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것의즐거움
- 영화와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17세기 중반, 네덜란드 서쪽 작은 도시 델프트에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기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알 방법이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동시대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그녀의 신비로운 모습뿐.
이름은 무엇인지, 머리에 쓴 노란 터번은 무엇인지, 살짝 벌린 입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한쪽 귀에 매달려 영롱한 빛을 내뿜는 진주 귀고리는 또 무엇인지 등등 모든 것이 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캔버스 너머 우리에게 던지는 무심한 눈빛에 매료된 나머지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베르메르를 흔들어 깨워서라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소녀의 묘한 표정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는지 미국의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녀에 대한 한 편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바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동명 영화의 원작,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다.
그리트는 하녀다. 네덜란드의 한적한 도시 델프트에서 가난한 타일공의 딸로 태어난 평범한 소녀. 그녀는 사고로 시력을 잃은 아버지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화가인 베르메르 씨 댁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일터에는 사방이 적으로 가득하다. 새로 온 하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표독스러운 안주인 카타리나부터 이기적인 선배 하녀 타네커, 주인집 딸이자 어린 나이에도 교활하기 짝이 없는 코넬리아까지. 신분과 성격에다 종교까지 다른 낯선 집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릴 돈을 벌기 위해 그리트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간다.
하지만 타고난 슬기로움과 성실함으로 여러 위기를 넘기며 베르메르가에 적응하는 그리트.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그녀의 고난한 하녀 생활에도 몇 가지 낙이 있었다. 바로 주인인 베르메르와 함께 그의 화실에서 보내는 시간과 단골 푸줏간 집의 아들인 피터와의 만남이 그것.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색에 대한 타고난 감각이 있었던 그리트에게 화실 청소는 어쩌면 일이라기보다는 환희에 가까웠다. 서민들은 함부로 만져보지도 못할 청금석과 상아 등의 재료들이 명작들로 탈바꿈하는 화실, 주인마님들도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는 그 화실을 드나들며 우연히 베르메르의 작업에 동참하게 된 그리트는 점차 그와 함께 미적 감각을 키워가며 어느새 베르메르를 연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역시 제일 좋은 점은 화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밤에 집 안이 조용해지면 가끔 담요로 몸을 둘둘 말고 화실로 내려오곤 했다.... 가끔은 사자머리 의자를 탁자 옆으로 끌고가서 푸르고 붉은 탁자보에 팔꿈치를 괴고 앉아서 상상했다. 노란색 비단과 검정색 벨벳으로 된 조끼를 입고 진주목걸이를 두른 채 포도주 잔을 들고 그와 마주앉아 있는 모습을.
그리트의 마음도 몰라주는 나쁜 남자 베르메르와는 달리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남자가 있었다. 바로 단골 푸줏간 집 아들 피터. 처음 보는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순진남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리트가 던지는 레드 라이트 따위는 무시하고 오로지 그녀에게만 직진하는 정열남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를 차갑게 대하던 그리트도 부모님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피터의 애정공세에 점점 마음을 열게 되지만 마음 한켠의 마지막 빗장은 왠지 열어주지 않았다. 틈만 나면 그 빗장을 치우려 덤비는 피터에게 던지는 그리트의 변은 항상 같았다. "그러기에는 난 아직 어려요."
어느덧 그리트가 베르메르가에 들어온지도 2년이 흐른 어느 날, 그리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주인인 베르메르가 그리트를 그리겠다고 나선 것. 그리트를 탐하는 반 라위번이라는 이름의 지역유지에게 팔 그림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을 경계하는 카타리나의 심기와 그림의 모델이 된다는 것이 소문이 났을 때의 파장이 두려운 그리트는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네 사정이라는 듯 그림 작업에만 몰두하는 베르메르. 빨래하기도 바쁜 그리트를 불러내 모델로 세우거나 물감재료 손질을 시키며 시간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입술을 더 벌리라는 둥 모자를 벗고 머리칼을 보이라는 둥 정숙한 여인에게는 차마 요구하지 못할 주문을 서슴없이 한다.
