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이루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바로 내가 만든 곡으로 연주회를 여는 것!
그래서 한국에서
개인레슨으로 작곡을 따로 배우며 한 곡을 완성했지만
더 이상 다른 곡은 써지지가 않았다.
쓰려고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데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의 주재 발령이 확정된 후
가서 할 것들을 생각해 놨다.
그중 음악에 관한 것으로는
1. 학위를 딸 수 있다면 따기
2. 논문마저 다 쓰기
3. 작곡으로 50곡 발매하기
4. 연주하기
5. 레퍼토리 준비하기
가 있었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인터넷 검색으로 우연히
피아노협회를 발견하여 가입을 했다.
곧 콩쿠르 시즌이었고 운이 좋게도
심사위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멋진 경험이었지만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편으로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열심히 아침마다 논문을 썼다.
교향곡 세 개를 분석해야 했는데
한 곡은 전 악장 분석, 한 곡은 한 악장까지 분석해서
한 100페이지 정도 썼다.
그런데 혼자 고군분투하려니 의욕도 사라지고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사실은... 너무 쓰기 싫었다!
논문은 강제로 써야 써지는 거라고!
원래 목표는 논문을 다 쓴 다음
작곡을 시작하는 거였는데
바로 중단하고 곡을 쓰기 시작했다.
2023년 11월에 열한 곡을 썼다.
굉장히 스스로도 놀라웠던 건
한국에선 써지지도 않던 곡이
여기서는 굉장히 즐겁고 빠르게 써졌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음악이라니!
그걸 내가 치고 있다니!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행복했던 순간.
특히 그날 만든 것을 녹음해서
요리하며 듣는 게 하나의 기쁜 낙이었다.
얼른 음원으로 발매해서
음원사이트에서 남편이랑 같이 들어보는 게 소원이 됐다.
12월부터 미디를 잠시 끄적이다가 여행을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1월부터 미디 작업에 들어갔다.
정말 맨 땅에 헤딩을 하는 기분이었다.
로직 강의를 들어도
쓰레스홀드가 뭔지 리미터 양이며 믹싱은 뭐고 마스터링은 또 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디는 음악 아니고 공학이다!!
정확히는 공학과 귀가 요구되는 작업이랄까.
너무나 막막했다.
그때 썼던 일기 몇 부분을 발췌해 보면
당시 나의 스트레스의 흔적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늘은 한번 미디 찍어볼까??
하고 마스터 키보드를 켜서 해봤으나
일단
장난감 소리 같은 피아노소리에 한번 화나고
엉망인 싱크에 한번 더 화나고ㅠㅠ
하 이거 언제 일일이 맞추지 스트렛스
그래서 녹음기 꺼내서
라이브를 녹음해보기도 했다.
와 라이브 소리가 천만 배 좋은데
문제는 잡음이다.
음원의 깔끔한 그 소리가 아니라 발로 페달 밟는 소리부터 숨소리까지 다 들림.
후 안될 듯...
다시 미디 해보다가 가상악기를 하나 사기로 함
2023.12.1
와 추출만 한 20번 넘게 한 거 같다.
헤드폰에서 좋게 들렸는데 핸드폰에서는 이상한 소리 나서
찾아보고 뒤져보고...
하. 곡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작곡보다 미디 만드는 게 훨씬 어렵다.
스트레스!!!
2023.12.9
일어나서 빨래 돌리고
10시에 미디 시쟉!!!
완전 노동 그 잡채
싱크 일일이 맞추고 벨로시티 하는 거 너무 힘들다
노잼ㅠㅠ
2024.2.21
점심 먹고
미디 하는데
전에 수정해 둔 게 반영이 안 되어있어서 다시 하고
눈감고 들으면서 다시 다 수정함.
진짜 기 빨림ㅠㅠ
한 곡당 음이 한수백 개 있는데 그걸 하나하나 조절하는 과정이 진짜로 연습하는 거랑 비슷하다.
지금까지 곡당 100번씩은 들은 거 같은데
200번 정도 들으면 나올런가.
여하튼
이제 피아노 프리셋도 조금 익숙해졌다.
내일은 한 곡이라도 마스터링까지 끝내보는 것이 목표!!!
2024.3.27
운동을 너무 안 했다
목금토 모두 미디를 8시간 이상씩 한 거 같다
진짜 듣고 듣고 또 듣고 미칠 뻔ㅠㅠ
2024.4.2
아 진짜
너무 힘든 한 주였다.
일기 쓴 다음날.
아침에 화장실을 가니
피가 나오고있었다.
???????
생각보다 많이.
나는 생리가 엄청난 칼주기인데
끝난 지 2주밖에 안 됐던 터라
몹시 당황했음.
인터넷 찾아보니 스트레스받으면 그럴 수 있단다.
나 그다지 정신적으론 안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쇼크였다.
산부인과 연락하니 진료가능일이 3주 뒤ㅋㅋㅋㅋ
장난? ㅎㅎㅎ
하 여하튼...
생리를 2주 만에 또한... 하ㅜㅜ
스트레스라는 게 몸의 부담을 얘기하는 거 같기도...
일요일까지가 마감이라
뭐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곤
미디에 몰빵 했다.
진짜...
몇 번 수정했는지
바운싱만 수백 번 한 거 같다.
컴퓨터용량이 모자라서 계속 지워가면서 했다ㅠㅠ
어찌나 잠은 또 안 오던지
새벽 3~4시에 겨우 자고 또 아침에 일어나면
두통으로 지끈거렸다.
그래서 무슨 요일에 뭐 했는지 기억이 안 남ㅋㅋㅋ
그냥 미디 하다가 밥 먹고 또 미디 하다가 빨래 개고 미디 하다가 자고.
거의 하루에 12시간을 한 듯
무슨 수험생인가ㅋㅋㅋㅋ
어제는 멜론 보다가 다들 앨범소개글을 상세히 썼길래
부랴부랴 쓰고-
음원 다 들어보는데 수정할 거 오류? 버그같이 들리는 거 아 계속 발견돼서
진짜 극대스트레스.
2024.4.16
정말 막판에는 미디를 하루에 12시간씩 하느라
2주 뒤 생리를 또 하는 등
건강도 나빠지고 헤드폰 때문에 귀에도 염증이 생겼다.
선생님한테 배웠으면 이리 고생 안 해도 되었을 텐데-
혼자 하느라 누가 알려주면 1분 만에 할 수 있는걸
몇 십 시간을 소위 말해 '삽질'했다.
(꼭 배우세요!!)
그리하여
나의 첫 앨범은 2024년 4월 말에 발매되었다.
멜론에 내 음악이 나오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정말 뭉클한 경험이었다.
우리 엄마는 1년이 되어가는 지금껏
프사로 내 앨범 재킷 사진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4월에 2집이 발매된다.
다음 주부터 믹싱하고 마스터링 지옥이 다시 시작된다!
다음 편에서 작곡-제작-발매의 순서를 소개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