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리 할머니의 추억

by 푼푼

내가 아주 어렸을 적, 6살쯤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셨던 할머니의 추억이 느린 장면처럼 스친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생계를 위한 맞벌이에 한창이셨다.

아버지는 남대문 시장에서 의류를 유통하며 밤낮없이 일하셨고 어머니는 출판사에서 영업을 하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일로 바쁜 나머지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시간이 많았다.


나를 돌봐줬던 할머니를 우리는 ‘수유리 할머니’라고 불렀다. 할머니의 실제 본명을 난 아직도 모른다. 어렸을 적 나는 할머니 이름이 수유리 인 줄로 알고 있었다.


수유리는 이제 ‘수유동‘이 되었다. 찾아보니 서울특별시 강북구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벌써 삼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도 할머니와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할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온화한 미소를 가지고 계셨다.


한 번은 내가 델몬트 오렌지 주스 유리병을 냉장고에서 빼내다가 깨트렸나 보다. 유리병은 산산조각이 났고 주스는 방 안에 엎질러졌다. 당시 엄했던 부모님을 떠올리며 난 큰일 났다 생각했다.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깨진 유리를 치우고는 바닥의

주스에 나와 같이 빨대를 꽂고 마셨다. 키득키득 웃으면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주스를 마셨다. 그때 할머니의 미소는 장난기 어린 천사 같았다. 그 당시 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나에겐 충격이었나 보다. 아직도 그 장면이 어렴풋이 보인다.


할머니는 나를 돌봐주지 않으실 때는 미군부대에서 일하셨다.

우리 집으로 찾아올 때는 항상 미제 사탕을 들고 오셨다. 그 사탕은 포도맛의 보라색을 띄었고 먹다 보면 속 안에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사탕은 처음이었다. 할머니를 만날 때면 나에게 걸어오면서 웃으시며 사탕을 내미셨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가끔씩 미군 냉동 소시지를 가지고 오셨다. 그렇게 짠 소시지는 난생처음이었지만 무언가 맛이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미국에 살고 있는 지금 나는 미국에서 그 소세질 볼 때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일을 그만두시고 나의 육아에 전념하기로 하셨나 보다. 그 후로 수유리 할머니를 볼 일은 없었고 간간이 엄마를 통해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난 수유리 할머니가 나의 친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의 사랑이 너무 진했기에 당연히 할머니와 난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라 생각했다.


지금 수유리 할머니는 살아 계시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계실 거라

믿는다.


시간이 많이 흘러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나는 아이들이 몇십 년이 흘러 예전의 나를 떠올릴 때 수유리 할머니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건 아마도 어려울 거 같다.


할머니에게 경험한 사랑의 위대함은 나에게 그저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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