도저히 머리칼은 보일 수 없어 얼굴을 가리는 모자 대신 궁여지책으로 노란 천과 파란천으로 머리를 둘둘 싸맨 그리트. 어느새 그림은 거의 완성에 다다라 가지만 그리트도, 베르메르도 그림에서 뭔가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그림 속으로 잡아끌 어떤 번쩍이는 하나의 지점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번쩍이는 지점은 머지않아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안주인 카타리나가 아끼는 한쌍의 진주 귀고리가 그것. 투기가 심한 카타리나의 진주 귀고리를 찬다는 것은 곧 자신이 이 집에서 쫓겨나는 것이라는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그리트는 베르메르에게 귀고리를 포기할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림의 완성을 위해 베르메르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또한 진주 귀고리가 자신의 귀에 걸리지 않으면 그림이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트의 18번째 생일날, 그림을 위해 귀까지 뚫은 그리트에게 카타리나의 어머니인 마리아 틴스가 조용히 다가와 무엇인가를 건넨다. 물건을 건네받은 그리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카타리나의 진주 귀걸이. 딸의 기분도 중요하지만 집안의 곳간 사정 또한 중요한 마리아 틴스는 카타리나가 잠시 외출한 틈에 그림을 서둘러 마무리하라며 그리트를 채근한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때 18세를 맞은 그리트에게 청혼하기 위해 피터가 베르메르가를 찾아온다. 난 아직 어리다는 그리트의 변명이 무력해지는 바로 그날에. 하지만 서둘러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 그리트는 '이곳을 떠나 자신에게 오라'는 피터의 청혼을 뿌리치고 베르메르가 기다리는 화실로 뛰어올라간다.
기다리고 있던 베르메르는 손수 그리트에게 귀걸이를 달아주고 그의 붓터치 몇 번에 드디어 그림은 완성된다.
모든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화실을 엿보고 있던 코넬리아가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속닥거리고 이성을 잃은 카타리나는 화실을 향해 뛰어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곤 울려 퍼지는 카타리나의 외마디 비명은 그녀를 둘러싼 사기극의 결말.
잠시 후 사기극의 관계자가 모두 화실에 모였다. 베르메르, 카타리나, 마리아 틴스 그리고 그리트.
집안의 안녕을 위해서 희생양이 필요해진 상황, 베르메르와 마리아 틴스는 은근히 카타리나의 분노를 그리트에게 돌리려 애쓴다. 하지만 이제 제법 머리가 큰 그리트는 오히려 당당히 여주인에게 맞서고 결국 카타리나의 분노가 그림을 향해 폭발한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다 팔레트 나이프를 집어 들어 그림으로 돌진하는 카타리나. 베르메르가 이를 막으려 급히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실랑이 끝에 바닥으로 떨어진 칼이 그리트의 발치에 떨어진다.
그리트는 하녀다. 주인이 떨어트린 물건을 줍는 것이 하녀의 일. 허리를 굽혀 떨어진 칼을 주워 들던 그리트는 우연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베르메르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그의 눈 안에서 후회가 스쳐가는 것을 읽는다.
순간 그리트는 뭐라 표현하지 못할 감정에 휩싸인다. 그대로 화실을 벗어나 현관의 타네커를 밀쳐내고 거리로 뛰어나서는 그리트. 한참을 뛰다 마을 광장에 이르러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광장의 팔각형 별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고민하다 뭔가를 결심한 듯 신중히 발을 내디뎠다. 그리트의 마음속 한켠에서 빗장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10년 후, 피터와 함께 푸줏간을 운영하는 그리트에게 불쑥 타네커가 찾아와 카타리나의 호출을 전한다. 몇 달 전 베르메르가 사망한 사실을 들었던 그리트는 순간 카타리나가 피터에게 진 15길더(당시의 화폐)의 외상값을 떠올린다. 가끔 피터가 '그 돈으로 당신을 데려온 값으로 치지 뭐'라고 놀리던 외상값. 그리트는 의아함 속에 이제는 그가 없는 저택을 찾는다.
