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개학날이 다가온다

by 푼푼

우리 첫 애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7살 남자애다.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지만 한국어도, 영어도 하지 못한다.


아이의 개학날이 다가오면서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지난 학기에 많은 일이 있었다.


아이가 학교 가기를 너무너무 싫어했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면

아이는 학교 앞 길바닥에 눕기 마련이었고

학교 봉사자들은 그런 아이의 반복적인 행동에 지쳐있었다.


한번은 아이가 또 누우려 하자

봉사자는 잡고 있던 손을 놔버렸다.

난 그것을 차 안에서 목격했다.

아이의 등은 아스팔트에 쓸려 피가났고

바로 간호실로 이동했다.


봉사자들은 보통 일반 아이들의 학부모다.

그들이 내 아이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아무런 애정은 없어 보였다.


아이는 일반 학교에서 특수반에 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등하교 할 때나 점심시간 때는 일반 학생들과 같이 부딪히게 된다.

아이가 길바닥에 누우면 많은 학생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아이는 학교에서 점심을 거의 먹지 않는 듯 했다.

아이는 점점 말라갔고 안색은 검게 안 좋아져갔다.

학기가 지나갈수록 갈비뼈는 점점 선명해졌다.


무릎과 다리엔 멍과 상처 투성이었다.

아마도 스스로 뛰거나 벽에 부딪히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하는 행동들이다.

학기가 흘러갈 수록 아이는 집에서도, 학교서도

점점 더 많은 상동행동을 보였다.


아이에게 학교에 대해 어땠냐고 물어보면

"No school, no school!"

만 반복해서 외칠 뿐이었다.

아이는 주말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전학을 결심했다.

장애아이들만 있는 전용 특수학교로 말이다.


미국의 제도는 특이했다.

아이가 같은 학군 내에서 전학을 가려면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돈 주고 학비를 내겠다는데도 변호사라니..


우리는 우선 현재 학교 교직원들에게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역시나 대답은 "NO" 였다.

자기들의 학업 성취도 데이터로는 아이의 진전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교육 시스템을 포기하고 전학을 보낼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다른 학교로 옮기게 하는 것은 자기들의 실적에 좋을 리 없다.

그들은 이런 일이 생길 걸 예상했다는 것처럼 차곡차곡 문서를 쌓아놓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늘

아이의 말 할 수 있는 단어 개수가 00% 상승, 사물을 매칭할 수 있는 것이 00% 상승...

무언가 아이가 많이 발전한 것처럼 데이터를 섞어 부풀려 말했다.

우리는 아이가 거의 나아지지 않고,

스트레스로 심지어 퇴행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당장 전학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학교에 오전만 가고, 점심은 집에서 먹고,

오후엔 사설 치료 교육 센터에 가는 임시방편을 세웠다.


학교에선 역시나 이러한 일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커리큘럼을 채우지 못하는 건 우리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속도가 늦어도 그것은 우리 잘못이라는 뉘앙스였다.


이쯤 되니 우리가 있는 곳이

아이의 진정한 성장을 바라는 학교인지

책임을 뒤집어 쓰지 않기 위한 방어 집단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못된 짓을 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이는 이 학교를 다니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스트레스 원인이 무엇인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면 환경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가을 학기가 벌써 다음 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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