만에 또한... 하ㅜㅜ
스트레스라는 게 몸의 부담을 얘기하는 거 같기도...


일요일까지가 마감이라
뭐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곤
미디에 몰빵 했다.

진짜...
몇 번 수정했는지
바운싱만 수백 번 한 거 같다.
컴퓨터용량이 모자라서 계속 지워가면서 했다ㅠㅠ
어찌나 잠은 또 안 오던지
새벽 3~4시에 겨우 자고 또 아침에 일어나면
두통으로 지끈거렸다.


그래서 무슨 요일에 뭐 했는지 기억이 안 남ㅋㅋㅋ
그냥 미디 하다가 밥 먹고 또 미디 하다가 빨래 개고 미디 하다가 자고.
거의 하루에 12시간을 한 듯
무슨 수험생인가ㅋㅋㅋㅋ

어제는 멜론 보다가 다들 앨범소개글을 상세히 썼길래
부랴부랴 쓰고-
음원 다 들어보는데 수정할 거 오류? 버그같이 들리는 거 아 계속 발견돼서
진짜 극대스트레스.

2024.4.16





정말 막판에는 미디를 하루에 12시간씩 하느라

2주 뒤 생리를 또 하는 등

건강도 나빠지고 헤드폰 때문에 귀에도 염증이 생겼다.

선생님한테 배웠으면 이리 고생 안 해도 되었을 텐데-

혼자 하느라 누가 알려주면 1분 만에 할 수 있는걸

몇 십 시간을 소위 말해 '삽질'했다.

(꼭 배우세요!!)



그리하여

나의 첫 앨범은 2024년 4월 말에 발매되었다.


멜론에 내 음악이 나오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정말 뭉클한 경험이었다.

우리 엄마는 1년이 되어가는 지금껏

프사로 내 앨범 재킷 사진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4월에 2집이 발매된다.

다음 주부터 믹싱하고 마스터링 지옥이 다시 시작된다!



다음 편에서 작곡-제작-발매의 순서를 소개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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