10년 만에 베르메르가를 찾은 그리트. 그녀는 베르메르가 남긴 천진한 아들에게 그가 죽기 직전 '진주 귀고리 소녀'를 보기 위해 반 라위번가에서 그림을 빌려온 것을 듣고 손이 떨려옴을 느낀다. 정신을 가다듬고 화실로 올라간 그리트를 맞이한 것은 딱딱한 표정의 카타리나와 유언 집행인 반 라위번 후크. 그리트를 부른 이유는 베르메르의 유언을 집행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반 라위번 후크의 집행 아래 카타리나는 꼴 보기 싫은 숙제를 처리하는 마냥 한쌍의 귀고리를 그리트에게 건넨다. 바로 그 진주 귀고리였다. 그리트는 감히 받을 수 없다며 고사했지만 자신도 도저히 이 귀고리를 찰 수 없다는 카라티나의 말에 진심으로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귀고리를 받아 든다.
일단 받아 들기는 했지만 그리트는 그 귀고리를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푸줏간의 안주인은 진주 귀고리를 하지 않는다. 피터에게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다시 10년 전 그날처럼 광장을 빙글빙글 도는 그리트. 그리곤 발걸음을 옮겨 교회 뒷길 으슥한 곳의 전당포를 찾아 진주 귀고리를 내민다.
전당포 주인은 귀고리를 깨물어도 보고 빛에 비춰보기도 하더니 그리트에게 20길더를 제안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리트. 20길더를 받아 들고 거리로 나선 그녀에게는 이제 카타리나가 피터에게 진 15길더를 제하고 5길더가 더 남은 셈이었다. 베르메르가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 그리트는 그 5길더를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
그리트는 하녀다. 그리고 그 하녀는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맘마미아!라는 뮤지컬이 있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혼성그룹 ABBA의 23가지 명곡들을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낸 작품이다. 1999년 영국에서 초연되어 말 그대로 대박을 치고 지금까지도 공연을 이어나가는 명작으로 2008년 메릴스트립과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명성에 비해 줄거리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상당한 개막장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용이야 어쨌건 어깨가 들썩이는 ABBA의 노래와 함께 뮤지컬을 즐기다 보면 '이 노래들이 정말 별개의 작품이 맞는 건가?', '모두 이 뮤지컬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기에 충분하다. 수많은 ABBA의 노래를 하나의 이야기로 기막히게 잘 녹여낸 탓인데 이렇게 흘러간 여러 대중음악을 가져와 하나의 무대용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장르의 뮤지컬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한다.
단순히 음악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것들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만드는 주크박스 뮤지컬. 이 진주 귀고리 소녀 역시 베르메르의 여러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이어 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우유 따르는 여인'은 집안일에 몰두한 타네커로, '포도주 잔을 든 여인'은 가여운 하녀와 그녀를 노리는 탐욕스러운 반 라위번으로, '골목길'과 '델프트 풍경'은 모든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적 배경으로 묘사하는 등 서사가 전개되는 중간중간 이야기에 들어맞는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을 삽입하여 사실감을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 소설을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그림에 영감을 받아 집필했지만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 또한 그리트가 살아간 세계로 잘 끌어들였다는 평을 받는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중간중간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이 등장하여 사실감을 높인다.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을 반 라위번의 아내를 그린 작품으로 묘사하고 '물주전자를 든 여인'의 제작과정에 그리트의 센스가 발휘되었다는 설정을 집어넣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아 정말 저랬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다만 소설은 그리트라는 17세기 여자아이의 사랑, 고통, 성장, 완숙에 이르는 하나의 성장드라마를 감각적이고도 현실적인 묘사로 그려낸 것에 반해 영화는 그리트의 가족 이야기, 코넬리아의 교활함, 피터와 그리트의 묘한 갈등과 결국 진주 귀고리를 손에 쥐게 된 그리트의 심리와 행동을 다소 밋밋하게 표현하는 전개를 펼침으로써 소설의 내용을 스크린에 제대로 옮겨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글쓴이인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내게 여전히 강력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소녀의 얼굴에 어린 표정에 사로잡혀 소설을 썼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결코 알지 못하게 되기를 바란다.'
