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엉망으로 쓴 짧은 에세이 한 편, 성적증명서 한 통과 함께 메일을 보낸 뒤 얼마 후 교수님께 답장이 왔다.
한 번 만나자고.
처음 뵈러 학교에 도착했을 때
그 장소가 어찌나 생경하고 떨리던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야기 끝에 교수님이 학부 1학년 개론 수업을 하나 청강하라고 하셨다.
원래 다니던 대학원 마지막 학기로 복학을 했다.
많은 레슨을 병행하느라 예전처럼 연습에 올인은 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해 다녔고 청강 수업도 단 한 번의 지각 없이 열심히 들었다.
중간에 학회도 처음 가봤는데
완전 신세계였다.
물론 음악사부터 화성학, 음악분석, 음악 미학 등 실기 전공 내 이론은 배운 적이 있지만 진짜 이론 전공을 알게 되니
지금까지 내가 알던 건 어린애들 장난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청강을 들으러 갈 때면
강한 설렘과 동시에 이방인의 느낌이 들었다.
특히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실 때
학교 포털사이트에서 제출을 하라고 하시거나
중앙도서관이나 음대도서관을 이용하라고 하시는 등 재학생들만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하실 때면
괜스레 아웃사이더가 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20대 후반에 풋풋한 20살이랑
같이 수업을 들어서 더 그랬던 듯하다.
그래도 수업은 정말 신기했다.
빠짐없이 필기를 하고 열심히 들었다.
이 학교에 입학하려면 영어 점수가 필요했다.
하지만 레슨이며 연습, 청강, 논문 등으로 너무 바빴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을 봤는데
점수가 좀 모자랐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서류를 제출하기 전까지
시험은 고작 한 번이 남았었다.
이거 못 통과하는 순간 한 학기를 날려야 했고
청강까지 하게 해 주신 교수님 뵐 낯이 서질 않을 것이다.
그 뒤로 열흘동안
하루에 12시간씩 공부했다.
너무나 필사적이었다.
샤워하면서도 핸드폰으로 단어를 계속 틀어놓고 외워댔다.
시험날.
OMR카드를 작성하는데
너무 떨려서 손이 제멋대로 부들거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실기시험도 아니고
필기시험 볼 때 이렇게 떨린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며칠 뒤,
시험성적이 발표되었고
다행히 커트라인을 넘겼다!
미친 듯이 외워서 졸업연주도 마쳤다.
졸업 논문이 남았다.
내 졸업 논문은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에 나타나는 유머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논문을 새 대학원에도 시험 서류로서 제출해야 했다.
보통 피아노과는
작품 분석을 졸업 논문으로 한다.
예컨대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분석 연구> 같은 것이 연구 제목이다.
몰랐는데 나중에 음악학 교수님께서
이런 건 연구 주제가 될 수 없단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에서 나타나는 낭만문학성 연구>
-빅토르 위고와 하인리히 하이네를 중심으로-
이런 거라든지
<쇼팽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니체의 예술론>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중심으로-
뭐 이런 세부 주제가 있어야 한단다.
나도 피아노과가 논문으로 왜 작곡가 생애부터 작품경향, 작품분석 등을 쓰는지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냥 다들 그렇게 하니까 답습하여 쓸 뿐. 분석은 작곡과가 킹왕짱인데 왜 피아노과가 하는 거지?
차라리 연주 미학이라든지 비평, 연주 해석론 등을 쓰는 게 맞지 않나? 는 생각이.
어쨌든 매일 논문을 쓰고
학교에 가서 교수님께 검사받고
또 도서관 가서 쓰고의 반복이었다.
쉽지 않았다.
이때 스트레스로 공차에서 매일 1일 2 버블티를
수혈했는데 살이 옴팡지게 쪘다.
어찌어찌 논문을 끝내고 발표도 하고 인쇄도 하고 제출도 했다!!
(석사 논문은 그 뒤로 두 번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하하)
얼마 후
교수님을 뵈러 갔다.
합격이란다.
와!!! 정말 기뻤다.
우리 과는 방학 때 놀지 않고 주 1회씩 모여서 스터디를 한다.
처음 1월 겨울방학 스터디에서 동기들과 선배들을 만나니 묘한 긴장감과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8주간의 스터디를 마친 후
드디어 본격적인 개강이었는데...!
아뿔싸
코로나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