일견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림 속 소녀의 표정에 매료되어 300페이지짜리 소설까지 썼으면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다.
간혹 창가로 볕이 잘 드는 날이면 조카 녀석과 햇볕을 벗 삼아 퍼즐을 맞추곤 한다. 대개 나는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조카 녀석이 혼자서 열심인 경우가 많은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그마한 퍼즐을 하나씩 맞추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하루는 일주일 전에 맞추던 퍼즐을 그대로 펼쳐두고 인상을 쓰고 있는 조카를 보곤 왜 아직도 완성을 못하고 있느냐고 여동생에게 물었다. 이미 제 아들놈과 한바탕 한 모양새인 여동생은 두 손 다 들었다는 투로 말했다.
"완성도를 안 보고 맞춘다잖아. 그냥 감으로 맞추니 그게 맞춰져?"
"완성도를 안 본다고?" 빨래를 개던 여동생은 그저 어깨를 한번 들썩했다.
의아해진 나는 여전히 미간에 인내천을 그리며 퍼즐을 노려보는 조카 옆에 누워 말했다.
"삼촌이 도와줄까?"
"싫어." 쳐다보지도 않고 조카가 대답했다.
짐짓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조카에게 왜 완성도를 보지 않고 퍼즐을 맞추냐 물었다.
"그림 보고 맞추면 재미없잖아, 이게 더 재밌어."
"그런데 완성도를 안 보면 퍼즐을 다 맞출 수가 없잖아?"
"상관없어!"
그렇게 단호한 7살짜리의 고집에 어른 두 명이 손을 든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쯤 지났을까, 여동생과 통화를 하던 중 조카 놈의 퍼즐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다.
"아니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붙들고 앉아있더니 정작 완성하고 나서는 거들떠도 안 보더라니까? 그래서 내가 다시 퍼즐을 흩어서 어디 넣어놨더니 다음날에 그걸 또 그대로 바닥에 펼쳐놓고 맞추고 있는 거야. 내가 낳았지만 쟤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녀석은 어쩌면 퍼즐을 완성하는 것보다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상상한 완성을 향해 달려가지만 정작 완성에 다다르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런 즐거움 말이다.
진주 귀고리 소녀를 보며 느끼는 감정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짙은 어둠 속에서 우리를 돌아보는 저 신비한 소녀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어쩌면 완성도 없이 맞추는 퍼즐보다 더 부질없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의 장벽에 가려져 그녀의 삶의 궤적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매료된 우리는 스스로의 상상력을 발휘해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퍼즐을 머릿속으로 맞추는데 주저함이 없다. 아니 그녀의 눈빛이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순수한 무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그림의 뒷배경을 상상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듯하다.
그런데 만약 델프트 어딘가에서 베르메르의 일기라도 발견되어 이 작품에 대한 배경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당분간은 그림에 숨겨진 뒷이야기가 회자되고 주목을 받겠지만 분명 신비감을 잃은 소녀는 매력을 잃어갈 것이다. 베르메르와 그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후대에 남겨진 정보가 극히 적은데에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유럽여행을 가게 되면 반드시 네덜란드에 방문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소녀 앞에서 몇 시간이고 서있고 싶다. 그리하여 혼자 오랫동안 그녀에 대한 퍼즐을 맞추다 결국은 그녀의 오묘한 표정 속의 생각을 영영 알지 못하게 되기를 바란다. 베일에 싸인 그녀에 대해 상상하는 것, 그 자체가 그녀가 내게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니까 말이다.
-라이킷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